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한국당은 보수의 아이콘이 될 수 있을까
[송장길 칼럼] 한국당은 보수의 아이콘이 될 수 있을까
  • 송장길(언론인, 수필가)
  • 승인 2019.02.18 11: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월 17일 오전 서울 금천구 호서대 벤처타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당 대표 후보 유튜브 토론회에서 후보들이 토론회 시작에 앞서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오세훈, 김진태, 황교안 후보. / 연합뉴스

보수주의의 창시자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주의는 전통과 관습으로 이룬 제도를 지키면서 필요한 변화를 주의 깊게 시도하는 신중한 태도”라고 규정했다. 즉 1.정치-사회적 제도와 관습을 지키고, 2.역사 속에서 다듬어진 기본 구조를 계승하며, 3.헌정 질서 아래 숨쉬는 자유을 보호하고, 4.민주주의를 전제로 질서있게 점진적 개혁을 이루려는 사상이라고 주창했다.

프랑스 혁명의 야만성을 우려하면서 설계한 버크의 보수주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다소 변용이 되어왔다. 디스렐리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담론으로 복지를 접목했고, 배척 대상도 처음에는 프랑스 혁명의 폭력성을 문제로 삼다가 나중에는 사회주의와 겨뤘고, 20세기 후에는 큰 정부를 겨냥했다고 [제 3의 길]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분석했다.

그러나 ‘문화적 유산을 계승 발전시키고, 겸손하게 개선하려는 정신’은 지구촌의 정치에 압도적인 이념으로 면면히 흐르면서 세계의 정세를 이끌었다. 버크의 본거지 영국에서는 디스렐리와 대처로 이어져 나라를 강국으로 일으켰고, 독일에서는 비스마르크와 아데나우어를 통해 통일독일과 전후 부흥을 이룩했다. 보수주의는 미국으로 건너가 남북전쟁을 승리한 링컨의 리더십과 레이건의 사회주의 압박으로 발산되어 막강했던 공산주의를 꺾고 세계 최강 지도국으로 우뚝 서는 거름이 되었다. 전후에 일본에서도 자민당의 50여년 집권과 세계 2~3대 경제국의 토양이 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보수는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과 박정희의 경제적 중흥에 그 뿌리가 닿아있다. 식민통치 후 바로 닥친 전쟁의 위기에서 안보를 지켜냈고, 황폐한 잿더미 속에서 오늘의 번영을 일군 힘은 이념적으로는 보수주의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동맹은 공산주의 남침을 막아내는데 결정적인 지원이었고, 성장 드라이브는 세계가 놀랠 만큼 압축성장을 일궈낸 국운을 세웠다.

그러나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등을 거치면서 남긴 앙금과 그림자들은 보수의 흠결이다. 이승만 정권의 부패, 박정희의 철권통치, 전두환의 권위주의, 박근혜의 측근 스캔들과 무기력 등은 보수의 원형질과 거리가 멀다. 스스로 치유하고 포용하지 못한 그 약점들은 진보가 민주화를 품으며 성장하는 여지를 주었다. 세계적으로 쇠퇴하는 진보 성향이 한국에서 발현하는 현상을 낳은 것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진보세력에게 정권을 넘기는 빌미였고, 그 여파로 보수는 아직도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의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당의 일부 의원 등이 열었던 5.18 공청회에 대한 여권의 파상공세에 당 전체가 수세에 몰리고 있는 실정도 그 일환이다.

자유한국당의 미래는 오는 27일 전당대회가 변곡점이다. 탄핵정국 이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지도체제를 출범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 경쟁을 벌이는 황교안, 오세훈, 김진태 후보 가운데 누가 대표가 되든 한국당은 새로운 모습으로 출범하게 될 것이다. 과열의 후유증과 일부 분파의 반발은 예상되지만 내년 4월 15일 총선의 공천 전야까지는 지도력을 다질 여유가 있다. 새로 등장하는 당 대표의 리더십이 심각한 내홍을 겪지 않는 한 보다 강한 대여전선을 정비하면서 보수와 진보 간의 대회전이 될 21대 총선체제로 곧바로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당의 대표 경선을 벌이는 세 후보가 당선 후 어떤 지도력을 펼지는 당내 변수가 많아서 예단하기가 쉽지 않다. 황교안은 순리적인 성품이고, 오세훈은 활기가 강점이며, 김진태는 투쟁의 결기를 보인다. 모두가 오늘의 한국당에 필요한 기품이고, 화학적으로 한데 모아지면 대단한 카리스마가 될 수 있다는 인물평도 떠돈다. 뭉치지 못하더라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성품과 관계없이 의외의 정치력이 형성될 수도 있다. 일단 당 대표가 되면 집권 경험의 제1야당이라는 적지 않은 조직과 의지, 지략의 뒷받침을 받게 될 것이고, 다른 자질들도 넓게 포용하면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한국당의 앞에는 거대한 여권이 득의양양하게 가로막고 있다. 타협과 협상을 벌일 경쟁자라기보다 서슬 퍼런 결투의 상대처럼 전의를 뿜어대고 있다. 집권의 프레미엄이 모은 방대한 조직과 현란한 선전술로도 무장하고 있다. 지지세력을 넓히기 위한 선심성 시혜의 조짐도 비친다. 그러한 높은 벽을 한국당은 어떻게 넘을 것인가? 투쟁의 날을 세워봐도 역부족이었다. 홍준표 전 대표의 독설정치도, 광화문의 태극기 행진도 정국을 주도할 만큼 국민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데는 힘이 자라지 못했다.

