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12.19 수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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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회 칼럼] 막걸리의 오덕사반
이제 연말을 맞아 송년회 등 각종 모임이 전국의 음식점을 메울 것입니다. 또 얼마나  많은 음주사고가 일어날지 미리부터 불안합니다. /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적당히만 마시면 백가지 약 가운데 으뜸이라는 술. 즐기려고 마시는 술이 도를 넘으면 나도, 남도 함께 피해를 보는 게 문제―

우리민족의 전통을 끈질기게 이어오고 있는 술 막걸리는 오덕삼반(五德三反)이라는 두 가지 평을 함께 듣고 있습니다. 이르건대 오덕삼반이란 다섯 가지의 덕과 세 가지의 장점을 이르는 것 일터인 즉 한번 옮겨 보겠습니다. 

먼저 ①취하되 인사불성일 만큼 취하지 않음이 첫째 일덕(一德)이요 ②새참에 마시면 요기(療飢)가 되니 이덕(二德)이며 ③힘 빠졌을 때 기운을 돋우니 삼덕(三德)이고 ④한잔 마시고 넌지시 웃으면 안 되던 일도 되는 것이 사덕(四德)이며 ⑤벗들과 더불어 마시면 응어리가 풀리니 오덕(五德)입니다. 특히 다섯 번째 오덕은 그 옛날 향촌에서 넙죽한 대접에 철철 넘치게 막걸리를 한잔씩 돌려 마심으로써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크고 작은 감정을 풀곤 했으니 다섯 가지 덕 가운데 첫째로 쳤습니다.

또 삼반(三反)이란 ①놀고먹는 사람이 막걸리를 마시면 속이 끓고 트림만 나며 숙취를 부른 다 해서 근로지향(勤勞志向)의 반유한적(反有閑的)이라 일반이요 ②땅을 파고 그날 그날 연명하는 농민의 반귀족적(反貴族的)이 이반이요 ③조야(朝野)가 참여하는 제례나 대사 때에 고을의 합심주로 돌려마셨으니 반계급적(反階級的) 평등지향이니 삼반(三反)이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술꾼이 지어낸 위트겠지만 그런대로 한잔 술의 여유가 엿보이니 굳이 토를 달 일은 아닐 성 싶습니다.

술을 즐기는 어떤 애주가는 인류 역사상 인간이 발명해낸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술이라고 단언하는 이도 있습니다. 기나긴 세월이 흐르면서 과학문명을 발전시키고 꿈같은 현대 사회를 이룩했지만 그 어느 것도 술 보다 더 한 것은 없다는 논리입니다. 생활에 편리한 수많은 기구들을 발명해 냈지만 누천년의 시공을 초월해 긴 시간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날이면 날마다 한 잔술로 가슴속의 번뇌를 삭혔으며 또 위로를 받았는가를 생각한다면 다분히 일리가 있다고 해도 그른 말은 아닐 듯합니다.   

조선 초기의 명상 정인지(1396~1478)는 “젖과 막걸리는 생김새가 같다” 하고 아기들이 젖으로 생명을 키워 나가듯이 막걸리는 ‘노인의 젖줄’이라고 했습니다. 정인지를 비롯한 문신 서거정(1420~1488), 손순효(1427~1497) 등은 만년에 막걸리로 밥을 대신했는데 큰 병 없이 장수한 걸로 전해집니다.

