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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장길 칼럼] 남북통일론의 허허실실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8.10.3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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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5월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2차 정상회담을 마친 후 헤어지며 포옹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북한의 핵을 둘러싼 한국, 미국, 북한 사이의 담판은 궁국적으로는 통일에 닿아있다. 통일에 다다르는 탄탄한 길이 깔리지 않으면 어떤 형태의 타협이 이뤄지든 한국은 만족할 수가 없고, 안심할 수도 없다. 핵개발을 봉합시키거나 완전한 비핵화에 근접하더라도 꼭꼭 숨기는 불씨까지 제거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며, 그런 상태는 일종의 미봉책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북한의 태도로는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으면서도 휴면상태의 비핵화로 얻어낼 것은 다 얻어내겠다는 속셈이 느껴진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들에게 절실한 국제적인 지원의 호재를 목전에 두고도 저렇게 계산적이고도 정략적으로 지구전을 벌일 리가 없다. 미국이 거리를 두면 접근하고, 미국이 적극적이면 한발을 뺀다. 미국이 요구하는 핵 리스트와 핵물질 폐기에는 무대응하면서 규제철회와 종전선언, 평화협정에만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어느 협상이고 밀고당기기가 있기 마련이지만, 과거에 표변을 거듭한 행태로 신뢰를 잃은 북한의 몽니는 국제적인 회의를 부르기에 충분하다. 북한이 아무리 한반도 비핵화를 공언하더라도 국제사회가 그 진정성을 믿지 못하는 이유다.

지연되고 있는 미북정상회담이 내년 초에 다시 열린다 해도 지금까지의 진전으로 볼 때 완벽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비핵화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더구나 북한이 이미 핵실험에 성공한 경험이 있고 노하우를 확보한 상태에서 비핵화라는 엉성한 거푸집을 얽어놓는다면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도 만족할 수 있겠는가. 단물은 쪽쪽 빨아가고, 언제 변신할지 모를 우려만 남기게 될 것이다. 그렇게 엉거주춤한 협상결과는 안보적으로 덜 심각한 미국에게는 양해할 여지가 있겠지만, 북의 위협에 바로 노출돼 있는 한국에게는 고질의 완쾌가 결코 아니다.

북핵협상이 아주 무익하다는 뜻은 아니다. 일단 한반도에서 전쟁의 가능성을 줄인다는 점과 핵실험의 확산을 막는 점, 어느 정도 핵무기의 폐기가 도출되리라는 점은 나름 의미있는 기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를 머리에 쓰고 있는 형국인 한국의 우려를 말끔히 씼어주는 데에는 이르지 못한다. 국제무대에서 완벽한 협상이란 원래 가능하지도 않지만, 남북한의 오랜 대치의 연속상황에서는 가공할 핵에 조금이라도 틈을 남겨둔다면 언젠가는 봇물 터지듯이 심각한 우환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조바심이 이는 것이다. 

지금 북한이 한국을 통해 미국에 대화를 손짓하는 것은 경제력에서 남쪽과 비교조차 안 될 수준(1/50로 추산)까지 추락했고 미국의 무력시위, 국제사회의 규제가 엄중하기 때문이다. 불리하면 대화하고, 유리하면 치고나오는 행태가 공산주의자들의 속성 아닌가. 따라서 북한과의 대화에서 촌각도 잊지 말아야할 일은 그들의 현란한 레토릭이고, 숨기고 있을 전술이다. 

그러니까 핵문제를 비롯해서 남북한의 대치와 갈등은 통일이 종착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전에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게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핵문제만 해결되면 평화가 올 것이라는 기대도 너무 단순하다. 북한은 핵뿐만 아니라 유독가스와 장사정포 등 공격용 무기도 다량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조금씩이라도 핵의 이빨을 제거하는 일도 도움이 되겠지만, 뿌리를 완전히 뽑아버려야 한다는 인식을 게을리하면 크게 후회할 지 모른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뚜렷하든 잠재적이든 통일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한때는 문제가 산적한 통일을 굳이 감당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적인 태도가 젊은 세대로부터 고개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러한 경향은 많이 수그러들은 듯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과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평화 드라이브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주도한 남북정상회담 후에 통일에 대한 관심이 요즈음 크게 오른 것은 분명하다.

통일을 바라는 정도로 보면 절실하다고 느끼는 층과 막연하게 기대하는 층,  무관심한 층, 그리고 반대 입장인 층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는 층은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고민하는 지식층과 경제적 이해집단, 그리고 실향민, 탈북자 등이 포함될 것이고, 단순하게 기대하는 층은 그보다는 관심의 농도가 낮은 층일 것이며, 무관심한 층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태도일 것이다. 반대입장은 막대하게 소요될 통일비용과 ¾ 세기에 걸쳐 벌어진 문화적인 이질성, 그리고 사회적 갈등과 혼란 등을 걱정한다. 이러한 여러가지 태도를 조율해서 에너지화하는 역할은 정치지도자들의 몫일 것이다.

통일이라는 어휘도 주창하는 인물이나 집단에 따라 뉴앙스가 다르다. 북한정권의 통일개념이 다르고, 문재인 정권의 통일에의 접근방식이 다르며, 보수 야권의 인식과 태도도 많이 다르다.

