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12.19 수 18:00
  •  
HOME 스포츠·연예 문화·예술 줌인컬처
이정식 작가 "시베리아 횡단철도에는 민영환·안중근·이광수의 '치열한 역사' 흐른다"우먼센스 인문강좌서 사진·동영상 곁들인 알토란 해설...참석자들 "꼭 열차 타보겠다"
'시베리아 문학기행'의 저자인 이정식 서울문화사 사장 겸 여성경제신문 발행인이 27일 서울 용산구 서울문화사 별관 강당에서 열린 우먼센스 인문강좌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바이칼 호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시베리아 문학기행'의 저자인 이정식 서울문화사 사장 겸 여성경제신문 발행인이 27일 서울 용산구 서울문화사 별관 강당에서 열린 우먼센스 인문강좌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바이칼 호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바이칼 호수에는 우리의 치열한 역사가 흐르고 있습니다. 을사조약을 막지 못한 잘못을 속죄하려 자결한 민영환 선생, 고종의 헤이그 밀사였던 이준·이상열 열사,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 등이 100여년 전 브라디보스토크에서 이 열차를 탔습니다. 또 근대문학의 개척자인 이광수도 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와 가깝게 있는 시베리아의 치타까지 갔습니다.  그런 뜻깊은 현장을 직접 가보는 일은 역사를 제대로 배우는 귀중한 체험의 시간입니다."

'시베리아 문학기행'을 쓴 이정식 작가(서울문화사 사장 겸 여성경제신문 발행인)가 시베리아 여행의 의미를 설명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을 통해 다양한 인문학 식견을 넓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먼센스 인문강좌가 27일 서울 용산 서울문화사 별관(시사저널 건물) 강당에서 열렸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올해 마지막 인문강좌를 듣기 위해 많은 참석자들이 자리를 채웠다.

이 작가는 그동안 수차례 시베리아를 여행했다. 횡단열차뿐 아니라 러시아 대문호들의 발자취를 따라 옴스크, 세메이(옛 이름 세미팔라친스크), 사할린까지 누볐다. 그는 이때 찍은 다양한 사진과 동영상까지 곁들여 생생한 강연을 펼쳤다. 더욱이 우먼센스와 바이칼 BK투어가 준비한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가는 겨울 바이칼 호수’ 여행이 내년 2월 8일부터 15일까지 7박 8일간 실시되기 전에 열린 강의라서 반응이 무척 뜨거웠다. 모두들 알토란 정보를 얻기 위해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열공모드였다.

이 작가가 더 즐거운 투어를 위해 생활밀착형 깨알팁을 방출하자 참석자들은 금세 강의에 푹 빠졌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동쪽 끝은 블라디보스토크, 서쪽 끝은 모스크바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출발한다. 바이칼 호수가 있는 이르쿠츠크까지의 거리는 4106km로  횡단열차 전체 길이 9288km의 약 44%에 해당된다. 열차로 꼬박 사흘이 걸린다. 이 작가는 지난해 갔을 때는 76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시간은 서울보다 한시간 빠르고, 이르쿠츠크는 한시간 늦다. 이르쿠츠크의 낮 12시는 우리나라 시간 오후 1시다. 

열차 탑승시 항상 여권을 검사하기 때문에 여행 내내 여권을 늘 몸에 지니는 것이 편리하다. 객실은 보통 2인 1실인 룩스와 4인 1실인 쿠페 등이 있지만, 우먼센스 여행에서는 4인 1실 쿠페를 2인 1실로 개조해 사용해 더 안락하다.

식사는 승객들이 준비해 타는 것이 보통이지만 우먼센스 여행의 경우 큰 도시에서는 한식 도시락을 제공하기도 한다. 객실 온도는 영상 22~26도를 항상 유지하기 때문에  낮에는 반팔옷이 더 편리하다. 화장실은 용변을 보면 바로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에 열차가 정거장에 서기 전후 20~30분 정도는 폐쇄된다.

'시베리아 문학기행'의 저자인 이정식 서울문화사 사장 겸 여성경제신문 발행인이 27일 서울 용산구 서울문화사 별관 강당에서 열린 우먼센스 인문강좌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바이칼 호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시베리아 문학기행'의 저자인 이정식 서울문화사 사장 겸 여성경제신문 발행인이 27일 서울 용산구 서울문화사 별관 강당에서 열린 우먼센스 인문강좌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바이칼 호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27일 서울 용산구 서울문화사 별관 강당에서 열린 우먼센스 인문강좌 참석자들이 이정식 작가의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바이칼 호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한국인 중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가장 먼저 탄 사람은 누구일까? 남아있는 기록으로는 충정공 민영환이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을미사변)된 뒤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1896년 2월 경복궁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아관파천을 단행한다.

고종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의 힘을 빌릴 계획을 짠다. 1896년 4월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환을 특명 전권공사로 임명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시킨다. 민영환은 인천을 떠나 중국(상하이)·일본(나가사키·도쿄)·캐나다·미국(뉴욕)·영국(런던)·네덜란드·독일·폴란드를 거쳐 48일만에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민영환은 귀국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 이 때의 자세한 여정은 그의 저서 '해천추범'에 나와 있다.

