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행들은 '빨리 가는 법'보다 '함께 가는 법' 고민해야
[기자수첩] 은행들은 '빨리 가는 법'보다 '함께 가는 법' 고민해야
  • 윤아름 기자
  • 승인 2019.01.30 2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각장애인 외면하는 국내 은행들

“장애인 전용 은행 창구요?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시각장애인인 이연주 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팀장은 “장애인 대부분이 전용 창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라며 “은행에 전용 창구가 설치돼 있는 것도 몰랐고, 영업점에 가서도 안내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기자는 30일 A은행 영업점에 방문해 장애인 창구 위치를 물었다. 고객 응대를 하던 직원은 예상치 못했던 질문인 양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대답한 뒤 누군가에게 질문을 하러 갔다. 구색을 갖춘듯한 공간은 있었지만 일반 고객들도 구분없이 상담을 받고 있었다.

현재 A은행은 장애인을 위한 전용 창구를 전국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고객에게 필요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겠다는 것이 이 전용 창구의 설립 취지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방문해 살펴본 맞춤 창구의 풍경은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았다.

전용 창구에서 업무를 보더라도 시각장애인이 통장을 개설하기까지는 상당히 많은 절차가 필요했다. A은행은 시각장애인이 업무를 보려면 동행인을 데려와 두 사람의 신분을 모두 증명해야 한다. 

A은행 홍보팀 관계자는 “(동행인 신분확인을 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이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지만 정작 시각장애인들은 혼자서 업무를 볼 수 없다는 것 자체를 ‘차별’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이 팀장은 “은행, 혹은 담당자에 따라 시각장애인 자필서명만 요구하기도 하고, 동행인의 신상정보를 요구하기도 한다”며 “시각장애인들이 스스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협회 차원에서) 요구는 하고 있지만 특별히 진척이 되고 있지는 않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더구나 은행권 ‘디지털화’ 바람으로 비대면 채널이 증가하면서 시각장애인들이 설 곳은 더욱 사라지고 있었다.

이 팀장은 “시각장애인들은 앱으로 거래를 할 수가 없는 실정"이라며 “B은행에 음성으로 금융거래를 해주는 AI가 있긴 하지만 눈으로 설명을 읽으며 인증을 할 수도 없고, 거래결과를 확인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기자가 B은행의 AI 음성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했더니 ‘유의사항 확인’, ‘약관 동의’ 등 눈으로 확인해야 할 수많은 과정이 필요했다.

한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세상이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막막하고 두려울 뿐”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이 말을 듣고 “은행에 가서 기다리지 않아도 업무를 볼 수 있어서 좋다”고만 생각했던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보도자료를 통해 은행들이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내놓는 것을 보면서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시각장애인들이 현재 은행이 내놓은 서비스에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비(非)장애인들의 편협한 이기주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은행권은 보다 적극적으로 장애인 고객들을 위한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 시각장애인들이 혼자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점자 서류를 제작하고, 인증방법을 달리한 시각장애인 전용 디지털 채널을 구축해야 한다.  ‘빨리 가는 것’보다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않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