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회 칼럼] 스마트시대의 아이러니
[김영회 칼럼] 스마트시대의 아이러니
  • 김영회(언론인)
  • 승인 2019.02.1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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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상 / 연합뉴스

―시대에 맞춰 의례도
바뀌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주부들에게 
중노동을 강요해야 합니까.
남녘에는 꽃이 피었습니다.―

조상을 섬기는 제사(祭祀)의 기원은 원시종교의 한 형태인 샤머니즘(Shamanism)을 바탕으로 한 자연숭배와 연관이 깊습니다. 학자들은 그 옛날 고대인들이 신(神)의 가호로 재앙을 피하기 위해 천지신명께 치성을 드린 것이 제사의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늘 날 우리가 지내는 제사의식은 조상의 넋을 기리고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후손으로서의 도리로 마음을 다해 예를 올리는 전통문화입니다. 제사 풍습이 이 땅에 전래 된 것은 중국 송나라의 주자학(朱子學)이 고려에 들어오면서 부터이지만 당시는 불교가 국교(國敎)였기에 일반 백성이 제사를 지내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이 건국되면서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억불숭유(抑佛崇儒)정책으로 비로소 조상을 기리는 제사 풍습이 민간에 조금씩 알려졌습니다. 처음에는 조정의 중신(重臣)과 일부 양반들 사이에만 행해지던 제사는 조선 중기 이후 일반 백성들 사이에 널리 퍼졌습니다. 그런 제사가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늘까지 행해지는 것은, "죽은 조상신이 후손을 지켜주고 복을 준다"는 소위 기복사상(祈福思想)에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 국민들이 지내는 제사의 종류는 크게 기제(忌祭), 차례(茶禮), 묘제(墓祭)의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기제는 고인이 돌아가신 기일(忌日)에 지내는 제사요, 차례는 설날과 추석에 지내는 제사이고, 묘제는 한식과 추석 때에 산소에 찾아가 음식을 차려 놓고 지내는 제사를 말합니다.

차례에는 새해 설날 아침 조상에 대한 세배를 드리는 ‘정조차례(正朝茶禮)’와 한 해 농사가 잘 된 것을 감사하며 햅쌀로 밥을 짓고, 송편을 빚어 올리는 ‘추석차례’가 있습니다. 그 밖에 예전에는 동지(冬至), 매월 초하루와 보름 등 에 지내는 제사가 한 해에 무려 서른 한번이나 됐지만 이제는 설과 추석 두 번의 차례만 지냅니다. 이는 1939년, 1년에 양력 1월 1일과 음력 8월 15일 추석, 두 번만 차례를 지내도록 한 조선총독부의 의례준칙에 따라 굳어진 풍습입니다.

명절 차례는 원래 차(茶)를 올린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인데 이는 차를 즐겨 마시는 중국에서 유래한 말로, 차가 귀했던 우리나라에서는 제사상에 차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술, 과일, 포와 시절음식에 술을 한 번만 올리는 간소한 약식 제사를 지냈습니다. 원래 기제사를 지내는 시간은 자시(子時·밤11시∼새벽1시)에 맞춰 행했고 차례는 낮에 지내는 것이 관례입니다.

제사에서 상을 차리는 법은 원칙대로 하자면 까다롭기 그지없습니다. 조율이시(棗栗梨枾·대추 밤 배 감)니, 좌포우혜(左脯右醯·왼쪽에 포, 오른쪽에 식혜)니, 어동육서(魚東肉西·생선은 동쪽에 고기는 서쪽에)니,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니, 두동미서(頭東尾西·생선 머리는 동쪽에 꼬리는 서쪽에)니, 그 절차와 규범이 까다롭고 복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어 제상 차리는 이들은 애를 먹기 일쑤입니다.

‘주자가례(朱子家禮)’와 ‘사례편람(四禮便覽)’ 등 중국의 예서(禮書)를 보면 본래는 소박하고 간소한 제사상이 기본이었으나 우리나라에 들어 와 조상의 제사를 통해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경향으로 음식과 절차가 점점 다양해지고 복잡하게 바뀌어 진 것으로 보입니다.