북한이 외치는 통일은 사회주의 색깔이 붉게 물들여진 '통전'의 변형이다. 조선사회주의인민공화국 헌법과 공산당 규약에 시퍼렇게 살아있는 적화통일의 야욕이 한 줄도 변하지 않은 사회주의 통일이다. 지도층의 발언은 물론, 예술단의 공연과 주민들의 목소리로 미화된 통일의 염원 속에는 내부의 결속을 노리는 민족주의 마술과 남쪽의 호응과 준동을 꾀하는 선동의 붉은 손이 감추어져 있다. 북한은 이러한 노선을 맘대로 버릴 수가 없다. 태생적이고, 체질적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도 그들의 선전 대로 순수하게 민족통일을 의도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국내 자주파들은 이러한 투시에 반발할지 모르나 숨겨진 마수를 꿰뚫어 보자는 시각이므로 지나치게  비관적인 시각이라고 매도할 일이 아니다.

다만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부터 스스로 역부족임을 절실히 느껴서인지, 자신과 정권이 살아남기 위해서인지 ‘주체’라는 폐쇄성밖으로 나오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고, 경제에 역점을 두는 듯한 신호를 던지고 있어서 체제유지에 치명적이지 않는 범위 안에서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지 않겠느냐는 풀이가 가능하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담판이 긍정적으로 진행되면 국제사회에로 일정한 수준은 유도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통일의 개연성에도 어떤 제한된 발전 가능성이 점쳐진다. 체제는 유지하면서 필요에 따라 다소 유연해질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의 통일정책은 진보성향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통일 정책과 맥을 같이한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많은 부분이 겹치고 있어서다. 문 대통령의 지론인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지난 해 7월 내놓은 신베를린 선언 내용이 모두 그 궤를 함께하고 있으며, 그 후에 계속 보이는 과감한 대북 화해 행보도 동일선상의 흐름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아직도 그에 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 이념과 체제가 다른 견원관계에서 그 실현성은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핵문제의 담판에서도 저리 어려운데 고도로 난삽한 하나의 정부, 두 개의 체제와 운영이 쉽게 이뤄질 수 있겠는가? 

문재인 정권의 평화 프로세스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공격적으로 남북문제를 풀려는 자세다. 국민과 국회가 따라가기가 힘든 속도로 바쁘게 대북관계를 추진하고 있다. 세 차례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그 결과 미북정상회담을 중재하는 등의 성과를 이뤘고,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킨 점은 평가되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김정은 위원장을 국제사회로 끌어내는 노력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여러가지 불협화음도 빚고있다. 북핵문제의 실질적인 진전이 없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고, 규제로 압박해서 비핵화를 끌어내려는 미국과 엇박자를 내는 점도 우려되고 있다. NLL에서의 경계수역의 양보, 비무장 지대에서의 척후초소 철수, 철도사업 공동조사, 남북연락사무소 개설, 등등 한국정부의 앞서가는 이니시어티브는 분명히 미국과 국제사회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또한 국회 동의없이 정부가 독자적으로 평양선언을 비준한 행정행위는 오랜 논란의 불씨를 낳았다. 통일과 대북정책에서는 국민적 공감대와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에도 어긋나는 처리다. 안보문제는 국민의 동의에 바탕을 두고 추진해야 정통성과 합리성을 담보받을 수 있다. 국민의 정서는 물론, 영토권, 국방과 예산문제, 한미관계 등 어느 사안도 국가의 기본 질서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대통령의 통치 차원 너머의 사안이며, 정권이나 정부의 권한을 넘는 영역들이다

보수진영인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통일 노선은 박근혜 정부의 헬싱키 선언에서 밝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신뢰를 쌓으면서 대화를 통해 평화통일로 전진하자는 것이나, 북한이 저지른 도발을 추궁하는 5·4조치에 묶여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그것은 곧 남북문제에서의 부러질 듯한 경직을 불렀다.

보수진영의 기본적인 입장은 북의 도발을 응징한다는 원칙을 고수한 것이다. 국가가 외부의 도발을 응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안보적인 원칙을 준수한 점은 평가된다. 그러나 보복에 천착해 있으면 상황을 선제적으로 이끌 수 없고, 역사를 전개시킬 수 없다. 응징하면서도 새 국면을 창출하고 이끄는 방안을 강구하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남쪽은 북측에 비해 월등한 국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힘의 우위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전략의 부재며, 진취적이지 못하다는 평을 면치 못한다.

70여년 동안 꼬인 고르디아스 매듭을 단칼에 자르기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모든 길이 통일로 통한다는 자세로 임한다면 기회는 오기 마련이다. 두드려야 열린다는 경귀도 있지 않은가. 무력이나 흡수 통일이 아니라도 상황은 유리하게 무르익었다. 힘의 축은 한국 쪽에 기울어 있고, 국제적 역학구도도 우호적이어서 호재다. 구 서독이 통일을 이룰 때와 유사한 국면을 맞고 있다. 서독은 경제적 우위와 나토와 소련의 양해를 구하는 치열한 외교력으로 통일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지금 한국은 북한정권의 핵놀음에 애를 태우며 함몰되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황소가 사냥개에 쫓기는 격이다. 북핵이라는 난제를 풀어가는 노력에 병행해서 곤경을 뛰어넘어 제압해버리는 한 차원 높은 전략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들의 실패한 공산주의 이념과 경직된 세습 독재체제의 녹슨 단검을  버리도록 하는 고도의 작업이 통일로 가는 길이다. 북한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체제의 약점을 변화시키는 꾸준한 노력이야말로 한반도와 민족의 안위와 미래를 여는 요체이자 첩경일 것이다. 통일을 위한 원대한 비전 위에 정교한 설계도를 들고 나아가는 경세(經世)가 절실하다.                                              

송장길(언론인·수필가)  womaneconom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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