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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회 칼럼] 한 많은 민족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지난 24일 오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단체상봉에서 남측의 강두리(오른쪽) 할머니가 북측의 언니 강호례 할머니와 볼을 맞대고 있다. /연합뉴스

―꿈꾸듯 지나간 2박 3일의 짧은 만남. 그리움은 눈물이 되고 눈물이 모여져 한이 됩니다. 우리에게는 올림픽 금메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뭇 동물과 다른 점은 마음속에 그리움을 간직하고 살아간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 할 때, 사람은 그리움으로 애를 태웁니다. 사랑했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연인, 멀리 떨어져 볼 수 없거나 사별한 부모 형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 땅, 이 모든 것들은 바로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그리움은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세상에 그리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늙은이는 늙은이 대로,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뱅이는 가난뱅이대로 모두가 그리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시인 류시화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노래해 세상 연인들의 가슴을 더욱 뜨겁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어도 그처럼 그립다 하거늘 하물며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할 때, 그 애타는 마음은 어련할까. 그러기에 시인은 시를 읊고 가수들은 그리움을 노래 부릅니다.

그리움은 깊어지면 눈물이 되고 눈물이 쌓이면 한(恨)이 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민족은 스스로를 ‘한의 민족’이라 자칭해 오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리움으로 고통을 겪었으면 ‘한의 민족’이라 말해 왔을까. 

금강산에서 열렸던 제21차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또 한 번 우리 민족의 ‘눈물 잔치’를 전 세계에 보여 주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 민족만이 연출하는 각본 없는 드라마였습니다.

90대의 연로한 어머니가 60여 년 전 전쟁 중 길에서 잃어버린 70대 아들에게 “상철아!” 이름을 부르며 목이 메어 포옹하는 장면은 세월이 이들 모자에게 얼마나 잔인했던 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아내가 임신한 줄도 모르고 남으로 내려왔다가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아내 대신 처음 딸을 만나는 아버지, 101살의 노인이 신발을 30켤레나 준비해 간 아픈 사연,  눈이 멀어 앞을 못 보는 할머니의 해후(邂逅), 빛바랜 옛 사진을 보여주며 혈육임을 확인하는 가족들.

“누나가 지어준 밥을 먹고 싶다” “그래, 지어 줄게” 목 메인 오누이의 모습도 보였고 입에 음식을 넣어 주는 정겨운 모습, 주름 진 여동생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여전히 예쁘다”고 과거를 회상하는 늙은 오빠, 가족 가족마다 연출하는 한 장면, 장면은 그대로 감동의 드라마였습니다. 2박 3일 여섯 차례, 12시간의 만남은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이들은 다시 눈물 젖은 얼굴로 남북으로 나뉘어 내려오고, 올라갔습니다. 꿈꾸듯 보낸 만남, 그들은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통일부에 따르면 6·25전쟁으로 인한 남북이산가족 수는 1000만 명이라고 합니다. 애당초 대한적십자사에 상봉을 신청한 숫자는 13만2000명. 그 중 상봉인원은 1985년 9월20일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왕래가 시작 된 이래 33년 동안 총 2만3600명으로 전체 상봉희망자의 18%에 불과합니다.

그동안 상봉을 기다리며 7만 여명이 사망했고 5만8000명이 현재 대기 중입니다. 대부분 80대인 이들 가운데 해마다 3000여명이 세상을 떠나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금까지의 관행대로라면 설, 추석 100명씩 한 해 두 차례 상봉을 한다면 280년이 걸려야 신청자 모두가 상봉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난센스입니다.

약속대로라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이제 곧 평양에서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합니다. 여러 가지 의제가 있겠지만 이산가족 문제는 인도적인 측면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우선과제입니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자유롭게 서신을 주고받고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고 화상상봉도 하고 더 발전시켜 왕래도 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서울에서 기차나 버스로 평양에 가고 반대로 평양에서 서울로 그렇게 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발상과 인식의 전환입니다. 

금강산 온정리에는 객실 206개를 갖춘 12층짜리 면회소가 있습니다. 우리 측에서 경비를 들여 2007년 건립한 것인데 그동안 남북관계가 경색돼 10년 넘게 비워 놓고 있다가 이번 상봉에서 사용했습니다.

독일에서 배워야 합니다. 1990년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동서독 통일을 이룬 독일에 답이 있습니다. 1945년 동서로 분단된 독일인들도 우리처럼 총칼을 맞대고 긴장을 이어왔지만 그들은 ‘게르만 정신’이라는 남다른 민족적 자긍심으로 끝내 통일을 이루어 냈고 오늘 날 유럽 제일의 강국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과거 서독 정부는 동독인들을 서독으로 불러 일체의 경비를 부담해 여행을 시켜줬고 서독인들이 동독을 여행 할 때 또한 경비를 지원해 줌으로써 양독(兩獨) 간의 동질성과 왕래를 원활하게 했습니다.   

왜, 그들이라고 보수가 없고 반대론자들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이겨 냈고 검정, 빨강, 노랑의 삼색기를 자랑스럽게  휘날리고 있습니다. 인구 8230만의 독일을 전 세계가 부러워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중국과 대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과거 긴장 상태 속에서도 자유롭게 오고가는 인적 통항(通航), 우편물을 주고받는 통우(通郵), 무역거래인 통상(通商) 등 삼통정책(三通政策)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통일이 되진 않았지만 중국인들은 불편 없이 서로 자유롭게 오고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배워야 할 교훈입니다. 7600만 남북 국민들의 가슴속에 서려있는 한을 풀 때 한반도의 진정한 통일은 이루어집니다.

리처드 바크의 ‘조나단 리빙스턴 시갈’에 보면 갈매기 조나단은 뭇 갈매기들이 선창가에서 생선 찌꺼기를 놓고 아귀다툼을 벌일 때 홀로 하늘을 날면서 이렇게 소리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자유가 있으며, 우리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자유가 있다”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들려주는 메시지입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남과 북, 우리 한민족에게는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김영회(언론인)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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