제사를 받는 대상도 제 각각입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천자(天子)는 7대조까지, 제후는 5대조, 대부는 3대조, 일반 백성인 사(士)는 1대 즉 부모만을 제사지내도록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선 역시 신분에 따라 제사 범위가 차이가 났습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보면 신분에 따라 범위가 달라 정승이상은 4대, 6품 이상은 3대, 7품 이하는 2대, 서인(庶人)은 부모만을 제사지내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양반과 상민(常民)의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고조부모까지 4대 봉사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관직을 사고파는 매관매직이 만연(蔓延)해지자 돈푼이나 모은 상민들이 돈을 주고 양반집 족보(族譜)에 이름을 올려 “나도 양반이오!”하고 행세를 하게 되면서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고조부모까지 제사를 지냈고 일반 백성들마저 덩달아 상다리가 휘도록 허세를 부린 것이 오늘에까지 전해 오는 폐단입니다.

1969년 정부가 ‘가정의례준칙’을 제정할 때 봉사(奉祀)는 2대조, 즉 부모와 조부모까지로 하고, 성묘는 제수를 마련하지 않거나 간소하게 한다고 공표했으나 아직까지도 고조부까지 4대봉사(四代奉祀)를 하는 집안이 허다합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이 나라의 주부들은 이번 설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고생깨나 했습니다. 유교가 국교(國敎)이던 조선이 역사에서 사라진지 자그마치 100년이 훨씬 지났건만 아직도 전통으로 남아있는 제사에 대한 후손의 도리를 다하기 위한 의무를 여전히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도 이미 제사를 간소화한지 오래지만 유독 우리나라만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제사에 매달리는 것은 아마도 21세기 스마트시대의 아이러니는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아무튼 우리 주부들, 육체적 정신적으로 참으로 노고가 많았습니다. 장보기부터 시작해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 지내랴, 일가친척을 맞아 대접하랴, 뒷설거지까지 온통 주부들의 몫이었으니 제사증후군, 명절증후군에서 받은 주부들의 수고는 아무리 치하를 한다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1990년대 말 여성민우회에서 명절과 제사 때의 성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였는데, ‘웃는 명절, 명절과의 평등한 만남’이라는 지침서에는 좋은 명절 만드는 다섯가지 방법으로 ①남녀가 함께 일하고 함께 쉰다. ②조상 모시기, 딸도 할 수 있다. ③시집과 친정을 번갈아 방문한다. ④제사 때 여자도 절을 한다. ⑤여성에게만 해당하는 명절 금기(禁忌)를 없앤다” 등을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바꿔야 합니다. 방법도 바꾸고 절차도 바꿔 간소화해야 합니다. 어떻게 바꾸느냐?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특히 집안의 주도권을 쥔 남자들이 생각을 바꾸면 기 백년을 이어온 전통이라도 바뀌게 마련입니다.

조선시대에도 명절의 폐해가 적지 않아 백성들 간에 원성이 일자 대학자 율곡 이이(1536~1584)는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주로 사랑하고 공경하면 그뿐인 것이다. 가난하면 집안 형편에 어울리게 하면 되고 병이 났다면 몸의 형편을 헤아려 제사를 지내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변화의 핵심은 ‘간소화’입니다. 제사를 대신해 가족들끼리 모여 간단히 추모식으로 대신하거나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의 가짓수를 대폭 줄이는 것입니다.

제사는 후손들이 한자리에 모여 선조들을 추모하고 태어난 은혜에 보답하는 정성의 표시이자, 가족 간의 화목을 도모하는 자리 자리가 돼야 합니다. 생각을 바꿔 방법과 절차를 간소화 한다면 제사는 골치 아픈 집안 행사가 아니라 선조와 후손, 세대와 세대를 이어 주는 즐거운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죽이나 명절이 부담이 됐으면 옛날 어머니들은 “이놈의 명절, 호랑이도 안 물어가나!”하고 넋두리를 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명절이 즐거운 날이 아니라 더 힘들고 괴로운 날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입니다. 명절이 지나면 이혼 소송이 대폭 늘어난다는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곰곰이 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대에 맞게 의례도 바뀌어야 합니다. 이제야 말로 생활준칙을 간소화하여 온 가족 모두가 즐거운 명절이 돼야 하겠습니다.

4일 입춘을 지나고 19일이 우수(雨水)입니다. 겨울이 떠날 채비를 하고 봄이 저 남녘에서 북상(北上)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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