조선 중엽 막걸리 좋아하는 이(李)씨 성의 판서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아들들이 “왜 아버님은 좋은 약주나 소주가 있는데 막걸리만을 좋아 하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이판서는 “소 쓸개 세 개를 구해 오너라” 시킨 다음 그 중 한 쓸개주머니에는 소주를, 다른 쓸개주머니에는 약주를, 나머지 쓸개주머니에는 막걸리를 가득 채우고 처마 밑에 매달아 두라고 명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에 이 쓸개주머니를 열어 보니 소주 담은 주머니는 구멍이 송송 나 있고 약주 담은 주머니는 상해서 얇아져 있는데 막걸리 담은 주머니는 오히려 이전보다 두꺼워져 있었습니다. 그제야 아들들은 아버지의 깊은 뜻을 알아차렸습니다. 야사에 전해오는 이야기인데 실제 그러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옛 사람들은 풍류(風流)로 술을 마셨습니다. 물론 선비들의 얘기지만 술 한 잔에 시 한수를 주고받고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인생을 노래했고 흥에 취해 대자연을 즐겼던 것입니다. 조선 효종 때 실학자였던 김육(1580~1658)은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나를 부르시소 / 내집에 꽃피거든 나도 자네 청해옴세 / 백년 덧 시름 잊을 일을 의논코자 하노라"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당나라의 시선(詩仙) 이백(李白·701~762)은 그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에서 "꽃속에 묻혀 한 동이 술을 놓고 / 홀로 잔 기울이는데 벗조차 없구나 / 높이 잔 들어 명월을 맞이하여 / 달과 나와 그림자 셋이 되었다 / 달은  원래 술을 마실 줄 모르고 / 그림자는 나를 따라 다닐 뿐이다"라고 읊었습니다. 그가 주흥에 겨워 호수에 비친 달을 잡으려 하다가 물에 빠져 생을 마감한 건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입니다.

자고로 술은 기쁜 사람을 더욱 기쁘게 하고 슬픈 사람의 시름을 씻어 주는 마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술을 마시고, 술로 근심 걱정을 달래곤 했던 것입니다. ‘백년막석천회취(百年莫惜千回醉)요, 일잔능소만고수(一盞能消萬古愁)’라 “슬퍼하지 말라. 백 년 동안 천 번을 취하리라. 한잔 술이 능히 만고의 시름을 씻으리니.” 

술은 한번 입에 대면 계속 마시게 되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즐거우면 즐거워서 한잔, 슬프면 슬퍼서 한잔, 외로우면 외로워서 한잔, 이래서 한잔, 저래서 한잔 계속 술을 마시게 됩니다. 그런데 과하게 술을 마시면 이성이 흐려지고 신체에 이상이 오는 건 정한 이치입니다.

법화경(法華經)에 보면 초측인탄주(初則人呑酒) 차측주탄주(次則酒呑酒) 후측주탄인(後則酒呑人)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조금 지나면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뜻이니 지나친 음주는 결국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경구인 것입니다. 술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엊그제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국민의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알코올성 관련 사망자 수는 총 4809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는 하루 평균 13명이 술 때문에 숨지는 것으로 음주로 인한 사회 경제적 비용이 한해 1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국가적 폐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저 기분 전환을 위해 별 생각 없이 마시는 술로 인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면 그야말로 예삿일은 아닙니다. 사실 술은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과 부정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주량에 맞게 적당히만 마신다면 기분도 좋아질 뿐 더러 건강에도 좋아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데도 말입니다.

그래 옛 중국의 역사서인 ‘한서(漢書)’에는 ‘적량음주백약지장(適量飮酒百藥之長)’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적당히 마시는 술은 백가지 약 가운데 으뜸”이란 말이니 문제는 술이 아니라 바로 사람인 것입니다. 최근에 와서는 여성들과 청소년들마저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는 풍조가 일반화 되고 있으니 아닌 게 아니라 걱정은, 걱정입니다.

거기다 날마다 텔레비전 화면을 장식하는 음주운전으로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야만적인 행위가 되풀이 되고 있으니 미상불(未嘗不) 범국민적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제 연말을 맞아 송년회 등 각종 모임이 전국의 음식점을 메울 것입니다. 또 얼마나  많은 음주사고가 일어날지 미리부터 불안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즐기려고 마시는 술이 불행의 씨앗이 되지 않는 절제의 세모가 되었으면 오죽 좋겠습니까.

김영회(언론인)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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