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11.18 일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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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난 "미미·초초상·비올레타로 '비련의 여인 3부작' 마무리 뿌듯"'나비부인 전문가수' 꼬리표 떼고 업그레이드...이젠 후배 가르치는 역할 맡는게 꿈
소프라노 윤정난이 지난 31일 서울 용산의 한 카페에서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며 "1년새 '미미' '초초상' '비올레타' 세 사람 모두로 살아봤으니 성악가로서는 정말 행복한 한해를 보냈다"며 환하게 웃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누구나 탐내는 배역이잖아요. 1년새 '미미' '초초상' '비올레타' 세 사람 모두로 살아봤으니 완전 고맙죠. 관객들이 넘치는 사랑을 주신 덕에 행복했고요. 또 매일매일 조금씩 더 성장하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스스로 대견했어요. 아, 참, 고백할게요. 저 아직 더 커야합니다(웃음)." 

소프라노 윤정난은 올 한해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지난해 12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라보엠'을 마친 뒤 곧바로 지난 4월엔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나비부인'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지난 10월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라 트라비아타' 갈라 무대에 섰다. 굵직한 역할을 세차례 맡으면서 '비련의 여인 3부작'을 마무리했고, 중간중간 크고 작은 공연까지 챙기는 등 엄청난 스케줄을 소화했다.

그러나 조금도 지친 모습이 없다. 지난 31일 서울 용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윤정난은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만큼 환한 표정을 지었다. 자연스럽게 지난주 끝난 그랜드오페라단의 콘서트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베르디의 걸작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하이라이트 곡만을 모은 공연이었지만, 1막부터 3막까지 시간적 흐름에 따라 구성해 스토리를 이해하기 쉬웠어요. 알프레도를 연기한 테너 김동원, 그리고 제르몽을 맡은 바리톤 한명원 선생과도 호흡이 잘 맞았고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무대였어요."

'2시간30분 동안 비올레타 윤정난의 포로가 됐다'는 리뷰가 붙을 만큼 음악회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처음엔 걱정이 앞섰다. 거의 10년만에 비올레타를 맡은 탓에 많이 긴장했고, 더욱이 정식 오페라 버전이 아니고 성악가들이 오로지 목소리 하나로 무대 효과를 모두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역시 윤정난이었다. '이상해...아 그이던가(E strano...Ah, fors’e lu)’  '지난날들이여 안녕(Addio del passato)' 등이 대방출되자 모두 귀를 세우고 그에게 빠져 들었다. 전반기 때 '미미'와 '초초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윤정난의 솜씨는 '비올레타'에서 클라이막스를 찍었다.

"그동안 줄곧 나비부인 전문가수라는 꼬리표가 붙었던 만큼 저를 깜싸고 있는 '틀'을 깨고 싶었어요. 그래서 도전했고요. 움직임이나 조명이 빠진 상태에서 목소리 하나만으로 승부해야 했기 때문에 관객과의 거리가 더 가깝게 느껴졌어요. '앞으로 못할 역할은 없겠구나' 이런 확신을 갖게 해준 고마운 공연이었어요."

◆ 초등때 발레 하다 예술제에서 노래로 덜컥 1등…성악으로 바꾼 전환점 

소프라노 윤정난이 지난 31일 서울 용산의 한 카페에서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윤정난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를 거쳐 인디애나대학교 음악대학원·줄리어드스쿨 음악대학원을 졸업했다. 보통 성악 전공자들은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뽐내 초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입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전남 여수가 고향이에요. 춤을 좋아해서 초등학교 2학년 때 무용학원을 보내달라고 졸랐어요. 그렇게해서 발레를 시작했습니다. 한 4-5년 정도 했는데 제가 통뼈가 아니었나봐요(웃음). 툭하면 발목을 다치거나 부러지는 등 부상에 시달렸죠. 그러다가 운명처럼 노래 하나가 제게 왔어요. 푸치니의 '잔니 스키키'에 나오는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였죠. 우연히 누가 이거 한번 불러보라고 해서 이탈리아 발음을 대충 한글로 적어 뜸성뜸성 노래했어요. '꽤 잘하는데 큰 대회 한번 나가보라'는 주위의 권유가 쏟아지자 못이기는 척 모험을 했죠. 그래서 중학교 1학년 때 이 노래를 가지고 호남예술제에 참가했는데 덜컥 1등을 했어요. 결과적으로 그날이 음악인생 터닝 포인트였네요."

