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12.11 화 22:44
  •  
HOME 사설·칼럼 칼럼 사설·칼럼
[김영회 칼럼] 귀소본능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달 21일 서울역 승강장에서 귀성객들이 고향가는 KTX 열차를 타러 이동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근원을 찾는 것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똑 같습니다. 해마다 겪는 연례행사, 그래도 기분은 개운합니다. 가을이 한창 입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10월을 맞았습니다. 총인구 5163만명 가운데 3000만이 이동을 하니 가위 ‘민족의 대이동’이라 할 만 합니다. 해마다 설과 추석, 두 차례 어김없이 겪어야 하는 범국민적 연례행사였습니다.

정신적 스트레스, 몸 고생은 피할 수 없었지만 지내고 나니 그래도 할일을 했다는 만족감 같은 것은 모두 느끼게 돼 다시 일상으로 돌아 온 기분은 개운합니다. 부모 형제 혈육들과 재회하고 조상에 추모의 예를 갖춰야 하니 사람이 도리를 지키고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닌 듯합니다.

‘예기(禮記)’ 단궁상편(檀弓上篇)에 보면 일찍이 강태공이 제(齊)나라에서 큰 벼슬을 얻어 잘 살았으나 장례만은 고국인 주(周)나라에 가서 치렀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옛날 군자가 말하기를 음악은 그 발생하는 바를  즐기고 예(禮)는 그 근본을 잊지 않아야 한다”며 “여우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언덕에 머리를 바르게 하는 것은 인(仁)이다”라고 했습니다. 뜻인 즉 슨 여우는 죽을 때 제가 태어 난 언덕을 향해 머리를 두고 눈을 감는다 함이니 출생의 근본을 잊지 않거나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 하는 옛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일러 그를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한 것입니다.

동물의 귀소본능(歸巢本能)은 친숙하지 않은 낯선 장소에서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 가고자하는 동물의 태생적 습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온 종일 산과 들을 헤매던 짐승들이 해가 지면 제 굴을 찾아들고 공중을 날던 새들이 둥지를 찾아 드는 것이 바로 귀소입니다. 짐승들이 때가 되면 그처럼 제자리로 돌아가듯 인간이 제 고향을 찾아 드는 것 역시 동물의 귀소본능에 다름 아닙니다.

미국 태평양 연안의 아름다운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2시간쯤 내려가면 몬터레이반도 남단에 ‘나비의 고향’으로 유명한 퍼시픽그로브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매년 10월이 되면 모나크버터플라이(Monarch Butterfly)라는 이름의 나비 수만 마리가 겨울을 나기 위해 멀리 알래스카에서 날아온다고 합니다.

철새의 경우 따뜻한 남쪽으로 옮겨 가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곤충으로는 모나크버터플라이가 유일하다고 하는데 두 날개를 다 합쳐도 10cm를 넘지 못하는 작은 나비들이 3200km나 되는 먼 거리를 떼 지어 날아간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나비 스스로 제 힘으로 날개를 움직여 먼 거리를 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마도 기류를 타고 오는 것이 아닌가, 짐작을 할 뿐입니다. 그런데 더욱 의아한 것은 모나크버터플라이의 수명은 약 6~8개월에 지나지 않아 이듬해 같은 나비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손인 2세가 찾아오는 것으로 분석합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 나비들이 대부분 똑같은 나무로 다시 찾아오고 있어 그 비밀은 더욱 의아하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나비의 회귀본능은 문자 그대로 자연의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 예전에는 100만 마리 이상도 한꺼번에 날아 온 적도 있다고 해 의문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나비들은 이듬해 봄이 되면 다시 알래스카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귀소본능이라면 연어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연어가 육지의 하천에서 태어나 드넓은 바다로 나가서 자라 수천, 수만리를 되돌아 와 고향 하천에서 알을 낳고 숨을 거두는 것 역시 회귀본능으로만 알뿐이지, 그 비밀 역시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강원도 양양 남대천에서 부화된 연어 새끼들은 동해안을 빠져나가 북태평양 부근에 머물다 대략 1만8000km의 머나먼 거리를 헤엄쳐 자신의 고향인 남대천으로 되돌아옵니다. 학자들은 흔히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해 큰 바다를 건너 제가 태어 난 강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자기장(磁氣場)에 관한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연어는 알에서 깨어날 때 선천적으로 태어난 장소의 자기장 주소를 몸속에 저장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족을 번식하기에 최상의 환경과 위치 정보를 또렷하게 기억하여 후손들이 최적의 생존을 누릴 수 있도록 확보한 생물학적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한 분석이라 할지라도 보통 사람들의 지능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귀소본능이란 친숙하지 않은 장소를 통해 원래의 장소로 향해 되돌아 올 수 있는 동물의 태생적 습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귀소본능을 가진 동물로는 뱀장어, 비둘기, 제비, 신천옹, 꿀벌, 메뚜기, 개미, 다람쥐 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동물들의 길 찾기는 태양이나 어두운 밤하늘의 별을 보고 방향을 알거나 후각 즉, 냄새로 길을 따라가는 등의 방법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도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닌 한낱 동물들이 이미 오래 전 제가 태어난 곳을 잊지 않고 기억해 찾아가는 것은 학자들이 그 어떤 정설을 내 놓는다 해도 솔직히 보통 사람으로서는 수긍이 되지 않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한시(漢詩)에 '호마의북풍(胡馬依北風) 월조소남지(越鳥巢南枝)'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엄동설한에도 북방에서 온 말은 북쪽을 향해 서서 찬바람을 맞고 따듯한 남쪽 월나라에서 온 새는 남쪽 가지를 골라 둥지를 튼다는 뜻입니다. 말이든, 새이든 제가 태어난 고향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이니 인간이나 짐승이나 원초적인 회귀, 즉 귀소본능은 똑같은 것이 아닌 가 생각이 됩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무더웠습니다. 남녀노소 국민 모두가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남과 북의 정상이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 정상에 올라 함께 잡은 손을 번쩍 치켜드는 극적인 장면은 잠시 나마 통일을 열망하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판문점공동경비구역인 JSA와 비무장지역 DMZ에서는 지뢰제거작업이 시작됨으로써 9·19평양공동선언의 본격 이행에 들어갔습니다. 또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의 천연기념물인 풍산개 한 쌍을 청와대로 보내왔다고 합니다. 설령 심술궂은 그 누가 무슨 말을 하든 평화와 남북통일은 우리국민의 가장 큰 민족적 과제입니다. 

가을입니다. 릴케는 “주여, 때가 왔습니다 /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 했습니다 /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라고 노래했습니다. 설악산에서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날마다 몇 십리 씩 남하하며 내려오고 있습니다.

 

김영회(언론인)  yhk939@hanmail.net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