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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장길 칼럼] 조정 국면 들어간 북핵 협상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8.11.1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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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6월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동합의문에 서명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스트레이츠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지난달 하순 미국 재무부의 금융담당 수장인 시걸 맨델커 차관의 전화를 받은 한국의 7개 주요 은행은 모골이 송연했을 것이다. 금융위원회나 은행감독원 실무자의 추궁만 받아도 진땀을 빼는 은행으로서는 한국정부와 관련기관을 건너 뛴 세계금융의 힘센 포청천의 전화를 직접 받고 추궁성 질문과 함께 엄중한 경고를 들었으니 상황은 보통 심각했던 것이 아니다. 

한국이 국제제재의 틈새를 타고 대북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어서 제재에 저촉되는지가 관심사였던 만큼, 자칫 세컨더리 제재를 당하면 은행들은 문을 닫거나 동네 점포 수준으로 추락할 수 있었다. 한국 은행들의 외환업무는 90%가  달러로 결제되고 있어서 미국의 대형 은행 계좌가 동결되면 외환거래는 바로 막히고, 북한과의 거래로 폐쇄된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 선례처럼 파탄을 맞는다. 

맨델커 차관과 모저 부차관보는 한국 은행들과 이틀에 걸친 통화에서 당시 남북정상회담으로 열을 띤 은행들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지점의 재개설, 그리고 수익을 통일기금에 기부하는 포트폴리오의 판매를 준비하는지 등 대북관련사업들을 구체적으로 캐물었다. 각각 20여분 간의 통화 말미에서는 대북제재가 엄중히 살아 있음을 무력시위처럼 무섭게 경고했다. 

주한 미국대사관도 지난달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했던 대기업들에게 전화를 걸어 남북경협사업의 추진 상황을 점검했다. 청와대도 사전에 알고 있었다며 제재와 관련한 으스스한 분위기를 확인했다. 외국 대사관이 주재 정부를 통하지 않고 민감한 정치 문제를 민간기업들에게 직접 확인한 것은 이례적이고, 어떤 강력한 의도가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정황은 미국의 입장에 두 가지의 의지가 서있음이 엿보인다. 하나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거듭되는 제재 유지 방침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가 앞장서서 북한에 선제적으로 다가가 군사적, 경제적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대한 불편함의 표현이고, 온건하게나마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북제재가 확고함을 분명히 하므로서 북핵협상의 강경 모드를 공시하는 것이다. 

한국은 국제제재가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동맹국이자 북핵문제의 핵심 당사국인 미국과 충분한 공조없이 남북 합의를 추진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그 결과물로 개성에 남북연락사무소를 개설했고, 군사적 완화 조치에 들어갔으며, 개성공단의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사업의 재개의사도 흘리고 있었다. 남북철도사업 점검과 산림 공동사업의 검토도 착수했다. 이들 사업을 추진하려면 중장비와 자제, 유류, 묘목, 인건비 등의 예산 지원이 필수인데, 이는 유엔제재에 저촉되는 사안들이다

한미간의 공조에 있어서 적극적인 협조 의지와 마지 못해 구색을 갖추는 행위는 판이하다. 한국 정부는 한미관계에 불협화음이 없다고 밝히지만, 미국은 한국정부의 행보가 중재 역할과 화해 제스처가 뒤섞인 채 미분화된 상태로 과도하게 독주하는 듯한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는 해당 장관들의 국회 답변 과정에서도 밝혀졌다.

미국은 한국의 주권을 존중하면서도 상당한 불쾌함을 들어내며, 경고음을 보내고 있음도 정부 당국자들을 통해 감지됐다. 미북 접촉을 끌어낸 공로를 평가하지 않았다면 더 강력한 조치가 나왔을지 모른다. 한미 간의 특수한 관계와 북핵의 긴박한 안보상황 아래에서 톱니의 일부가 맞지 않는 모양새다.

자주파들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미국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고 볼지 모르나 한반도 주변정세와 한미관계를 대국적인 관점에서 전체적인 판도로 파악한다면 그리 단순하게 여길 일은 결코 아니다. 한미관계는 오늘의 한국으로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하고, 어찌 보면 숙명적이기 때문이다.

미국 입장의 두번째 두드러진 변화는 대북협상에서 타결에 방점을 두던 종전의 태도를 바꾸어 북한의 결정을 압박하는 강경한 노선으로의 선회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 직후의 한 대중연설에서 북핵 타결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7번이나 반복해서 언급하므로서 미국의 입장은 불변이고,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뜻을 애둘러 표현했다. 미국이 요구한 핵의 리스트를 내놓고, 사찰받는 핵폐기를 실행하라고 강공하는 것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의 완화는 이런 상황에서는 어림도 없다는 완강한 주장도 이어졌다. 볼트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더불어 대북 강경파인 펜스 부통령도 9일 워싱턴 포스트에 특별 기고문을 내고 북한에 전례 없는 외교적, 경제적 압박을 계속할 것이라면서 완전한 비핵화를 이룰 때까지 제재와 압박을 계속하도록 인도-태평양 국가들에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헤일리 유엔 미대사도 8일 북한의 핵 위협은 여전하다면서 지금은 그들이 행동할 때라고 다그쳤다. 헤일리 대사는 미국은 북한과 대화하고, 한미 군사훈련까지 중단하는 등 많은 당근을 내밀었지만 그들은 사찰을 허용하지 않는다. 핵과 탄도미사일 실험 중단으로는 부족하며, 관련 시설의 사찰이 허용되지 않는 한 국제제재는 풀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강경한 태도에 북한은 판을 깨는 듯한 그들 특유의 거친 언행은 자제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반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재일 조총련계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10일 미국이 서두르지 않고 현상유지를 보인다면 구태여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대화중단을 들고 엄포를 놓았다. 조선신보는 핵과 경제 병행노선의 부활 가능성을 언급한 북한의 미국연구소장의 논평을 언급하며 개인 의견이 아니고 지도부의 의중임을 넌지시 시사했다. 외곽 조직을 통해 폭탄급의 매우 위험한 담론을 던져 간접적으로 탐색하려는 북한의 의중이 읽힌다.