그 날 이후 토슈즈를 벗어 던지고 피아노 앞에 섰다. 집에서는 처음에 음악하는 것을 반대했다. 학교 성적이 제법 잘 나왔기 때문에 남들처럼 평범하게 그냥 공부를 해서 대학 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살짝 음악을 맛보고 나니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불쑥 솓아오르는 열정을 숨길수가 없었다. 아직까지는 다듬어지지 않은 열정이었다. 

"여수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던 게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죠. 서울에 비해 한적한 지방이었던 덕택에 음악인으로서는 스트레스를 덜 받는 환경 속에서 자랐습니다. 보통 예술고등학교를 다닌 친구들을 보면 콩쿠르 준비 등 치열한 압박 속에서 살았더라고요. 저도 어렸을 때 어린이합창단을 하고 또 교회에서 성가대도 했지만 그냥 '놀이'였어요. 즐겁게 노래 부르는 그냥 놀이요. 중학교 3학년이 돼서야 겨우 선생님을 모셨어요. 동네에서 세종대학교 음악과를 나온 언니에게 노래를 배운게 전부였어요."

여수중앙여고를 졸업하고 경원대 성악과에 진학했다가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어서 다시 입시를 준비해 한예종에 지원했다. 이후에는 엘리트 코스라고 할 수 있는 길을 걸었다.

그는 한예종에서 영원한 멘토인 김청자 메조소프라노를 만났다. 가장 닮고 싶은 롤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윤정난은 한예종을 다니기 전까지 전문가에게 체계적인 레슨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이때 비로소 A부터 Z까지 차근차근 배웠다. 하지만 정작 그를 감동시킨 것은 스승의 인품이었다. 김청자 소프라노는 한예종을 정년퇴직한 뒤 현재 아프라카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선생님은 항상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불러야 한다. 그래야 감동을 준다'고 강조했어요. 어떻게 하면 관객과 가까워질까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었어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늘 감사하죠."

◆ 장학금·생활비 받으며 미국 유학생활…알바하는 친구들 보며 죽을 각오로 더 노력

소프라노 윤정난이 지난 31일 서울 용산의 한 카페에서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미국 유학생활은 운이 좋았다. 인디애나대학교 음악대학원에서는 장학금은 물론이고 생활비까지 받으며 공부했다. 처음 미국에 왔을때 비행기 티켓값도 학교에서 대줄 정도로 지원을 많이 받았다. 당시에는 이게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인지 몰랐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한 학기 학비가 2000만원일 정도로 비쌌습니다. 전체 음대 학생이 2500명 정도인데 성악이든 기악이든 모든 종목을 합해서 음대 학생 전체 중에 1명에게만 주는 1000만원 장학금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친구들에 비해 혜택을 더 받았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장학금을 받지 못하거나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다른 친구들은 오페라 의상 단추 아르바이트를 자주 했다. 대략 7달러 정도를 받고 오페라 극장에서 소품으로 쓰는 의상에 단추를 다는 일이다. 7000원~8000원을 벌겠다고 열심히 일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죽을 각오로 노력을 했다. 

◆ 미국서 목숨 위협 2번 아찔…지금도 걸으면서 절대 이어폰으로 노래 안들어 

그러나 유학생활은 좋아하는 음악공부만 하는 재미있는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목숨이 위태로운 일을 두번이나 겪었다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2010년도 인디애나 대학원 시절 여느 때처럼 하루에 7~8시간을 학교에서 연습을 했다. 추수감사절이라 길에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맨하탄 한가운데서 아찔한 경험을 했다.

