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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회 칼럼] 금메달 타령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대회 2연패를 달성한 축구대표팀이 지난 3일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뒤 해단식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바야흐로 스포츠 전성시대. 병역의 의무가 신성하다면서 힘있는 사람에게는 “아니올시다.” 국민이 공감하는 새로운 규정, 공평한 제도가 시급합니다―

1945년 일제로부터 독립이 된 뒤 우리나라에서 남성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어김없이 숙명처럼 겪어야 하는 철칙이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 하거나 사지가 불편한 장애인이 아니라면 반드시 치러야 하는 신성한 병역의무입니다. 성인이 되면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는 사실, 그것은 납세의 의무, 교육의 의무, 근로의 의무와 함께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입니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국방의 의무는 지구상 거의 모든 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헌법사항입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중국 등 대부분의 나라가 모병제(募兵制)를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이스라엘, 이란과 같은 나라는 국민 개병제(皆兵制), 즉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개병제란 누구나 군에 입대해야한다는 의미입니다.

국가에 따라서는 우리나라처럼 개병제를 하는 나라가 있지만 많은 나라가 모병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작은 나라들 중에는 아예 외국에 국방을 맡기는가 하면 외국에서 사람을 데려와 월급을 주고 쓰는 용병제(傭兵制)도 있습니다.

1950년대 자유당 시절 병무행정의 본산이었던 병사구사령부는 부조리의 복마전이라고 할 정도로 부패해 국민들의 원성을 샀습니다. 돈만 주면 징집을 피할 수 있었고 실제로 등록금만 내면 대학생으로 인정돼 징집을 면할 수 있는 게 당시의 문란한 병무행정이었습니다.

오죽 했으면 일선에서 전투 중 적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병사가 “빽~!”하고 숨을 거둔다는 유행어가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였습니다. ‘빽’이란 영어의 백(Back)을 가리키는 말로 뒤를 봐주는 배경이 없고 돈이 없어 이렇게 억울하게 죽는다는 말단 병사의 한스러운 단말마(斷末魔)였던 것입니다.

요즘은 TV에 나오는 병영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됩니다.

병영내의 환경은 물론 상하관계 역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바뀐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 까지만 해도 병영은 폭력으로 만연된 금단의 공간이었습니다. 별다른 잘못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선임자들로부터 구타를 당하곤 했던 것이 일상사이었기에 말입니다. 

하급 병사들 간에는 자주 매를 맞아 엉덩이에 새카만 멍이 들어 있어야 저녁에 편하게 잠을 잔다는 웃지 못 할 넋두리도 공공연했습니다. 단체로든 개인으로든 선임자들로부터 매를 맞아야 저녁잠을 편히 잔다는 하소연이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힌 병영문화였습니다. 소위 ‘빠따방맹이’라고 하는 침대 몽둥이로 기합을 받아야 마음이 편했다는 불편한 이야기, 병영 내에서의 폭력은 하나의 문화라고 할 만큼 번창했습니다.

1950~60년대 군대생활을 한 사람들이라면 ‘군대’라는 두 글자는 다시 떠 올리고 싶지도 않은 지긋지긋한 추억입니다. 최근 군 복무기간을 18개월로 줄인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과거 36개월, 3년을 매를 맞으며 꼬박 복무했던 왕년의 ‘노병’들은 확 뒤바뀐 군사문화에 격세지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말이 좋아 신성한 의무이지 인생의 황금기인 젊은 날을 철조망 안에서 인권을 유린당하고 보낸 금쪽같은 시간은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대한민국의 서글픈 자화상이었습니다. 

자신이 태어나 살고 있는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모든 나라가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의무조항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신성한 의무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권력을 가진 자의 자식이나 재력이 많은 자의 자식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군대를 가지 않은 것이 과거 우리 사회의 군사문화이었기에 말입니다.

지금은 영어(囹圄)의 몸이 된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진행되던 안보회의에는 군대도 안 가본 대통령과 군복을 입어 보지도 않은 장관들이 둘러 앉아 비상회의랍시고 코미디 같은 장면을 보여 주곤 했습니다. 국민들이 피식, 피식 웃으며 “쯧쯧” 혀를 찰 수밖에 없었던 건 모두 이유가 있었습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들의 해명을 듣노라면 저 사람들은 젊은 시절 왜, 그렇게 몸이 부실했고 자식들마저 건강이 그랬는지, 얼굴이 뻔뻔해 보이곤 했습니다.

아시안 게임에서 불거진 일부 선수들의 병역 특례를 놓고 사회가 다시 한 번 시끄럽습니다. 알 만한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지만 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한참 더 있어야 되겠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 분명합니다.

