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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장길 칼럼] 정치인들의 무딘 상황 인식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8.11.0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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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여 있음을 나라를 이끌어갈 정치지도자들은 누구보다 발빠르고 엄중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영세 자영업자와 서민의 삶이 힘겹고, 일자리가 늘지 않아 송구스럽다.” “근거 없는 위기론은 국민 심리를 위축시켜 경제를 더 어렵게 한다.” 

지난 일요일 국회에서 특별 소집된 당정청 협의회에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이다. 대통령의 최고 경제참모의 경제 진단과 상황 인식이다. 미일 무역분쟁과 소득주도 성장정책, 일련의 비경제적 사회정책, 치열한 국제경쟁 등이 겹쳐 기업과 시장이 몸살을 앓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한국 경제가 퍼펙트 스톰에 들어가기 직전이라는데 일부 서민의 고통이라면서 호들갑을 떨지 말라는 식이다.

장 실장은 “2% 후반의 경제성장률은 비슷한 나라와 비교할 때 낮지 않다”고도 주장했다. 학교성적이 최하위권인 학생이 전체 평균이 낮음을 빗대는 격이다. 올해 세계경제가 한국을 제외하면 대체로 선전했음은 모르는 척한다. 한국은 올해의 예상치 2.7% 성장보다 내년에는 더 위축된다는 분석이 대세다. 실업률은 가파르게 오르고, 생산과 소비는 동반 추락했으며, 수출도 아직은 견디고 있는 반도체를 빼고는 모두 부진하다. 압축성장으로 세계의 모범국이던 한국이 이대로라면 자칫 베네주엘라나 아르헨티나, 브라질, 그리스의 반열에 들지 모른다는 비관적인 우려까지 나온다.

그가 말한 “국민 심리가 경제를 위축시킨다”는 현상은 위기론보다 앞서서 이미 지나칠 정도로 높았다. 학문적으로 가설 수준인 소득주도성장론을 밀어부치는 과정에서 시장은 불안했던 것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다각적인 대기업 압박 등은 시장원리에 뿌리를 둔 경제논리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육성도 좋지만,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한 한국경제를 물리적으로 갑자기 재편하려는 움직임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될 수 있다. 부조리한 점은 개선하도록 권고하고 유도하는 유화적인 손길에 요체가 있다.

복지도 소중하고, 소득불균형도 사회적인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 메카니즘을 급히 거슬러서 나라 형편이 어려워지면 무슨 여유로 사회가 따뜻해지겠는가. 다 함께 내려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정치인들은  이 정권 아래에서는 내내 힘들 것이라는 시중의 볼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치인들은 상황 인식에 민첩해야 한다. 태풍의 눈이 뜨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누구보다 더 신속하게 판단하고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수 국민이  아니고 국가와 사회에 책임을 지고 있어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논리적이지는 않았지만, 동물적인 정치 감각을 갖췄다는 평을 들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민주화를 이끈 고도의 정치 무기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소신과 자신을 뒷바침하는 세력의  집단의지에 지나치게 천착한다. 비정치적인 셈이다. 소득주도성장을 향해 그토록 비판이 쏟아져도, 장하성 실장이 화살받이가 돼도 끄떡도 않는다. 임종석 비서실장을 포함해서 장하성, 조국, 문정인, 탁현민 등 호위 세력에 대한 따가운 시선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지휘자가 잔바람에 휘둘려도 안 되겠지만, 세력이 커진 태풍을 나중에 몸으로 막을 수도 없다. 소득주도성장의 후유증이 태풍의 눈이고, 한미관계의 불협화음도 걱정이다. 계속 이어지는 적폐청산에의 눈초리도 무시할 수 없는 고기압골이다.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념적인 치우침을 경계하고 건전한 국가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바탕 위에서 나라를 전향적으로 경영해야 한다. 환호하는 지지층에 둘러싸여 상황을 엄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지지층의 리더는 될지 몰라도  국가지도자의 길은 아니다. 정치에서 호미로 막을 수 있는 틈이 가래로도 막지 못할 상황으로 번질 가능성은 늘 존재하는 법이다. 현명한 사전 방제가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나라의 현실은 어떻고, 어디로 가야 될지에 대한 치열하고도 예리한 상황판단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조선조에도 왕이 잠행도 하고, 암행어사도 보내 민정을 살폈는데, 교통과 통신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 대통령은 얼마나 실체적으로 민정을 파악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여론조사의 높았던 지지도만을 민심으로 보고있는가? 이따끔 벌어지는 대통령의 민정시찰마저 지나치게 이벤트에 흐른다. 민정수석은 페북 정치하느라 바쁘고, 비서실장도 장관들을 대동하고 전방을 둘러봤다고 비난을 받고 있으며, 비서실 전체가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는 참모 조직을 넘어 소내각(Inner Cabinet)처럼 권한이 집중돼 있다는 인상을 준다. 

민주당은 선거의 전리품 챙기기와 집권당의 권위를 누리는데 몰입해 있는 양 행세한다. 겉으로는 대화와 협치를 표방하면서도 야권을 존중하는 진정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상대해야 할 야권은 몽니를 부리는 세력, 트집잡는 집단으로 몰아세우는데 이골이 나있다. 여당 원내대표는 협상을 이끌어 내는 주역 대신, 거친 언어를 동원해서 야당을 공격하는 자리가 됐다. 대변인들은 그 수족처럼 툭하면 공격성 성명을 쏘아댄다.