"96번가가 학교 지하철 역이고 제가 사는 집은 99번가에요. 한 3블록 정도의 거리를 걷고있는데 이상하게 역에서부터 누가 따라오는 기분이 들었어요. 섬찟한 기분을 느낄 찰나, 일면식도 없는 흑인남자 두 명이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납치를 하려고 했어요. 제가 성악을 했잖아요. 소리를 있는대로 막 질렀죠."

고함을 지르면서도 정신을 차리고 도와줄 사람들 찾는데 마침 근처에 슈퍼마켓이 보였다. '으악~' 소리를 크게 지르니까 흑인들이 당황해서 두리번 거리는 사이에 슈퍼마켓으로 도망쳤다. 천운이었다. 마침 한국인이 슈퍼마켓의 주인이었다. 한국사람처럼 보여 도와달라고 한국말을 하니 주인이 재빠르게 도와줬다.

"심지어 그 흑인 두 명이 마켓으로 들어왔어요. 슈퍼 주인아저씨에게 이 여자를 아는 사람이냐고 묻더라고요. 다행히 그 아저씨가 자기 딸이라고 말하면서 저를 감싸주었죠. 그러고도 한 20분 정도를 밖에서 그 흑인 둘이 저를 기다리더라고요. 다행히 슈퍼 주인이 저를 집까지 데려다줘서 살았어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줄리어드 대학원에 다닐 때에는 허드슨강 인근에서 당시에 '애플 피킹'이라는 범죄가 유행처럼 번졌다. 아이폰을 든 사람을 갑자기 때린 뒤 전화기를 빼앗아 달아나는 범죄인데, 이런 애플 피킹도 겪었지만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

두 번의 대형 사건 이후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한 한가지 원칙이 생겼다. 길에서는 절대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지 않는다. 길거리를 걸을땐 정말로 온 정신을 집중해서 조심조심 다닌다. 타국에서 범죄를 당해 그냥 순식간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한때는 신경 쇠약증 증세를 겪기도 했다.

◆ 공연시간 4시간 나비부인 유럽에서 80번 이상 공연

소프라노 윤정난이 지난 10월 25일 열린 그랜드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 인 콘서트'에서 열창하고 있다. /사진제공=그랜드오페라단

프로의 세계가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가.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라보엠’ ‘잔니스키키’ ‘나비부인’ ‘피가로의 결혼’ ‘카르멘’ ‘능소화 사랑꽃’ 등 다수의 작품에서 사랑받은 윤정난이지만, 처음으로 제대로 된 무대에 서기까지는 대학원 졸업 이후 꼬박 1년이 걸렸다. 나름 눈물밥 먹으며 혹독한 시간을 견뎠다. 

"공부를 마치면 바로 세계적인 프리마돈나가 되는 줄 알았어요(웃음). 1년 정도 오디션을 보러 다니며 백수 시절을 보냈죠. 보통 외국에서 소프라노의 경우에 두가지 형태로 일을 많이 해요. 첫번째는 페스트라고 해서 극장에 출근해서 월급받는 직원이 되는 거죠. 다른 하나는 게스트입니다. 손님 자격으로 작품마다 계약해서 한 회당 얼마의 개런티를 받고 일을 하는 스타일이죠. 연습할 시간이 많고 좀 더 노래에 집중할 수 있는 게스트 소프라노가 되기로 결심하고 오디션을 많이 봤지만 첫 계약이 쉽지 않았어요. 1년 동안은 기도만 하고 지냈습니다."

방학 때마다 오페라의 본고장인 유럽으로 날아가 콩쿠르에 참가하거나 따로 공부를 하러 다녔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첫 오디션에 합격한 후엔 실력을 인정받아 찾는 곳이 부쩍 많아졌다. '나비부인'의 경우 일본 여인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동양인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그런 트렌드에 딱 맞아 떨어져 붙박이 나비부인으로 활약했다. 