"고종은 민영환에게 특명을 내렸습니다. 표면적인 방문 목적은 황제 대관식 축하사절이었지만 진짜 목적은 일본의 위협으로부터 고종을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 군인 1500명 파병을 요청합니다. 언제 일본인의 손에 죽을 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종은 이런 '눈물어린 부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러시아도 당시 '제 코가 석자'였습니다. 여기저기서 혁명의 기운이 꿈틀대던 시점이라 여력이 없었죠. 결국 민영환은 빈손으로 귀국합니다. 이후 민영환은 1905년 을사조약에 대한 부당함을 호소하며 자결을 했고 충정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이 작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한국의 역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쏟아냈다. 특히 횡단열차가 우리나라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점을 입체적으로 풀어내 공감을 이끌어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러일전쟁(1904~1905)이 발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일본과 러시아는 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03년에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아 서로 다투지 말자며 만주와 한국을 분할하려고 했어요. 당시 러시아는 한반도를 39도선을 기준으로 나누려고 했습니다. 부동항이 없었던 러시아 입장에서는 39도선 위쪽에 있던 원산항이 탐났던 겁니다. 하지만 일본은 반대했죠. 러시아의 남하정책이 못마땅했고, 더욱이 시베리아 횡단철도까지 완성되면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러시아에 큰 힘이 될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국력의 격차가 대외적으로 10대1 정도여서 감히 일본이 러시아를 공격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904년 2월 일본이 러시아를 기습공격해 러일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작가가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본과 러시아의 대결을 설명하자 모두들 귀를 쫑긋 세웠다. 그는 "결국 일본이  승리했다. 열강들의 한반도에서의 힘의 균형은 무너지면서 일본은 거칠것이 없었다"라며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한국은 외교권을 빼앗겼고 식민지로 가는 아픈 역사가 시작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초기의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해 하얼빈을 거쳐 카림스카야를 연결했다. 중국 영토 일부분을 조차해 건설한 것이다.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까지 타고 갔던 바로 그 노선이다. 하지만 러일전쟁에서 패한 뒤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하바롭스크~카림스카야로 노선을 변경해 러시아 영토만을 통과하는 현재의 구간을 1916년 완성했다.

27일 서울 용산구 서울문화사 별관 강당에서 열린 우먼센스 인문강좌 참석자들이 이정식 작가의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바이칼 호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27일 서울 용산구 서울문화사 별관 강당에서 열린 우먼센스 인문강좌 참석자들이 이정식 작가의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바이칼 호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이르쿠츠크와 바이칼 호수에 대해서도 질문이 쏟아지자 이 작가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르쿠츠크시 옆에는 앙가라강이 흐르고 도심에는 아름다운 서구식 건축물이 많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립니다. 민영환도 이르쿠츠크는 참 아름다운 곳이라는 말했습니다. 그는 기행문 '해천추범'에 '두루 거리와 시가의 상점을 보니 가지런하고 정밀하고 호사스러움이 모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다. 인물도 수려하며 거리 위의 수레바퀴 소리가 시끄럽고 끊임이 없으니 참으로 큰 도시로 번화한 곳이다. 수천리 황량한 물가에 어찌 이렇듯 눈을 휘둥그렇게 할 곳이 있으리라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이는 위아래로 정치를 잘하여 날로 문명에 이르는 곳으로 나간 때문이 아니겠는가? 사람으로 하여금 부러워하고 감탄하기를 끊이지 않게 한다'라고 이르쿠츠를 예찬했습니다."

이르쿠츠크는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이 유명하다. '데카브리스트’는 ‘12월에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1825년 12월에 일부 귀족과 장교들이 차르체제 전복과 농노제도 철폐를 내걸고 봉기를 일으켰다가 실패해 시베리아에서 30년간 유형과 유배 생활을 했다. 또 11명의 부인이 시베리아로 남편을 찾아와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일도 발생했다. 이들의 혁명정신과 부인들의 헌신을 기리기 위해 데카브리스트 발콘스키 공작과 트루베츠코이 공작 등 두 사람이 살던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해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11명의 부인들의 이야기는 시베리아에서 전설처럼 유명하다.

이 작가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이들 데카브리스트와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데카브리스트들의 지도자 발콘스키 공작은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외가쪽 친척입니다. 톨스토이의 어머니가 바로 발콘스키 공작의 친척이죠. 톨스토이가 이런 친척들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아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습니다. 톨스토이의 명작 '전쟁과 평화'는 데카브르스트들의 이야기를 1, 2, 3부로 쓰려다가 만들어진 1부에 해당되는 작품입니다. 정작 데카브리스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은 미완에 그쳤습니다. 1부를 무려 13년 동안 쓸 정도로 톨스토이의 열정이 강하게 담긴 작품입니다."

인문강좌여서 그런지 소설과 관련된 질문이 많았다. 춘원 이광수의 소설 '유정'과 바이칼 호수의 인연도 흥미진진했다. 이 작가는 '유정'이 바이칼 호수가 등장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라면서 인문학 정보를 알기쉽게 설명했다.

"이광수는 22세 때인 1914년에 바이칼 호수 인근 치타까지 갔습니다. 원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미국까지 가려고 했지만 여비가 떨어진데다 설상가상으로 제1차 세계대전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고 그곳에서 6개월 동안 발이 묶였습니다. 그 덕분에 바이칼을 제대로 구경하게 됐지요. 그 뒤 1933년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조선일보에 바이칼을 무대로 한 '유정'을 발표했습니다."

이광수는 결국 미국으로 가지 못했다. 오산학교에서 1년 정도 일을 하다가 일본으로 다시 유학을 떠난다. 와세다대학교 철학과로 가서 그 유명한 '무정'을 쓴다. 이광수는 격동의 역사를 살아서 그런지 더 살아있는 소설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비록 2시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격동의 역사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가는 겨울 바이칼 호수 여행 문의는 바이칼BK투어(02-1661-3585)로 하면 된다.

양혜원 기자  yhwred@naver.com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양혜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