공격과 쟁취는 진보진영에 더 익숙하지 보수의 본색은 아니다. 진보는 정치의 연속성을 깨고 새옷으로 갈아입는 개혁 모드이고, 보수는 전통과 권위의 보존 위에 신뢰를 높이며 진화하는 가치체계이기 때문이다. 진보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투쟁의 병행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가슴은 뜨꺼워도 판단과 행위는 냉철하고도 명쾌해야 한다. 흥분하면 실족하기 쉬우므로 진취적인 묘수를 찾아 타개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보수는 기본적으로 ‘겸손하고 신중한 정치적 태도’라는 버크의 정치철학에 더 충실해야 길이 보이지 않겠는가.

당내의 계파싸움에 국민들의 냉소가 더 높은 것도 이러한 보수의 가치에 어긋난다는 사회심리 저층의 알러지 현상이 더해져 있다. 세 후보들은 TV토론 등에서 현재까지는 비교적 페어 플레이를 벌인다는 인상이다. 그러나 막바지에 과열로 치달아 전당대회 이후에도 선거결과를 훼손하고 집단적인 패거리 행태가 소란을 피운다면 한국당의 정체성에 독약이 될 것이다.

한국당이 보수의 아이콘으로 성공하기 위해 무엇을 지킬 것인가?

개체의 주체적 에너지를 보호하고 북돋아주는 일이 핵심이다. 자신과 가족, 동료, 기업, 기타의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는 명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런 개체들은 문화와 제도의 기능 위에서 소생해 온 만큼 그 시스템을 지키는 일과 맥을 같이한다. 그 일은 자연히 안보와 연결되고, 경제적 자율주의로도 통한다. 진보정권이 평화를 내세워 안보를 소흘히 하거나 평등을 담보로 인위적으로 시장경제를 제약하는 정책,  노조와 지역주의 등 동원된 힘으로 순리를 거스르는 행태에 보수가 분노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어느 정권이건 여권의 실족은 나오기 마련인데, 문재인 정권의 실책은 안보와 경제 면에서 더 두드러지게 지적되고 있다. 경제환경은 악화되고, 실업도 늘어나며, GDP 잠정성장률도 추락하고 있다. 한국이 대북관계에서 미국과 국제사회를 너무 앞지른다는 불편함이 미국쪽에서 들려온다. 이러한 국정의 미숙함을 공격하고 견제하는 기능이 야권에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보수의 아이콘으로서 한국당의 입장은 비판자로서로 역할이 끝은 아니다. 어떻게 하자는 대안을 제시하고, 반영하려고 최선을 다할 때 국민들의 지지가 나온다. 일단 태도가 정해지면 형성 과정과 같은 시간과 감동이 이입돼야 바뀔 수 있다고 사회심리학자들은 밝힌다.

김경수와 드루킹 사건, 손혜원 스캔들, 5.18 의혹, 청와대 특검팀의 사찰 의혹, 탈원전 선언, 소득주도 성장론과 최저임금 인상 등 제기된 여러 문제들에 한국당은 무얼 끌어냈는가? 분노하고 공격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여권의 변명과 역공세를 압도하는 방책으로 정국을 주도하지 못했다. 그래서 보수세력 안에서조차 실망의 소리가 터져나온다. 투쟁력이 부족하다는 불만이다. 투쟁이 본성이 아닌 보수에서 투쟁을 아쉬어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보수의 가능성은 개방성과 유동성을 동반해야 확장된다. 다양성에 문을 열어야 자유롭고 창조적인 보수주의가 개화된다. 한국의 보수가 고립돼온 이유가 이를 잘 웅변한다. 프랑스 정치사상가 알렉시 드 토크빌은 “과거가 그 빛을 멈췄기에 사람들의 정신은 어둠 속에서 헤메고 있다”고 설파했다. 과거에서 얻은 추진력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그의 사상은 한국 보수의 경전이 될만 하다.

착한 보수, 지혜로운 보수, 그러나 누구도 끌어내릴 수 없이 강력한 보수로 거듭날 때 한국당은 건전한 보수의 아이콘이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