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 이병철 곁으로 떠난 '사랑의 경영자'
호암 이병철 곁으로 떠난 '사랑의 경영자'
  • 곽호성 기자
  • 승인 2019.02.01 11: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 경제인 故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인생
고(故)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 한솔그룹 제공

삼성가(三星家)의 장녀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지난 30일 세상을 떠났다. 이인희 고문은 1928년 생으로 91세였다. 이 고문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큰딸이다.

이인희 고문은 여성 기업인의 선구자에 속한다. 1979년 호텔신라 상임이사를 맡았고, 1983년에는 전주제지 고문이 됐다.

이 고문은 한솔그룹의 창업자나 다름없다. 한솔그룹의 시작은 제지업체 전주제지였다. 이 고문은 1991년부터 전주제지를 독자 경영했다. 이 고문은 전주제지라는 이름을 한솔제지로 변경했다. 이후 한솔케미칼, 한솔테크닉스 등의 계열사들이 새로 생겼다. ‘한솔’이란 단어는 순우리말이다. 크다는 뜻이 있는 ‘한’, 소나무·우두머리란 뜻을 가진 ‘솔’을 합쳐 만들었다. 

이 고문은 배포가 크지만 섬세함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병철 창업주를 닮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리더십도 강하고 추진력도 탁월했다. 이것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이건희 회장을 닮았다는 말을 듣는 것과 비슷하다.

더불어 이 고문은 이부진 사장처럼 인정 많은 여성 경영자였다. 이 고문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후덕죽 씨의 사례다.

후덕죽 씨는 호텔 신라 중식당 ‘팔선’의 총책임자(現 중식 조리자문)였다. 그는 1994년 호텔업계에서 처음으로 주방장 출신 임원이 된 인물이다.

그는 화교 출신이며 롯데호텔의 전신인 반도호텔 중식당에서 중국요리를 배웠다. 1979년에 신라호텔이 문을 열면서 중식당 ‘팔선’도 영업을 시작했다. 후덕죽 씨도 팔선에서 일하게 됐다.

그런데 개점 후 2년이 지나도 당시 최고 중식당이었던 서울플라자호텔 ‘도원’보다 매출이 떨어졌다. 화가 난 이병철 회장은 당장 문을 닫으라고 지시했다. 그때 이 고문이 폐점을 막았다.

이 고문은 후덕죽 씨의 음식을 좋아했다. 이 고문이 이 회장에게 후덕죽 씨의 요리를 먹어보고 폐업 여부를 결정하자고 권유했다. 이 회장은 후덕죽 씨의 요리를 먹은 이후에는 폐점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이렇게 인정이 있었던 이 고문은 삼성가의 재산분쟁 종식에도 영향을 미쳤고 가족 간 화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삼성가 재산분쟁이 일어나고 이건희 회장의 형제들이 상속재산 반환 소송을 걸었지만 이 고문은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때 이 고문은 집안이 화목해지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재판에서 이건희 회장이 승리하면서 재산분쟁이 끝났다.

이 고문은 골프를 좋아하고 문화예술도 좋아했다. 이 고문이 남긴 문화예술 시설 중 대표적인 것이 2013년 개관한 ‘뮤지엄 산’이다. 뮤지엄 산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

이 고문이 가야금 산조의 대가 공철 서달종에게 가야금을 배웠다는 증언도 있다.

2013년 강정숙 용인대 국악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병철 삼성 회장이 선생님(공철 서달종) 팬이었다”며 “그래서 삼성그룹에 외국 손님이 오면 선생님을 초청해 공연을 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강 교수는 “이병철 회장의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선생님께 가야금을 배우기도 했다”며 “선생님이 쓰던 가야금을 이인희 고문이 갖고 있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 고문은 여성 지위 향상에도 공헌했다. 국내에서 유일한 여성장학재단인 두을장학재단을 이끌면서 지난 17년 동안 약 500명의 여학생을 지원했다.

한편 재계에서는 이 고문이 대표적인 한국 여성기업인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국내에선 이 고문만큼 큰 발자취를 남긴 여성기업인을 찾기 어렵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 있지만 1936년 생으로 이 고문보다 8살 젊고,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1943년생이다.  

이 고문의 생애가 현재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여성 경제인들에게 귀감이 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는 결단력이 뛰어났다. 1998년 IMF위기 때문에 한솔그룹이 위기에 몰리자 이 고문은 스스로 한솔그룹 구조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구조조정을 지휘했다. 한솔그룹의 구조조정은 일본 NHK가 ‘경제개혁과 구조조정 모범사례’로 평가하기도 했다. 
 
경제인들은 지금은 이 고문이 활동하던 시대보다 훨씬 여성에게 유리한 시대가 됐다고 보고 여성 기업인들이 보다 활발한 활동을 해줄 것을 주문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은 “(지금은) 유연한 사고, 뛰어난 적응력 등 여성의 장점이 세상의 변화에 잘 부합하는 시대”라며 “여성 기업인이 보다 적극적으로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사업을 펼쳐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