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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명장 도전합니다" 용접 기술 하나로 유리천장 깬 불꽃녀여성1호 용접 기능장 박은혜 교수 "저도 한때 경단녀 신세...멈추지 않으면 이룰수 있어요"
여성1호 용접 기능장이자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는 박은혜 교수가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yms7890@hanmail.net
여성1호 용접 기능장이자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는 박은혜 교수가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yms7890@hanmail.net

"처음 용접을 시작해 아침 일찍 현장에 나갔더니 '재수없다'라며 소금을 뿌리기도 했어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또 경력이 단절되었다는 이유로 도전을 멈추면 안됩니다. 저의 다음 목표는 여성 최초의 '용접 명장'입니다."

지난 12일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에서 만난 박은혜(45) 한국폴리텍대학 교수는 '불꽃녀'다. 여성1호 용접 기능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그는 한양이엔지주식회사의 차장으로 일하면서 대학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다. 주말인데도 작업자에게 잘못된 점을 코치하며 용접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그도 역시 피와 땀과 눈물의 세월을 견뎠다.

1991년 고교 졸업과 동시에 도시가스 시공업체에 취업해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경리과에서 1년을 보냈지만 재미가 없었다. 현장체질이었던 그는 사장을 조르고 졸라 전산부, 자재과, 기술부를 두루 거치면서 4년동안 용접을 배웠다. 24세때 드디어 현장에 나갔다. 베테랑 아저씨들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악착같이 달려들어 기술을 익혔다. 

1997년 결혼 후 그 다음해 첫 아이를 낳으면서 더 이상 공사 현장에 나가는 것이 힘들었다. 2년 뒤 10년간 잡은 용접봉을 놓고 경력단절여성이 됐다. 마침 IMF 시기였던 탓에 살림형편은 최악이었다. 당장 일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결혼할 때 4평짜리 방에서 시작했죠. 그 4평의 반을 화장실이 차지하고 있어 지인이 준 소파를 놓고보니 남편하고 저 딱 눕는 자리만 남더라구요. 이를 악물어야 했어요."

박 교수는 임신한 상태로 식당일을 했다. 새벽에 나가 밤 늦게 돌아오는 고된 일이 계속된 탓에 아이가 거꾸로 들어서 출산때 무척 힘들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일어나야만 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식당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무언가 제가 평생 안정적으로 밥벌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도시가스 시공 업무 때 용접을 했던 일이 기억났어요. 바로 이거 다 싶었죠."

두 자녀를 키우던 그는 2004년 한국폴리텍대에 용접분야 기능장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전에는 아이들을 돌보고, 저녁에는 폴리텍대에서 강의를 들었다. 자정까지 남아 공부를 할 정도로 열정의 시간을 보냈다.

 경력단절녀에서 교수로…"다들 제가 너무 절박해보였는지 차근차근 알려주더라구요"

여성1호 용접 기능장이자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는 박은혜 교수가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yms7890@hanmail.net

2년 동안 밤낮없이 공부했다. 용접은 필기뿐만 아니라 실기까지 합격해야만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안외워지는 용접 단어를 종이에 적어 가지고 다니면서 외웠다.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 암기했다.

2006년 2월 학교를 졸업하면서 여성1호 용접기능장이 됐다. 자격증도 하나만 딴 게 아니었다. 배관기능장도 땄다.

"용접하면 다들 불꽃튀는 모습을 떠올리는데요. 실제로 용접 기능장은 수학을 많이 알아야 해요. 저도 필기공부를 하면서 20대 친구에게 현장 용접 용어를 배우고 40대 공무원에게 수학을 배웠어요. 다들 제가 너무 절박해보였는지 차근차근 알려주더라구요."

◆ "너희들은 '용접공'이 아닌 '용접사'에요"…당당하게 자부심 가지도록 가르쳐

여성1호 용접 기능장이자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는 박은혜 교수가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yms7890@hanmail.net

박 교수는 이후 직업훈련교사 자격증을 취득해 직업전문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쳤고 2009년에는 산업현장에서의 활약상과 강의 경력을 인정받아 폴리텍 교단에 섰다.

남성 고유의 영역으로 알려진 용접 분야에서 기능장 자격을 취득하고 교수가 돼 후학 양성에 나선 인간승리를 이루어낸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면 제가 처음 강조하는 말이 있어요. 너희들은 '용접공'이 아니라 '용접사'다. 당당하게 자부심을 가져라. 스스로 자신을 폄하하거나 존중하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프라이드를 가져라."

그는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반드시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자신에게 배우면 정말로 기술을 제대로 연마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면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고 했다.

또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XX와 같은 욕은 절대 하면 안된다. 욕이 나오려고 하면 옆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라는 조언을 한다고 했다. 둘째, 지각 결석은 안된다. 셋째, 모르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고 편안하게 물으라는 것이었다.

여성1호 용접 기능장이자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는 박은혜 교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yms7890@hanmail.net

박 교수는 회사에서는 도시가스 시공 감독을 맡으며 기술자로 일하고 강단에서는 교육자로서 열정을 채워나갔다. 이 같은 노력 끝에 2015년에 여성 최초로 재료 분야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가 됐다.

산업현장 교수란 10년 이상 현장에서 일한 전문 기술자가 보유한 숙련기술을 학교와 중소기업에 전수하기 위해 2012년 도입된 제도다.

박 교수는 2017년에는 우수숙련기술자(준명장)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최종 목적은 기능인의 꿈인 '대한민국 명장'이 되는 것이다.

여성1호 용접 기능장이자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는 박은혜 교수가 용접을 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yms7890@hanmail.net

"처음에는 여성 용접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웠어요. 여자라고 혜택 더 준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실력을 더 쌓았죠."

그는 사람들이 용접하면 불꽃이 튀는 용접하는 모습만 떠올리는 점이 아쉽다고 했다.

"용접은요. 생각보다 분야가 다양해요. 직접 용접사로 일할 수 있구요. 용접사도 CO2용접, 티그용접 등 분야가 다양해요. 어려운 용접기술을 익히면 연봉이 1억이 넘는 사람들도 있어요. (웃음) 이 뿐만 아니라 강단에 설 수도 있고 또 컨설팅을 할 수도 있어요."

인터뷰가 끝날 때 박 교수는 "경력단절 여성이 얼마나 힘든지 절실하게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걷는 길이 후배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용접봉을 내려놓지 않았다"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력이 단절되었다는 이유로 주저하지 말고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양혜원 기자  yhwre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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