북한은 어렵게 조성된 미북 담판을 깨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다시 핵무장 노선으로 회귀하면 미국 등의 가공할 위협과 압박, 제재가 덮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내세운 경제노선도 난관에 봉착할 것이며, 이를 감당하기에는 북한의 사정이 너무 어렵다. 선대 김정일 시대에 핵협정을 깨고 겪은 긴 쇠락도 모를 리가 없다. 더구나 지금은 당시보다 더 엄중한 국제사회의 숨막히는 제재에 직면해 있고, 무력시위도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핵에 몰입했던 군부도 달래야 하고, 체제에 훈풍이 스며드는 일도 걱정해야 되겠지만, 당장의 고난이 더 견디기 힘들 것이다. 

협상가인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노림수를 꿰뚫어 보고 있을 것이다.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때보다도 훨씬 더 북한의 수를 파악하고 있을 것이며, 다음 대선 전에 김정은 위원장이 들고나올 협상안도 상정해놓고 있다는 짐작이 간다. 김 위원장을 치켜세우는 언변은 상대를 유도, 고무하는 협상 전략이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협상의 기술에서는 상대의 약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지향하는 바를 선점하는 것이 묘책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핵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공언해온 만큼, 패를 집어던질 수는 없다. 압박(Compression)과 관여(Engagement)를 구사해서 업적으로 평가받을 유의미한  타결에 도달하려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도 1994년 김정일 시대에 체결됐다가 2002년에 파기된 제네바 협정을 변용시킨 타협안을 검토할지 모른다. 당시 미국은 북한이 사찰에 성실하지 않고 고농축 우라늄을 몰래 보유하고 있음이 들어나자 약속했던 중유 50만톤의 제공을 중단했고, 북한은 이에 반발해 핵개발을 다시 시작했다. 다시 돌아봐야 할 서로의 강경일변도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궁여지책으로 성실한 사찰을 약속하고 나온다면 톱다운 방식으로 유사한 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 다만 제네바 핵협정과 이란 핵협정의 숨겨진 꼼수를 방제하는 조건에 철저하면 된다. 북핵의 해법은 김정은 위원장의 결심에 따라 어려울 수도 있고, 의외로 쉬울 수도 있다. 그의 말 대로 통 큰 결단을 하기에 아주 근접한 곳에 서있는 것이다. 물론 국제제재의 해제와 여러 형태의 경제 지원, 종전선언 등의 체제보장은 사찰이라는 함수의 전개에 따라 자연히 논의될 변수들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를 기폭제로 부상한 북핵협상은 거의 1년 동안 한반도와 지구촌을 들끓게 했지만 미결 상태로 해를 넘기려 하고 있다. 미북정상회담과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반도 아직 미지수이다. 타협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북핵은 한국과 미국, 북한에 모두 독성을 뿜어댄다. 한국과 미국은 가공할 핵의 공포에 휩싸여서 북한이 과거처럼 핵개발을 몰래 진전시키지 않는지 불안하다. 북한은 국제제재 아래에서 최빈국 수준의 궁핍으로 고통스럽다. 

숨가쁘게 돌아간 북핵협상은 이제 의제와 우선 순위를 수면 위로 들어냈다. 미국은 핵 리스트의 제시와 파기, 사찰 허용을 요구하고 있고, 북한은 제재 철회와 종전선언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비핵화를 공언한 북한이 당연히 보유실태를 밝히고 사찰을 받아야 하며, 그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제재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려 한다. 반면에 북한은 명단의 제시는 공격대상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일단 미사일 실험장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했으니 제재를 풀라는 요구이다. 

양측의 주장은 비핵화를 이루려는 의지만 강하면 동시에 이뤄낼 수 있는 가시적인 해법이다. 다만 북한이 파키스탄 형 핵보유국 인정을 노리고 공들인 핵을 순순히 내줄 수 없다고 고집하면 그 후유증은 북한정권의 몰락까지 몰아넣을 것이다. 

협상이 실무선에서 복잡한 논의를 거듭할 경우 합의 도출은 외교가에 떠도는 유행어처럼 ‘춤추는 국제회의’의 길고도 험난한 여정이 된다. 그러나 한번 실험해 봤던 톱다운 방식이면 예상 외로 쉽게 결론에 접근할 수도 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핵사찰을 과감하게 수용하면 협상은 빠른 바람을 탈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핵이 결론을 얻지 못하면 남북관계의 평화적 개선을 위한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는 인식 아래 북핵 타결에 집중해야 한다. 북핵이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다짐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상공을 계속 떠돈다면 자유민주주의 질서 아래 한국의 번영과 평화는 강풍 앞의 촛불처럼 흔들릴 것이다.

송장길(언론인·수필가)  womaneconom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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