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김정은 시진핑 회담으로 본 한반도의 역학관계
[송장길 칼럼] 김정은 시진핑 회담으로 본 한반도의 역학관계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9.01.11 12: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차 방중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엊그제 베이징을 방문해서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나고 돌아간 것은 천둥번개를 동반한 느닷없는 소나기와 같았다. 갑자기 한국과 미국, 국제사회에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총총히 사라졌다. 비밀리에 준비된 중국의 김 위원장 생일잔치는 극진했고, 시 주석 내외가 김 위원장 부부에게 8일과 9일 이틀 동안 베푼 세 차례의 식사 대접도 합치면 7시간 가량이나 이어졌다. 김 위원장에게는 어디서도 못 받을 융숭한 대접이어서 중국이 그만큼 공을 들인 셈이다.

북한과 중국이 각각 노린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이며, 한반도에는 무엇을 떨어뜨렸는가? 여러가지 추측과 분석이 난무하지만 내용면에서는 괄목할 합의를 낳은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과 북한은 양국 정상회담 이틀 뒤 “제2차 미북정상회담을 지지하며 성과를 위해 노력한다”는 덕담 수준의 얘기를 나눴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만남 자체가 갖는 의미는 메가톤 급으로 북핵문제와 동북아의 세력판도에 결코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김 위원장은 필경 국제제재가 풀리도록 중국의 노력을 강하게 주문했겠고, 시 주석은 원칙적으로는 동의하면서도 중국의 역할이 제한적이라고 설명했을 것이다. 북한이 한국과 미국에 뺐길 수 없는 황금어장이기 때문에 핵문제가 풀리면 경제적 지원과 개발사업에는 참여하겠음을 약속했지 싶다. 중국은 북한을 옆에 두기 위해 북한의 편을 더 적극 들어주고 싶어도 미국과의 무역분쟁과 팽창을 억제하는 견제에 대응하는 입장에서 적극적인 외교적 행위는 자제했을 것이다. 이러한 절제는 시 주석의 등장이래 치고나온 중국 굴기와 세력확장의 기세를 인내하는 듯한 징후로도 볼 수 있다. 과거 같으면 원색적인 거친 언어로 미국을 비난하고, 북한을 두둔했을 것이다.

북중정상회담이 북핵문제의 공동 대응안을 뚜렷하게 마련하기란 애당초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계속 지지해 왔고, 앞으로도 국제사회의 흐름을 역행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이 비핵화를 실행하도록 설득하는 입장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제재의 철회와 체제보장을 덥썩 받아줄 수 없는 처지이다. 북한으로서도  중국이 드문 혈맹이라 해도 그들의 모드에 맞추기 위해 나름의 전략을 포기, 또는 수정하면서까지 중국과 보조를 맞추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만일 북한이 과거처럼 비핵화의 과정으로 진행하다가 어느 단계에서 반발해 표변하는 경우까지를 계산에 넣고 숨기고 있다면 서로 눈을 감으면서 일정한 선을 그어놓고 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렇게 내용상의 접근은 성과가 보이지 않았더라도 이번 제4차 김정은 · 시진핑 회담은 표면화된 외교적 방식(Diplomatic Manner)으로는 분명한 노림수가 각각 작동했고, 일정한 효험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중국은 김 위원장 초청만으로도 북한이 미국의 유도에 말리지 않도록 하는 견제구를 날리려 했다. 미북정상회담이 다가오고 있다는 판단 아래 김 위원장을 서둘러 불러들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중국이 북한의 미국 접근을 심각하게 경계하고 있음은 지난해에 미북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오랜 비토를 깨고 세 차례나 김 위원장을 잇달아 초청했고, 잘 나가던 한중 관계를 사드배치를 이유로  일그러뜨린 사례로 극명하게 들어냈다.

