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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장길 칼럼] 타인 존중이 증발된 사회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8.11.2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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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강효상, 임이자, 문진국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왼쪽부터)이 24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조명래 환경부장관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있다. /연합뉴스

지난 토요일 소공동 한국은행 앞 남대문로는 소란하기 짝이 없었다. 종로쪽에서 올라오는 긴 시위대가 지나가면서 교통 체증이 극심했고, 스피커로 증폭된 구호가 왕왕거리며 메아리치고 있었다. 요즈음 주말만 되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풍경이라고 단골 안경점 주인이 투덜댔다.

그 와중에 남대문시장쪽 버스 정류장에서 한 초로의 남자가 건너편 시위행렬을 향해 미친 듯이 큰 소리로 외쳐댔다. “지랄들 하고 있네. 무얼 잘 했다고 날뛰냐~.” 차림새도 멀쩡한 그는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저 사람들이 듣고 덤비면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옆의 노점상인이 말려도 우리 편은 없냐면서 막무가내였다. 

“지금 정권이 너무 잘못하니까 그러는 거지요. 경제도 말이 아니잖아요.” 비슷한 또래의 한 남자가 못 참겠다는 듯 쏘아부쳤다. 두 사람 간 싸움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장군멍군 말싸음을 주고받으면서 티격태격하다가 언쟁은 점점 거칠어졌고, 급기야 몸싸움으로까지 번졌다. 서로 멱살을 잡고 으르릉거리자 구경꾼들이 하나 둘 달려들어 겨우 떼어놓았다. 시끌벅적한 소음 속에서 벌어진 소동은 10여 분 만에 가까스로 수습되었고, 시위행렬도 여운을 길게 남기며 흘러가버렸다.

그들의 치고받는 논쟁 속에 박원순 서울시장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 쪽은 박 시장이 전임자의 사업계획은 모조리 뒤엎고, 해놓은 게 뭐냐, 용산 개발 어쩌구 해서 집 값만 올려놨다, 대통령 하겠다고 임기 내내 사람 박고, 돈 뿌린 것밖에 없다고 열을 올렸다. 다른 쪽은 번지르한 도시계획을 취소한 건 잘된 일이다. 그런 예산 줄여 고달픈 서민들에게 베푸는 게 좋은 정치 아니냐고 맞섰다. 양 쪽의 주장은 나름 시민으로서 소박하게 갖을 수 있는 견해로도 들렸지만, 그들에게는 칼날로 자른 듯이 이쪽은 천사고 저쪽은 악마였다.

그날 광화문 광장과 서울시청 앞에서도 대중시위는 요란했다. 촛불시위 이후 그 일대는 걸핏하면 고래고래 내지르는 격렬한 언어의 한마당이다. 거친 욕설과 비난, 퇴진 요구가 난무한다. 한쪽은 과거 정권의 잘못을 들춰내 난도질하고, 다른쪽은 현 정권의 독주를 찔러댄다. 노총 등의 집단 이기주의 구호와 깃발도 서울의 이마격인 광화문광장을 온통 뒤덮고 펄럭인다. 물리적인 충돌은 없더라도 그 날카로움이 총칼 없는 전쟁 같다. 

정의의 기치를 내걸고 거리로 나선 한국적 민주주의의 뜨거운 현장을 외국 관광객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서서 바라보는 모습이 이따끔 목격된다.  아마도 그들은  사회심리학자 어빙 제니스가 지적한 ‘응집력이 강한 집단사고(groupthink)의 희생’이  한국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 ‘희생’이 무엇일까를 떠올릴지 모른다. 선진국의 기준으로는 한국사회가 끌어안고 고뇌해야 할 뜨거운 과제로 비칠 것이다. 

힐긋거리면서 지나가는 행인들도 대놓고 싸우지는 않아도 속으로는 찬반의 입장이 분명할 것이다. 나라가 온통 진보와 보수로 갈려 휩쓸려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안이 국가와 시민에게 얼마나 유익한지를 진지하게 판단하기보다 저마다 선입견을 갖고 옳고 그른지를 먼저 재단한다면 영영 끝나지 않을 갈등이고 싸움이다.

비단 정치뿐이 아니다. 정치인으로부터 일반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남을 탓하고, 증오하는 기류가 곳곳에서 불거진다. 상업적이거나 어떤 목적적인 접근 외에는 순하고 살가운 미소와 따듯한 온도는 가뭄에 콩 나기다.

도로에서는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이 비일비재하고, 꺼떡하면 성난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려대며 욕지거리를 퍼붓는다. 거리의 젊은이들은 지나가는 아버지뻘 연장자를 빤히 바라보며 발암물질을 뿜어댄다. 전동차 안에서는 노인 남자들이 다리를 너무 벌리고 앉는다고 시비가 일고, 교실에서는 학생과 스승이 계급장 뗀 육박전도 불사한다. 학부모는 잘난 자식에게 심하게 군다고 담당교사를 기죽이고, 운동선수는 죽어라고 키워준 감독의 독선을 문제 삼아 대판 싸운다. TV에서는 성 행위 장면이 “미투”라며 적나나하게 묘사되고, 성별 다툼이 살인까지 불렀다고 영상매체들이 시끄럽다.

