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국내 최초 종업원 지주제 시행한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3·1운동 100주년…국내 최초 종업원 지주제 시행한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 양혜원 기자
  • 승인 2019.03.0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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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본사 / 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올해는 3·1운동이 100주년인 뜻깊은 해로,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애국기업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는 1955년 건국훈장을 받을 정도로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1일 유한양행에 따르면, 유한양행 설립은 민족의 실력 양성과 경제적 자립을 바라는 유일한 박사의 염원을 담은 것이다.

유한양행은 작년 기준 제약업계에서 매출 1조 5188억원으로, 사상 최대 매출 기록을 경신한 제약업계 매출 1위의 기업이다.

2014년 국내 제약사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가 2015년 대규모 기술수출 성과를 낸 한미약품에 잠시 매출 1위를 내주기도 했으나, 2016년과 2017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제약업계 매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앞줄 맨 오른쪽이 소년병 시절 유일한 박사. / 유한양행 제공

유일한 박사는 1894년생으로 평양에서 태어나 1905년 11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09년 미주지역에서 한인소년병학교에 입학해 농장에서 일해 학비를 벌면서 공부를 하고 군사훈련을 받았다.

1919년 한인자유대회에 서재필, 이승만, 조병옥, 임병직 등과 함께 참여할 정도로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강했던 유 박사는 라초이 식품회사를 설립해 만든 자금으로 귀국해 1926년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유한양행의 해외지사는 전략적으로 주요 도시에 세워졌는데, 이는 유사시 항일운동의 지하조직의 핵심으로 운영할 방침이었기 때문이다.

일제의 진주만 폭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이후 유 박사는 미군 전략정보처(OSS,현 CIA의 전신)의 한국담당 고문으로도 활동했다. 1945년 OSS가 반일 민족의식이 투철한 재미한인을 선발해 특수공작훈련을 시킨 뒤 한국과 일본에 침투시켜 적의 후방을 교란하는 작적인 냅코(NAPKO)작전계획의 핵심요원으로 유 박사가 선발됐다. 제1조 조장으로 임명돼 명령을 기다리던 중 일제가 항복하면서 작전실행은 하지 못했다.

이후 대한상공회의소 초대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1952년 고려공과기술학교, 1964년 유한공고 등을 세워 운영했고 한국에서는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시작할 정도로 남다른 애국심을 바탕으로 다양한 활동에 헌신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유일한 박사는 민족경제를 살려야 조국이 독립할 수 있다고 생각해 유한양행을 설립했고, 독립운동 자금도 많이 지원했다"면서 "기업활동과 교육장려 등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정말로 강했던 점을 인정받아 건국훈장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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