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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장길 칼럼] 우리는 웃음에 너무 인색하다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8.08.08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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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와 홍소, 대소, 폭소, 파안대소, 남을 기쁘게 하는 웃음 등은 지나치거나 부자연스럽지 않는 한 자신에게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남들에게도 좋은 느낌을 선사한다. 건강과 행복을 일으키는 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서울 종로에서 경기 용인으로 이사한 날 아파트 단지에 입주를 알리려고  관리사무실에 들렀더니 6시가 갓 넘었는데도 문이 이미 닫혀 있었다. 모두 칼퇴근을 한 모양이었다.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뜻밖에 건물 후문 쪽에서 한 건장한 신사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반가워서 관리실이 몇 시에 닫느냐고 우선 물으니 6시라고 시답잖게 대꾸한다. 내가 웃으면서 3분 지났는데 시간 약속을 정확하게 지킨다고 농담을 건네자 그이가 멈칫하더니 정색을 하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 단지에 합류하려고 알리러 왔다니까 너무 늦어서 모두 퇴근했으니 다음 날 아침 직원들에게 신고하란다. 혹 직원이 아니냐고 물으니 자기는 관리소장이라면서 고개를 세웠다. 

나는 반갑게 웃으면서 마침 책임자를 만났으니 앞으로 잘 보살펴 달라고 몸을 낮췄으나  그는 계속 굳은 표정으로 신고절차가 있다면서 잊지 말고 직원에게 신고서를 제출하라고 아랫사람 대하듯 가르친다. ‘무슨 대단한 절차일까’라고 코웃음이 일었지만 꾹 참으면서 “알았다”고 말하고 돌아서려다 이미 돌아선 그를 불러세웠다. 언뜻 동 건물  출입구가 너무 컴컴하다는 생각이 떠올라  좀 밝게 할 수 없느냐고 묻자 역시 직원에게 민원(?)을 내란다. 바쁘니까 수고스럽지만 소장이 직원에게 지시할 수 없느냐고 조르니 짜증스러운 듯 중얼중얼 퇴근 길을 언급하며 내 동·호수를 핸드폰에 입력했다. 그 뒤 우리 동 현관 조명의 침침함은 관리실 직원에게 재차, 삼차 요청을 해도 여러 이유로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어두운 소굴을 드나드는 꼴을 면치 못했다. 한 주민의, 한 집주인의  새 커뮤니티 진입은 그렇게 까칠하게 시작되었다. 

이 하찮은 에피소드는 우리들이 일상 속에서 얼마나 자기 본위로 살고 있는가, 솔선수범은 커녕 본분의 수행이 어떻게 미뤄지는가, 웃음이 끼어들 틈새가 얼마나 빡빡한가를 씁쓸하게 암시해 준다. 840여 세대의 큰 단지를 관리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가 말한 민원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관리자는 입주자들을 위해 재산과 서비스(goodwill)의 관리를 충실히 하도록 하는 보살핌의 직무가 주어져 있다. 새로 들어온 입주자가 인사차 들렀으면 아무리 만만하게 보이더라도, 아무리 바쁘더라도 성의를 갖고 친절하게 맞아야 제격이다. 책임자가 자기의 입장만을 내세우면서 미소로 인사하는 새 주민에게 딱딱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무례하다. 그의 사무적이고 계산적인, 또는 일종의 권위적으로 보이는 처신에 새 입주자의 애써 지은 웃음은 영락없이 천박한 걸레 신세가 되었다. 

그에 앞서 이삿짐 트럭은 고공 사다리를 걸어놓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인부들도 땀을 줄줄 흘리면서 바쁘게 짐을 옮기고 있었는데, 그 바쁜 와중을 한 중년 부인이 “잠깐만요”를 외치며 가로질러 들어와 작업을 중단시켰다. 바로 옆에 버려진 중고 가구들을 골라서 가져가기 위해서였다. 같은 단지의 주민이라니 거기까지는 잠깐 양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의 일이었다. 그 여인의 손짓에 따라 남편으로 보이는 이가 차를 운전해 들어와 트럭 옆 길 중간에 떡 주차해서 작업의 동선을 완전히 막아서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부부가 함께 쓰레기 처리장에 내다버린 폐품 속에서 쓸만한 물품을 고르기 시작했다. 바쁜데 무슨 짓이냐고 좋게 나무라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남의 형편이야 어찌되든 자기들의 작은 욕심을 채우려는 속좁은 행동으로 인해 이사짐 운반은 한동안 손을 놓게 되었고, 여러사람의 공분을 샀다. 작은 일이지만 우리사회에 깊이 쌓인 거대한 이기심의 덩어리를 빙산의 일각처럼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들은 한 가지의 물건도 건지지 못하고 돌아가면서 이사짐 운반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실례했다고 천연덕스럽게 변명을 던지고 사라졌다. 인부들은 그들 뒤로 역정을 냈지만, 나는 그들과 싸울 수도 없어서 헛웃음만 뜨거운 창공에 던지곤 했다. 

