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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손님 발길도 부쩍" 여자를 읽는 공간 만든 페미니즘 전도사책방 '달리봄' 운영하는 류소연 대표 "남녀 모두에게 더 나은 세상 만드는게 꿈"
지난 9일 류소연 '달리봄' 대표가 여성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이곳 ‘달리, 봄’ 책방을 통해 지금과는 다른 봄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류소연(29) 달리봄 대표는 지난해 8월 서울 관악구 봉천동 골목 모퉁이에 10평 남짓한 작은 페미니즘 책방을 열었다. ‘지금과는 다른 봄을 꿈꾼다’라는 의미를 지닌 이곳은 다양한 책을 통해 여러 사람에게 페미니즘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공감과 통찰을 이끌어 냄과 동시에 마음을 위로하는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한다.

류 대표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대학시절 무렵이다. 대학에서 만난 이성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보이지 않는 미묘한 벽을 느끼기 시작했다. 논쟁이 되지 않을 사소한 주제에도 의견차를 보였고, 그에 대한 류 대표의 반응은 곧 웃음거리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평등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믿었던 그의 자부심이 한방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평소 너무나 친하고 잘 맞는 이성친구들과 막힘없이 대화를 하다가도 페미니즘 이야기만 나오면 제게 ‘답 없는 이야기’를 한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문제는 당시 저의 주장을 탄탄하게 뒷받침 해줄 근거가 부족했다는 것이죠. 어떤 말을 해도 예민한 사람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때 ‘아 주장에서만 그치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이후 관련 서적도 많이 읽고 사례도 찾아보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이라는 이슈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그의 이런 관심사는 대학시절 전공을 통해 한층 깊어지는 계기가 됐다. 역사를 전공했던 그는 대부분의 역사가 'History'가 아닌 남성 중심의 'His story'로 기록돼 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훌륭한 예술가였던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시인 허난설헌은 허균의 누나로만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역사 속에 묻힌 여성의 목소리를 찾아주고 싶었다.

그런 그의 각오는 지난 2016년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더욱더 확장됐다. 수많은 여성들이 같은 피해와 감정을 숨 쉬듯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침내 그는 여성이기 때문에 겪게 된 불합리한 상황들과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사회적 구조를 함께 이해하고 나눠야겠다고 결심했다.  

◆ 여성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허스토리’… “여성의 삶도 기록할만한 가치 있어”

류소연 대표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는 다는 뜻의 'Her story'라는 작은 출판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양한 여성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젠더 관점의 기록물을 기획․출간하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 사진은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책 중 일부의 모습. /사진제공=달리봄

류 대표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뜻의 'Her story'라는 작은 출판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곳을 그의 고민 해결의 첫 번째 출구로 삼았다. 다양한 여성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젠더 관점의 기록물을 기획·출간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삶도 충분히 ‘기록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각오에서 출발한 일이었다. 누구누구의 엄마가 아닌 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온전히 남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한국사회 깊숙이 뿌리 내린 가부장적 시각과 관습, 남성우월주의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문제점이 큰 장애물로 가로 막았다. 여성의 이야기를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식의 전환 또한 시급했다.

“자녀가 의뢰하면 그의 어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자서전을 만드는 작업을 했는데 일을 하면서 중년 여성의 삶 속에 가부장제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딸 대신 아들을 낳아야 하고, 재산은 딸이 아닌 장남이나 차남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더라고요.”

애초 출판사를 설립한 취지와 달리 기록하는 것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여성에게 발언권을 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여성의 이야기를 단순히 기록하는 것을 넘어 이들의 이야기를 한 데 모아 소개하고 나누면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페미니즘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미약할지라도 그가 만든 공간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많은 이들에게 보태주고 싶었다.

◆ 남성 여성 모두를 위한 공간 책방 '달리봄' … “연대하는 공간으로 나아갔으면”

지난해 8월 서울 관악구 봉천동 골목 모퉁이에 자리잡은 페미니즘 책방 '달리봄' 내부의 모습./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류 대표의 사고는 책방을 만드는 튼튼한 기반이 됐다. 그가 만든 두 번째 출구는 바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공간이었다. 비단 여성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모두를 위한 공간을 통해 자유와 생존권을 되찾아 주고 싶었다.

그가 만든 달리봄은 400여권의 다양한 페미니즘 책이 구비돼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는 기본 이론서부터 젠더 관련 연구서적, 여성의 삶을 다룬 에세이, 인터뷰집 등 여성주의 관점에서 쓰인 다채로운 책을 판매한다. 사진집과 굿즈 등 젠더 시각을 담아 완성된 물품도 준비돼 있다. 가볍게 차를 마시며 책을 읽어 볼 수 있다는 점도 이곳의 큰 장점이다.

“페미니즘은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 성별 이런 것 모두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게 하는 것’ 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여성에게 있어 페미니즘은 생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위험 상황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페미니즘에 대한 이슈를 누구나 알고 관심 가져야 할 문제라고 보았습니다. 책방은 무엇이든 논의가 시작되는 곳이고 책은 사회적 문제점을 정당하게 고발함과 동시에 사람의 인식을 전환하고 사람을 위로하는 가장 큰 권력이기 때문에 의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류 대표는 이곳 공간을 통해 개인에 맞는 맞춤 서적을 추천한다. 예컨대, 남자친구와 함께 읽고 싶은 책, 여성으로서의 삶을 공감 받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책 등 진열대에 꽂힌 수많은 책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이들에게 큐레이션 역할을 한다. 이 덕분에 이곳은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르는 남성들도 이곳을 찾는다.

그렇다보니 기억에 남는 손님도 제법 많다. 왕복 네 시간의 거리를 매주 오가며 이곳 책방을 찾는 고등학생 손님부터, 여자친구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을 추천받기 위한 어느 여성의 남자친구 등이 대표적이다.

“아무래도 남성 손님이 기억에 남는데, 대부분 페미니즘에 대해 알고 싶은데 입문도서를 추천해달라고 하거나 여자친구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추천해달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추천을 하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다음 책을 추천받으러 오는 경우도 있고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고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 책방을 운영하는 대표로서 뿌듯함과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달리봄은 단순히 책을 사고 읽는 책방으로서의 공간을 넘어 소통하고 연대하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세계 여성의 날 페미니즘 책방 달리봄에서 영화 '서프러젝트'의 상영을 마치고 당일 모인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달리봄

또한 달리봄은 단순히 책을 사고 읽는 책방으로서의 공간을 넘어 소통하고 연대하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성별과 세대를 불문하고 이들을 이어주거나 혹은 넘나들며 소통을 가능케 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기적으로 페미니즘과 관련된 연구자를 초청해 세미나를 열거나 특정 책을 선정해 페미니즘 관련 독서모임을 갖는 등의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또 커뮤니티를 통해 즉석 영화 번개모임을 제안하기도 한다. 함께 다양한 콘텐츠를 나누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등의 활동을 통해 서로가 공유하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류 대표는 앞으로 이런 모임을 꾸준히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최근 페미니즘에 대한 이슈가 뜨거워지면서 미투 운동도 거세지고 있고 사회적으로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이와 비교해 바뀌는 속도가 너무나 더디다고 생각해요. 미비하지만 달리봄이라는 공간을 통해 페미니즘이라는 담론을 끊임없이 이야기 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책방지기가 되고 싶습니다. 이곳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모일 수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털어놓고 나아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었음 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페미니즘에 대해 무작정 선입견을 갖기 보다는 책 한 권 읽어보는 것을 추천 드리고 싶어요. 책만 읽어도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말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임유정 기자  wiselim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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