"4~5년 정도 유럽에서 나비부인을 80회 이상 공연했어요. 거의 4시간 정도를 버텨야 하는데다 독창 부분도 많아 정말 힘든 역할이에요. 그래서 최대한 나비부인을 늦게 시작하고 싶었지만 어쩌다 보니 생각보다 일찍 맡았어요. 히든카드를 너무 일찍 꺼낸 셈이죠. 하지만 그 덕분에 유럽에서 윤정난 이름 석자를 널리 알리게 됐으니 고마운 일이죠."

◆ 정애련 '진달래꽃'  김효근 '첫사랑' '눈' 한국 가곡 좋아해

소프라노 윤정난이 지난 31일 서울 용산의 한 카페에서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윤정난은 요즘 한국 가곡에도 꽂혀있다. 기본적으로 오페라 레퍼토리를 가장 많이 부르지만 무턱대고 외국곡만 선호하지는 않는다. 유학생활을 포함해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았기 때문일까. 부쩍 우리의 정서가 녹아있는 한국가곡에 흠뻑 빠졌다.

최근 그를 사로잡은 노래는 정애련의 '진달래꽃', 그리고 김효근의 '첫사랑'과 '눈'이다. 노랫말과 선율이 하나로 뭉쳐 움직이는 매력 덕에 진심이 고스란히 전달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김효근 작곡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아직 만난 적은 없지만 조만간 연주 때 꼭 한번 뵙고 싶다는 희망을 밝히며 함께 녹음작업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 이제 결혼한지 1년…가슴 뜨거운 사랑 노래 전하고 싶어

윤정난은 작년 12월에 결혼했다. 요즘 그의 노래가 더 풍성해진 이유는 믿고 의지할 든든한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리라. 남편은 동갑내기로 현재 IT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다. 만난지는 한 10년쯤 됐다. 오랜 시간 그저 '남사친'으로 지내다가 본격적으로 교제한 것은 4년 전이다.

"모든 분야가 똑같겠지만 성악 세계도 워낙 경쟁이 치열하잖아요. 1등으로 살아남으려면 남들보다 몇 배 더 연습하고 노력해야 하다보니 어느날 덩그러니 혼자더라고요. 한눈 팔 시간이 없었던 거죠. 그러다가 2015년에 홍혜경 선생님과 '피가로의 결혼'을 함께 하게 됐어요. 선생님이 백작부인1을 하고, 제가 백작부인2를 맡았죠. 오페라 리허설 때문에 두 달정도 한국에 들어왔는데, 그때 다시 만났어요. 굉장히 저를 편안하게 해주더라고요. '그래 이 사람이다' 그때 마음을 굳혔습니다. '피가로의 결혼'이 결국 '정난의 결혼'으로 바뀌었네요(웃음)."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해 묻자 윤정난은 한결 편안한 얼굴로 사랑하는 노래를 마음껏 하고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후학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결혼한 뒤 한결 마음이 안정됐어요. 남들이 보면 제가 1등의 길을 걸었다고 볼 수 있지만 저는 시행착오는 물론 고비를 넘긴 적도 숱하게 많아요. 이제는 정말로 마음껏 무대를 누비고 싶어요. 그리고 하나 더 꿈이 있다면 제가 오랜기간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유럽에서도 공연을 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제자를 가르치고 싶어요. 꼭 교수라는 타이틀을 갖고 싶은 건 절대 아니에요.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24시간 달려가는 소프라 윤정난, 이게 바로 저의 목표입니다."

그는 12월까지 정명훈 지휘자와 호흡을 맞춰 전국 공연으로 진행되는 '노블리에 콘서트'를 잘 마무리할 예정이고, 아직 계약서를 쓰지 않았지만 연말에도 좋은 공연을 곧 선보일 것이라며 환한 웃음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양혜원 기자  yhwre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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