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회 칼럼] 설날의 소회
[김영회 칼럼] 설날의 소회
  • 김영회(언론인)
  • 승인 2019.01.3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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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이 서울역에서 설 연휴를 맞아 귀성 열차에 탑승 전 환하게 웃고 있다./연합뉴스

-기나긴 역사, 민족의
혼이 서린 큰 명절 설날.
탄압과 수난 속에서도
연면히 이어 온 그 정신. 
 2019년 설날을 생각합니다-

다시 설날을 맞이합니다.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의 양대 명절의 하나인 설날은 19세기 말 양력이 이 땅에 들어오고부터 수난이 시작됐지만 기나긴 세월 온 나라 백성이 함께 지켜 온 대축일입니다.

설날의 유래는 멀리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신라 비처왕 때(BC488) 정월 초하룻날 설을 쇠었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더라도 설날은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로부터 고려와 조선을 거쳐 민족의 전통 문화로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설날은 그 뿌리가 장장 2500년은 된 것이 아닌가 짐작 됩니다.

설은 한 해를 끝내고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로 '설다', '낯설다', '삼가다'등의 글자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한자로는 원단(元旦), 세수(歲首), 신일(愼日)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설날에는 부모 형제,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고,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고, 조상의 묘에 성묘(省墓)를 하는 것이 고유한 풍속입니다. 또 설빔이라 하여 새로 만든 옷을 입고 남녀노소가 동네 마당에 모여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등 민속놀이를 하며 같이 즐기는 것이 새해의 풍속입니다. 전통적으로 설날을 맞으면 누구나 생일에 상관없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우리민족만의 고유한 전통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민족의 명절이 근·현대에 들어오면서 불행하게도 제 이름마저 빼앗긴 채 숱한 박해와 핍박을 당해 왔습니다.

고종황제 때인 1895년 음력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역법(曆法)을 바꿔 쓰기 시작하면서 설날의 수난은 시작됩니다. 이때부터 음력 설날은 구시대의 유물로 낙인 찍혀 명칭조차 ‘구정(舊正)’이라는 이름으로 격하되는 수모를 당해야 했습니다.

이는 일찍 서양문화를 받아들인 일본이 쓰는 양력을 따라 하는데서 생긴 호칭이었지만 수난은 1910년 한·일합방과 함께 일제의 조선문화 말살정책으로 본격적인 탄압으로 바뀝니다. 일제는 양력설을 강요했고 백성들이 설을 쇠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단속을 했습니다. 떡국을 먹지 못하게 떡 방앗간을 지켜 서서 기계를 돌리지 못하게 했는가 하면 설빔으로 색동옷을 입은 아이들에게 먹물을 뿌리는 고약한  심술을 부리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민족의 혼이 깃든 전통은 온갖 탄압 속에서도 감시의 눈을 피해 가며 이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이없었던 것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고 정부를 수립한 뒤에도 설날에 대한 핍박은 40년이 넘게 더 계속됐다는 점입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음력설을 쇠는 것은 민족의 수치”라는 해괴한 논리로 백성들에게 양력설을 강요했고 박정희정부 또한 1961년 집권이후 설날에 학생들을 등교시키고 공장도 쉬지 못하게 하는 등 탄압을 계속했습니다. 그 때문에 국민들은 신정과 구정으로 나뉘어 두 번 설을 쇠는 이중과세라는 웃지 못 할 풍경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3공화국이 무너지고 5공 정권에 들어와 지지기반이 취약했던 전두환 정부는 1982년 1월 5일 민심을 회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설날 하루를 공휴일로 풀어줬고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설날이라는 제 이름을 되찾은 것은 1989년 2월 노태우 정부에 와서 입니다. 이때 비로소 ‘설날’이라는 옛 이름과 함께 3일을 공휴일로 지정함으로써 잃어버린 설 명절을 되찾습니다. 실로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 나라에서 무려 40년 동안 이름마저 잃어 버렸던 설날은 온갖 압제 속에서도 끊질 긴 생명력으로 90년 만에 다시 회생을 한 것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은 대통령 재임 시 온갖 불법으로 옥고(獄苦)마저 치렀지만 6·25뒤 36년 4개월 동안 지속 돼온 밤 12~4시 시행되던 통행금지 철폐와 설날을 복권시킨 그 공은 평가받아야 될 듯싶습니다.

이번 설에도 우리 국민들은 또 한 번 ‘민족의 대 이동’이라는 범국민적 연례행사를 치루고 있습니다. 전국의 철도역과 고속도로는 물론 모든 도로는 주차장이 되다시피 혼잡스러운 가운데 자석에 끌려가듯 부모 형제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고향으로 달려들 가고 있습니다. 그 숫자가 국민의 절반이 넘는 3000만 이라고 하니 놀랍기만 합니다.

중국의 옛 시에 북쪽 호 나라에서 온 말은 추운 겨울 북풍을 향해 서고 남쪽 월나라에서 온 새는 남쪽 나뭇가지를 골라 앉는다(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는 구절이 있습니다. 자신을 낳아준 고향을 잊지 않는 ‘귀소본능(歸巢本能)’을 노래한 명구입니다.

'귀성전쟁'은 동물들의 귀소본능과 다를 게 없습니다. 온종일 산과 들을 헤매던 짐승들은 해가지면 제 굴을 찾아들고 하늘을 날던 새들이 둥지로 돌아가듯 인간도 때가 되면 저를 낳아 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동물의 원초적 본능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서 설날 풍속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난 날 설날이면 젊은이들은 물론 조무래기 아이들까지 모두 온 동네 집집마다 어른들을 찾아 일일이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들으며 음식을 대접받던 일은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사는 형편은 어려웠지만 당시는 사회공동체로서 그것은 당연한 도리였고 미풍양속이었는데 이제 그런 모습은 찾아 볼 수조차 없으니 시절의 무상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으로 살면서 왕래는커녕 옆집  사람이 누구인지, 이름조차 모르고 사는 오늘날 도시의 비정한 세태를 보노라면 개인주의에 이기주의까지 팽배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뜻깊은 명절을 맞고도 즐거움을 함께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남들이 모두 고향을 향해 달려가건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 그들은 명절이면 오히려 더 외롭고 쓸쓸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야할 고향은 있으나 가지 못하는 이산가족들이 그렇고 사정이 어려워 귀성을 포기한 이들 또한 그렇습니다.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 보호시설의 부모 없는 어린이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생활보호 대상인 극빈층의 설날은 또 어떻겠습니까.

회사가 어려워 밀린 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이역만리 해외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 또한 가족이 그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남북의 긴장은 완화됐다고는 하나 국토방위를 위해 설한풍 몰아치는 혹한의 전선 고지, 해안초소에서 밤을 지새우는 군 장병들, 그리고 국민의 안녕질서를 위해 고생하는 경찰관, 소방관들, 또 노숙자와 같은 음지에 있는 많은 이들이 모두 그러할 것입니다. 이들에게 명절은 오히려 더 힘든 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명절이면 음식 준비하느라 녹초가 되는 주부들의 노고 역시 그냥 넘겨서는 안 됩니다. 시대에 맞게 제례를 간소화하고 남자들이 곁에서 일손을 돕는 특별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옛날 가난한 백성들은 명절이면 제수준비 걱정에 “이놈의 명절 호랑이도 안 물어가나!”하고 푸념을 하곤 했습니다.

아무튼 뜻깊은 명절입니다. 이제는 신정이니 구정이니 간섭하는 사람 없고 남의 눈치 볼 일도 없으니 모두가 차분한 마음으로 온 가족이 평안하고 즐거운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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