야권이 불필요한 예산을 삭감하겠다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설득하기는 커녕 반사적으로 민생을 발목잡는다고 몰아친다. 정치가 다양한 의견과 이해를 조정하는 타협이 아니고, 나와 우리만을 고집하는 싸움이 돼있다. 제3공화국부터 내려온 병폐이긴 하지만 여당은 정부의 수족임을 자임하며, 정부 편들기에 급급하다. 국회에서 거부된 장관 청문회 결과를 대통령이 막무가내로 무시하고 임명을 강행해도 여당은 여지없이 정부편이고, 국정감사장에서도 여당 의원들은 장관들 편드는 호위 세력이다. 국민의 소리를 수렴해서 국정에 반영하려고 하는 노력은 희미하고, 지도부의 노선을 메고 나서는 행동전선 같다.

수십년을 장기 집권하겠다고 공언한 인사가 여당을 이끌고 있다. 정당이 집권 목표를 세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집권은 정당의 정책과 정치행위를 보고 국민들이 판단하는 결과다. 내부에서 조용히 다지지 않고 공개적으로 확산시키려는 의도는 비민주적이다. 무리하겠다거나 무시하려는 오만으로 오해되기 쉽다. 

야권은 여전히 지리멸렬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당의 조강특위의 당협위원장 선임기준에서 대여 강성을 가장 위로 둔 일은 희화적이다. 물론 오늘의 상황에서 야당으로서는 독주하는 여권을 견제하는 기능이 절실하겠지만, 정당의 인재 모집에서 싸움꾼을 우대한다는 것은 한심하다 못해 헛웃음이 나온다. 훌륭한 정책과 정치행위를 내세워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당의 기본 생리의 도착이다. 정당활동에 활기를 넣고, 전략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도 벌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이 아니고 하나의 방법인데, 본말의 명백한 전도가 아닐 수 없다. 나라의 운영에 크게 기여할 실력있고 건실한 준재들을 모아야 정당도 튼실해지고, 국가와 사회도 미래가 있다.

한국당의 김병준 비대위와 그들이 구성한 조강특위 체제는 매가리가 없다. 보수의 가치 정립과 세규합이라는 두 명제의 어느 쪽도 성공의 시그널이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국민의 신뢰와 지지도 부진하다. 살신성인의 기개와 눈에 번쩍 띄는 신선함이 없이는 주목받기 어렵다는 상황 인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기들 보수세력이 입을 모아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를 어떻게 지키겠으며, 취약해진 성장 엔진을 어떻게 되살려 나갈지를 선명하게 제시하지 못한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지지가 돌아오지 않겠는가.   

보수의 또다른 과제는 계파의 과감한 해체다. 아직도 계파 간의 알력과 갈등, 이해타산에 함몰돼 있다면 보수의 재건은 요원하다. 비대위원장과 조강특위장의 영입이 비박계 탈당파들의 영향 아래 진행됐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앞으로의 분쟁은 불을 보듯 뻔하다. 개혁이 아니라 개악을 향하는 꼴이다. 선명한 보수의 깃발을 들고 계보혁파를 주도하는 인물이 나서면 필경 그가 보수의 리더가 될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을 뒤집어 보면 영웅은 난세에 정확한 상황 인식과 탁월한 대책을 세웠다는 뜻이 된다. 이순신 장군은 통신사 김성일이 일본 침략은 없다고 보고하는데도 미리 전운을 감지하고 철저한 대비를 하므로서 나라를 구했다. 

지금 한국이 처해있는 상황은 초미의 난국이다. 교육기관인 유치원들이 어린 학생들을 볼모로 집단으로 더러운 재물을 챙겨 흥청망청 놀아나고, 힘이 세진 세습 노조원들이 제도의 틈을 이용해 정상적인 시민들의 취업권을 박탈했다. 이런 범죄는 사회의 근간을 갉아먹는 사회악이며,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인사에서 능력보다 출신과 성향이 우선되고, 언론도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찌그러진 얼굴에 덕지덕지 색깔을 발라댄다. 경제는 날로 어려워지고, 민생도 IMF 당시보다 못하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중국의 추격은 바짝 다가와서 국가경쟁력은 비상이 걸려있고, 일본과는 다시 으르렁거린다. 정치인들은 정파의 이해에 집중하느라 나라의 미래를 설계할 겨를이 없는 듯하다. 지금 한국이 사방에서 덮쳐올 태풍의 눈을 감지하고 단단히 대비해야 할 어려운 처지임은 장삼이사들도 느끼고 있다. 

한 세기 전에 나라를 뺐겼다가 찾았지만 곧바로 참혹한 전쟁에 휘말렸고, 천행으로 반세기 만에 최빈국에서 세계10위 권으로 일어선 대한민국. 오늘날 이 나라가 추락이냐 버티느냐 하는 변곡점을 맞고 있는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라는 구호를 새삼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국가가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여 있음을 나라를 이끌어갈 정치지도자들은 누구보다 발빠르고 엄중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송장길(언론인·수필가)  womaneconom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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