[김영회 칼럼] 과거 100년, 미래 100년
[김영회 칼럼] 과거 100년, 미래 100년
  • 김영회(언론인)
  • 승인 2019.02.2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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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을 하루 앞둔 28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파리공원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 만세운동 재현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나간 100년은 중요합니다. 
미래의 100년은 더 중요합니다.
눈앞의 이해보다 앞을 내다보는  
지혜로 머리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아가야 합니다―

1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기나긴 시간이지만 한민족의 피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이던 그날을 잊을 수는 없습니다.

1919년, 기미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대한독립 만세!” 함성은 3개월 동안 전국으로 메아리 쳐 일본제국주의에 짓밟혀 신음하던 3천리 강산, 1678만 명의 백성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그 역사적인 날로부터 100년, 올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요, 바로 그 3월입니다.

3·1만세운동(三一萬歲運動)은 일제 강점기 한국인들이 일본의 지배에 항거하여 한일병합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운동을 시작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기미년(己未年)에 일어났다 하여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이라고도 부릅니다.

3·1운동의 원인은 1910년 일본제국주의의 대한제국 국권 피탈이 주요인이었지만 동경에 유학 중인 학생들 400명의 ‘2·8독립선언’에 이어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이 컸습니다. “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외부의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윌슨의 선언은 식민치하 절망에 빠져 있던 한국인들에게 크나큰 희망이자 용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3·1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고종황제의 돌연한 죽음이었습니다. 1월 21일 아침 고종황제가 덕수궁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종의 절명소식이 알려지자 장안에는 식혜에 탄 독약 때문이라는 독살 소문이 퍼졌고 그것이 민심을 자극해 백성들이 장례일인 3월 1일에 맞춰 경성으로 몰려들면서  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된 것입니다.

3·1만세 운동을 주도한 인물은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 홍기조, 이승훈, 오화영, 신홍식, 한용운, 최남선 등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인이 주축이 된 33인이었습니다. 이들은 이날 서울 인사동의 요릿집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원래는 탑골공원에 모인 군중들과 함께하기로 돼 있었지만 경찰의 감시로 약속이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독립선언문의 초안은 33인의 한 사람 인 육당(六堂) 최남선이 썼습니다.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朝鮮(아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투의 어려운 한문 문장으로 작성된 것을 본 만해(萬海) 한용운이 “너무 어렵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춘원(春園) 이광수가 손질을 해 수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군중들이 모여 만세를 부른 곳은 종로 2가의 탑골공원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1000여명의 군중이 민족대표들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경신학교 출신의 정재용의 독립선언문 낭독과 대한 “독립만세!” 함성을 시작으로 3·1독립운동의 불길이 달려 졌고 이 불길은 이내 전국 팔도로 번져 나갔던 것입니다.

역사에는 33인의 대표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사실 3·1독립만세 사건의 발원지요, 성지는 탑골공원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불 당겨진 만세운동은 메아리가 되어 온 나라를 만세소리로 뒤덮었습니다.

조선총독부 통계에 의하면 시위 참가자는 총 202만 명이고 사망자 7000명, 부상자 4만5000명, 체포자 4만9000명이었습니다. 일제는 무자비하게 시위 참가자들을 무자비하게 무력으로 탄압했던 것입니다.

만세운동이 일어난 뒤인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을 선포함으로써 오늘 대한민국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초대대통령 이승만, 국무령 이동녕, 주석 김구였습니다. 그러니까, 올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 인 동시에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의 겹경사의 해인 것입니다. 그 의미는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엊그제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친일청산과 독립운동 예우가 정의로운 나라의 출발”이라면서 “친일세력을 청산하고 독립운동세력을 한국사회의 축으로 삼아 정의로운 나라로 만들겠다”는 결연한 뜻을 밝혔습니다.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지난날의 아픈 현대사를 깊이 반성하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지나간 과거는 소중합니다. 선조들이 피 흘려 쌓아놓은 아름다운 역사가 전해져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미래 또한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쌓는 이 소중한 역사가 훗날의 척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멀리 바라봐야 합니다. 눈앞의 소아병적인 이기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늘의 이해에 급급 한다면 바람직한 미래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100년 전, 그 때는 모두가 하나였습니다. 남북이 따로 있지 않았고 경상도와 전라도도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지 않았고, 빈부가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찾자는 대의(大義) 앞에 백성들은 둘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옥(玉)의 티로 소수 이탈자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나간 100년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 받아 새로운 100년의 미래를 창조해 나가야 합니다. 100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에 들리는 “대한독립만세!”…그 날의 함성을 들어야 합니다. 격변의 시대, 이 거대한 변혁의 물줄기를 손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역사를 거역하는 일입니다.

때마침 베트남의 하노이에서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가운데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를 놓고 담판을 벌였습니다. 우리는 현장 생중계를 통해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 말 한마디, 한마디를 눈여겨보고 귀담아 들었습니다.

바라건대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동서고금, 인류의 역사에서 ‘평화’라는 두 글자, 그 최고의 가치를 뛰어 넘는 이념은 없습니다. 분단 74년의 비극을 끝내고 전쟁 없는 한반도, 다시 하나의 민족으로 돌아가는 그 날이 하루 빨리 다가와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북미정상회담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밤잠을 설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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