이마뉴엘 칸트는 웃음이 “예상밖의 결과에 우스꽝스럽게 느끼는 감정 표현”이라고 규정했고, 토마스 홉스는 “갑자기 나타나는 승리의 감정”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서술은 다분히 횡경막의 발동을 의식한 분석적인 시각에서 나온 듯하다. 그러나 조금 더 짚어보면 웃음을 자주 보일 수 있는 성정에는 그 마음의 바탕에 세상을 보는 도량과 내공, 여유, 깊은 경지가 넓게 자리잡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미소’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금도와 철학없이 각박한 세파 속에서 미소나 파안대소를 자연스레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웃음의 인품이라는 것은 갈고 닦은 높은 수준의 수양에서 풍기는 향기일 성 싶다. 

“웃으면 복이 온다”라든가, “한 번 웃으면 그만큼 젊어지고, 한 번 화내면 그만큼 늙는다”는 옛말은 과학적으로도 뒷받침되고 있다. 웃으면 뇌에 산소 공급이 활발해지고, 몸에 엔돌핀이 생성된다는 연구가 많이 발표되었다. 웃으면 스트레스가 줄고, 혈압이 떨어지며, 면역력이 올라간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하루에 15분 만 웃어도 건강이 괄목할 만큼 좋아진다는 주장도 있다. 인도 의사 마단 카타리아가 주도하는 웃기 운동이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는 것도 건강의 호전에 확신이 있기 때문이리라. 1995년 4명의 인도인들이 시작한 그 웃기 운동은 24년 만에 세계 50여 국에 6000여 클럽이 결성될 만큼 커졌다.

웃음은 개인의 건강문제를 넘어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도 양념이자 윤활유다. “웃는 얼굴에 침 뱉겠는가”라는 말은 경쟁이 치열하고, 이해가 예민한 세상살이에서 일을 한결 부드럽게 하는 웃음의 효험을 꼭 찍어 이르는 금언이다. TV 뉴스쇼에서 딱딱한 뉴스 아이템이 계속되다가 앵커가 개그 한 마디를 툭 던지면 그 소구력이 시청자 뇌리에 깊이 각인되는 원리와도 같다. 갈등과 분쟁, 비난, 공격에 지친 우리네 삶과 커뮤니티에 절실한 미덕이다. 

미국은 유머의 나라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정치인들의 연설이나 회견 등에서는 어김없이 유머가 등장하며, 분위기를 한결 친밀하게 해준다. TV의 코미디쇼가 간단없이 인기를 모으는 현상도 유머를 좋아하는 미국사회의 성향 때문으로 보인다. '멜팅 팟(끓는 냄비)'이라는 표현처럼 미국의 복잡다단한 이질 집단들 간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구실이 유머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누구라도 수준 높은 유머를 구사할수록 인기가 높고, 친밀감을 즐긴다. 유머가 사교계의 금강석처럼 반짝인다. 

일본에서도 웃음이 대인관계의 페이소스라고 할 수 있다. 웃음은 친절의 대명사고, 충돌과 대립을 예방하는 보약이다. 충돌과 대립의 사회적 비용을 희석시키는 효과는 천문학적인 수치임에 틀림없다. 전후에 각박하게 살면서 이념 갈등까지 겪는 한국사회가 웃음을 잃어버리고 성난 얼굴로 마냥 예민해 있는 현상과 많은 대비가 된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무슨 대표건, 대변인이건 할 것 없이 입만 열면 정적들을 원색적으로 공격하고, 서민들은 이해관계로 아귀다툼을 일삼는다. 자기네 나라에서는 길에서 마주치는 행인들에게도  많이 웃어주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는 굳은 표정으로 관광을 다니는 표정들을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인들은 표정들에서 자기들에게 무슨 적대감을 갖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웃음은 부정적인 종류도 있고, 긍정적인 모양도 있다. 조소와 냉소, 비소, 실없이 웃는 것이나 억지로 웃는 것 등은 유익하지 않으며, 가급적 삼가해야 할 부도덕이다. 반면에 미소와 홍소, 대소, 폭소, 파안대소, 남을 기쁘게 하는 웃음 등은 지나치거나 부자연스럽지 않는 한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남들에게도 좋은 느낌을 선사한다. 건강과 행복을 일으키는 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이 무엇이냐는 동자의 물음에 고승은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며 미소를 짓는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깊은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미소가 향기롭기 짝이 없는 우리들의 삶과 주위가 그립다. 

송장길(언론인·수필가)  womaneconom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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