신성한 병역의무가 국민의 의무 중 첫 번째라면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지난 시절 그놈의 ‘특례’가 기득권을 가진 자와 힘없는 자를 갈라놓아 온 것이 이 나라의 감춰진 민낯입니다. 이번 병역면제 소란은 그동안 곪은 것이 터진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운동선수에 대한 병역특례는 1973년부터입니다. 한해전 독일 뮌헨올림픽에서 북한의 사격선수가 남쪽보다 먼저 금메달을 따자 이에 자극을 받은 박정희 대통령이 “메달을 따는 선수들에게 병역을 면제시켜주고 연금을 주라”는 특명을 내린 것이 시작입니다. 남북이 대결하는 상황에서 스포츠일망정 질 수 없다는 즉흥적인 오기(傲氣)가 발동한 것입니다.

체육계는 종목마다 선수들이 늘어났고 연금 받고 군대 안 가려는 젊은이들이 줄을 섰습니다. 최초의 금메달은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 페더급 금메달을 딴 양정모 선수였습니다. 당연히 모두들 부러워했고 금메달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청소년들을 들뜨게 했습니다.

취지는 좋았는지 모르지만 문제는 고무줄 원칙입니다. 원칙을 정했으면 그에 맞춰 일관성 있게 시행하면 될 일을 그때, 그때 권력자의 기분에 따라 규정을 바꾸고, 어기고 하는 게 문제입니다. 2002년 월드컵 때 4강에 들었다고 김대중 대통령의 특명으로 병역면제 혜택을 주었고 그 뒤에도 그런 일은 되풀이 됐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는 다 이긴 경기 막판에 단 4분을 교체로 들어가 잠시 뛴 축구선수에게 혜택을 주는 속보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우승한 축구의 결승상대 일본팀은 아마추어 수준의 2급 팀이고 야구 역시 조기회 수준의 사회인 팀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국제 대회가 우리나라에서는 병역 면제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당연히 국민적 분노가 폭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의 황금기인 중요한 시기를 희생한 일반국민들이 분노하는 건 당연합니다.

국위선양은 또 무엇입니까? 스포츠를 국가 명예로 내세워 경쟁을 하는 나라는 패권을 노리는 강대국과 독재국가들입니다. 독재자 히틀러가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거창하게 치러 전 세계에 세를 과시하고 1970년대 동서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스포츠를 통해 패권다툼을 벌이고 이제는 흔적도 찾아 볼 수 없는 동독이 세계 3위의 스포츠 대국으로 떠올랐던 것도 독재자들의 자기 과시욕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한해에 스포츠에 쏟아 붇는 돈이 얼마입니까. 수십 개 종목에서 축구의 손흥민이 되겠다고, 야구의 이승엽이 되겠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꿈을 키우는 청소년들의 숫자가 그 얼마입니까. 초중고, 대학, 실업팀, 프로팀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 붇고 있습니까. 가난한 작가들, 미술가들, 음악인들이 최저 생계비도 해결하지 못 하는 상황에서 수억, 수십억의 연봉을 받는 프로 선수들이 병역 면제까지 받는 것은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국민정서상 옳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툭하면 국위선양을 말하는데 국민 개개인이 불행한데 국위선양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거야 말로 약소국일 때, 독재자들이 즐겨 쓴 회초리요, 당근 아니었습니까. 근년에 일본이 스포츠를 등한히 하는 것은 우리나라보다 국력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선진국인 독일, 프랑스, 영국이 금메달 자랑을 하지 않는 것은 뭘 몰라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  금메달로 국민들을 순치(馴致)할 것입니까.  

1970년대에는 스포츠 구단도 없었고 선수들이 달리 수입이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대통령이 병역 면제 특례도 지시했고 연금제도도 만들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선수들은 환호했고 국민들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종목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프로가 활성화 돼 선수들 중에는 연봉이 수억에서 수십억을 받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바야흐로 스포츠 전성시대가 되었습니다. 국민들은 시급 몇 백 원 인상을 놓고 온 사회가 논쟁을 벌이는데 수백억 연봉을 받는 선수는 병역 특례를 이야기합니다. 엊그제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딴 여성 태권도선수가 한 밤 중 술에 취해 벤츠를 몰고 가다 사고를 내고 붙잡혔다는 뉴스는 듣기에 민망했습니다.

병역의무가 헌법에 국민의 의무라고 명시되어 있으면 공평하게 다 같이 지켜야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국민 개병제라면 모든 젊은이가 예외 없이 군대에 가야하는 것이 개병제입니다. 그런데 이 핑계, 저 핑계로 요리 빠지고 조리 빠지고 힘없는 사람만 법이 무서워 군대에 가 몸 바친 게 어제까지의 대한민국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국민의 의무이고 개병제 입니까. 말이나 안 해야 화가 나지 않지.

차제에 모든 국민이 납득하고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특례기준이 만들어 져야합니다. 

 

김영회(언론인)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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