국가적인 공공사업에 정부와 주민, 또는 이해 당사자들 간의 분쟁이 죽자살자  부딪치고,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대립은 아예 철천지원수 같다. 안하무인인 민노총은 관련 기관 사무실들을 잇달아 점거하는 소동을 벌여 나라가 그들의 세상이라는 볼멘 소리까지 듣는다.

근로자들은 회사와 사주를 수탈자로 매도하고, 경영자들은 노조 때문에 기업이 죽어간다고 아우성이다. 현대자동차 임금이 새계 최고의 도요타보다 높다는 싸늘한 시선에도 노총들은 노사정 타협을 외면하면서 파업을 벼르고 있다. 국가경제의 주축인 삼성은 승계과정의 의혹으로 재벌해체를 염두에 둔 시민단체에 의해 고발되고, 이 나라 먹거리의 첨단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회계장부에 의혹이 있다고 해서 주식거래가 동결됐다. 한국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청와대와 국회, 정당들은 반대편의 잘못만을 케서 따지려고 날을 세우고 있고, 상대를 포용하려는 노력은 눈을 비벼봐도 기척조차 찾아볼 수 없다. 정치계가 지난 5일 청와대에 모여 그럴듯 하게 합의한 여야정협의체 구성도 일주일을 못 넘기고 싸움 속에 묻히고 말았다. 여권의 독주를 이유로 야당이 불참하므로서 출범조차 못하고 무산된 것이다. 서로 존중하려는 진정성이 결여된다면 어차피 공허한 해프닝일 수밖에 없었다. 

야당은 대통령이 국회 청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조명래 환경부 장관을 임명해버리자 국회와 야당을 무시한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에서 일곱 번째라고 꾸러미를 흔들어 보인다.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을 예산국회 목전에서 경질한 일도 예산심의를 무력화시키는 노림수라며 청와대의 인사 담당인 조국 민정수석의 경질을 요구한다. 소 귀에 경 읽기일까? 여권은 꿈쩍도 않으면서 오히려 야당이 민생국회를 볼모로 정략정치를 하고 있다고 몰아세운다. 그나마 교통공사의 국정조사에 합의한 것은 당연하지만, 조사가 어떤 성과를 걷울지, 예산안은 얼마나 알뜰하게 심의할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극한 대결에서는 한쪽이 칼을 휘두르면 다른쪽은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한쪽이 웃을 때 다른쪽은 눈물을 흘린다. 부모가 화를 내면 자식들은 위축되고, 자식들이 대들면 부모는 슬프다. 사주가 게걸대면 종업원들은 시달리고, 종업원들이 붉은 머리띠를 두르면 회사는 움츠린다. 그 결과는 곧 사회적 아픔이고, 비용이다.

조선의 대표적인 개혁가 조광조와 정약용은 무리하게 상대편을 몰아치다가 역풍을 맞아 오히려 사약을 받거나 평생 귀양살이를 했다. 영국의 공화정 건설자 올리버 크롬웰과 프랑스 혁명의 주체인 로베스피에르도 왕당파의 반격을 받아 부관참시와 기요틴 위의 이슬로 희생됐다. 아무리 개혁이 필요하고 엄중해도 대상자에게 가혹하면 그 반작용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한국사회는 대단히 예민하고 날카로우며, 편안하거나 안정적이지 않다. 다른 어떤 공동체보다도 대결과 갈등, 분쟁이 심하다. 극심한 빈궁 속에서 300여만 명이 처참하게 희생된 한국전쟁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전쟁 후에도 극심한 이념 갈등과 민주화 투쟁을 거치면서 건강하게 치유되기는 커녕 악화일로를 걸었다. 거기에 정치는 여야, 또는 보수대 진보로 갈려 진흙탕 싸움을 일삼았다. 시스템은 자꾸 일그러지고, 하나하나 축적해 나가야 할 발전은 무너지곤 했다. 한국사회가 건전하게  성장하지 못하고 과민성 질환의 징후까지 보이는 데는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막스 베버는 정치지도자의 자질로서 윤리를 강조했다.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요건으로 책임윤리와 심정윤리를 들었는데, 윤리의식이 없으면 정치라는 직업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계시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반드시 음미해야 할 계명이 아닌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타인을 헤아리면서 순리대로 미래를 개척하는 일이야 말로 오늘 한국사회와 한국의 정치가 깊이 성찰해야할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진다.   

송장길(언론인·수필가)  womaneconom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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