중국은 북핵이 이슈화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자기들 편에 가까이 끌어놓는 데에는 일단 괄목할 성공을 거두었다. 네 차례의 시진핑-김정은 정상회담을 통해서 그동안 서먹했던 불신을 말끔히 씼었고, 아삼륙처럼 죽이 맞는 관계로 발전했다. 북한과 중국이 요즈음처럼 밀착하기는 근래에 보기 드문 일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오래 이어질 세기적 세력 싸움에서 방파막이를 단단히 다진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북한 문제를 간접적인 카드로 삼고 있을 것이다. 미국이 아직도 북핵문제에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점은 중국으로서는 꽃놀이패를 쥐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은 생존에까지 영향을 미칠 미국과의 협상에서 중국이라는 강력한 지렛대(leverage)를 확보하게 되니 더없이 만족할 것이다. 중국은 G2이자, 미국과는 경쟁국이면서 한국전의 반대편 대상국(Counter Partner)인 만큼 뒷배로서 최고의 우군이기 때문이다. 냉엄한 국제관계에서 힘의 뒷받침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앞으로 지리하게 이어질 북핵 협상에서 두 나라는 음양으로 계속 호홉을 맞춰가며 주거니받거니 서로 상대의 형세를 활용할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일은 중국과 북한의 밀착이 미치는 한반도 역학관계의 변화이다. 우선 1992년 한중수교 이래 급속히 발전돼 온 한중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꼽을 수 있다. 중국은 앞으로 한국보다는 북한을 먼저 챙기게 될 것이 뻔하다. 당장 급변하지는 않더라도 안보와 경제협력 모두 점진적인 변화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미국과 북한이 제 2차 미북정상회담에서 상당한 성과를 이루게 되더라도 완전한 북핵의 타결은 거의 난망이므로 북중 밀착은 한국에게는 무지근한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 다시 열려 남북 간의 관계개선이 크게 진전되더라도 그 부담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안보상황은 더욱 미묘해졌다. 북핵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과 정렬되지 않은 보폭으로 자꾸 먼저 나감으로서 불협화음을 냈다. 미국의 조야에서는 친한인사들조차 상당한 불신을 갖고 있지만 떠들지 않고 속으로 삭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관계는 국가이익에 그리 결정적이지 않은 문제로 충돌, 심각하게 악화돼 있다. 그에 따라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체제는 눈에 띄게 손상돼 있는 상태이다.

그런 상황 변화로 한국안보의 방정식이 달라지고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받으려 노리고 있고, 한미동맹에는 극좌가 내두른 단칼에 작은 상채기들이 나 있다. 일본은 언뜻언뜻 무장한 등을 보이며, 중국은 미국에 가까운 한국에 찡그린 이마를 내비친다. 이런 상황이 한국 안보를 암암리에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세력권 도표(diagram)는 표면으로 보이는 것처럼 정적인 것이 아니고 내면으로는 움직이고 있는 운동체이다. 불확실하게 움직이면서 불안감과 위기를 안긴다. 더구나 물밑에서는 부단히 꿈틀거리며 엄청난 파급효과를 낸다. 사드(THAAD)문제가 터지자 중국에 진출했던 롯데백화점과 현대자동차, 태평양화장품 등은 폐점이나 매출의 반토막 같은 피해를 입지 않았나? 한국의 안보상황의 약화가 일어나면 그 여파로 여러가지 증상이 일어날 것이다. 주한미군의 철수나 한미동맹의 파기 같은 위험한 요구도 수면 위로 떠오를 우려가 있다. 이미 북쪽에서 그 문제가 간혈적으로 언급되고, 광화문에는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피켓이 눈에 띄어 걱정스럽다. 내부에 잠재해 있던 극좌의 준동은 큰 사회적 불안 요인이자 독이 될 우려가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밝힌 비핵화를 신뢰한다면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고 나서 김 위원장의 답방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비핵화가 가까워졌다는 인식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의 할 일은 평화라는 낭만의 뒤에 그늘지는 국가 안보를 더욱 확실하게 하는 것과 동북아의 역학관계에서 국가의 안위를 담보할 튼튼한 장치와 포석을 고민하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 내부의 반대가 적지 않음에도 왜 그리 간절한지 이해가 안 된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와 문 대통령의 비핵화가 같은 의미인지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대통령과 정부는 북핵 협상이 미국과 북한 간의 담판에 넘겨진 만큼, 혹시라도 양 측의 타협에서 우리에 불리한 결말이 나지 않도록 외교력을 발휘하면 된다. 엉성한 대응이나 실족은 안보에 구멍을 내주는 일이며, 국운에도 함정이 될 것이다. 진영논리나 감정적인 대처가 아니라 전문가적인 투철함과 혜안이 동원돼야 한다. 혹시라도 북이 원하는 핵보유국 지위의 인정이나 완전한 폐기가 아닌 엉거주춤한 상태로 결말이 나면 한국은 두고두고 견디기 힘든 후환을 면치 못할 것이다.

올해는 제2차 미북정상회담과 제4차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비핵화 협상의 진전 등 안보의 중요한 스케줄이 예정돼 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대한민국의 미래에 최선의 길을 찾아야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된다는 명제는 너무도 엄중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