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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장길 칼럼] 질박한, 그리고 전향적인(2)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8.05.0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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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벽면과 여의도 주변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걸려 있다. /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장기 체류를 시작할 무렵 나는 참 좋은 이웃을 만났다. 딕이란 애칭으로 불리던 옆집 친구는 마치 친형처럼 다정했다. 이탈리아계 이민 3세인 그는 10대 후반에 한국전에 참전하기도 했던 광고회사 고위직 출신으로 미국 사회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정보로 나에게 수시로 많은 도움말을 주었다. 이웃사촌이란 말을 그렇게도 실감나게 느끼도록 하던지!

그 옆집의 은퇴한 엔지니어 앤디는 나의 집에 하수도나 문짝의 고장 등 골칫거리가 생기면 가리지 않고 쫓아와 뚝딱 해결해 주었다. 그럴 때의 고마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독일계 중노인이었던 그는 “세상에 가치가 없는 것은 없다(Everything has value.)”라는 생활철학을 내 가슴에 각인시켜준 체구도 크고, 마음도 넓은 거인이었다.

또다른 옆집의 유태계 변호사 가정, 록히드 항공사 간부로 은퇴한 뒷집 노인, 또 앞집의 영국계 젊은 부부 등도 늘 친절하고 따듯하게 대해 주어 내가 미국생활의 초기에 달려들던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그들을 통해 미국의 허리인 전형적인 중상류사회를 체험할 수 있었으며, 미국사회의 바닥에 흐르는 정신과 규범, 대인관계의 미국식 방식 등을 조금씩 터득해나갔다. 나 자신도 그들에게 성심껏 대하긴 했지만, 만일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의 미국생활이 많이 힘들고, 달라졌을 것이라고 요즈음도 회고하곤 한다.

미국에서 자영업을 운영할 때 사업장의 건물주들을 여럿 만났는데, 그 중에는 우호적이거나 합리적인 이들도 많았지만 지독한 자린고비도 겪었다. 처음 만난 이는 헝가리계 유태인으로 5000스퀘어휘트가 넘는 큰 매장을 대여해 주고도 늘 이웃처럼 편안했으며, 경기가 좋지 않다면 세율을 깎아 주는 등 ‘세입자가 좋아야 건물주도 좋다’는 원리를 실천하는 합리적인 자본가였다.  

악질적인 건물주는 홍콩에서 온 중국인이었는데, 여러 채의 아파트와 주택을 보유하고 있어서 재력이 제법 넉넉한 인물이었다. 그러면서도 해마다 우기가 닥치면 천장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입주자들이 난리법석을 치르는데도 늘 지붕에 올라가 임시변통으로 깨작깨작 때우는 소인배였다. 나는 좋은 입주자가 되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돈에 쩔은 인종의 야박함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참을 수 없어 사업체의 매입자를 찾아 계약까지 체결했으나 나를 잡으려고 의도적으로 새 입주자의 검증을 질질 끌며 매매를 방해해 낭패를 안겼다. 결국 법정까지 가서 양측이 모두 상당한 손실을 입고 말았지만, 그 상가의 공간은 수년 넘게 아직도 공실상태여서 지금까지 월세만 수십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을 것이다.

선한 자와 악한 자의 구분은 단순하지가 않다. 높은 수준의 선과 낮은 수준의 악이야 극명하게 드러나지만, 사람들이 발톱을 가리고 사니 진실함과 흉악함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또 선과 악의 경계에 사람들이 몰려 살기 마련이고, 상황에 따라 그 경계를 넘나들기 때문에 황당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어제 좋았던 사람이 오늘 표변하는 경우가 오죽 많은가. 선과 악의 개념 자체도 환경에 따라, 또는 당사자의 입장에 따라 변하기 쉬운 만큼, 선한 삶을 꾸준히 지키려고 노력하는 일은 그 자체로도 높이 평가할 만한 선이다.

미국인 진국들은 그 마음 씀씀이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내가 운영하던 식품도매업소의 꾸준한 고객이던 한 백인 젊은 이는 멀리 이사를 하고도 좋은 관계를 끊지 않으려고 한참이나 먼 길을 돌아서 꼬박꼬박 찾아왔다. 이쪽에서도 그에게는 정성이 절로 솟았는데, 그의 맑은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미국의 깨끗한 마음들을 보는것 같았다. 주변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리토스에서 살 때 늘 활달했던 이웃 아주머니는 내가 서두르다가 차고 문을 열어놓고 출근했음을 발견하고 도둑의 짓으로 여겨 경찰을 불러 점검토록 해 주었다. 그러고도 내가 연락이 안 되자 다른 볼일을 연기하면서까지 온종일 자기집처럼 감시해 주었다. 존 스타인백이 '분노의 포도'에서 그린 어머니처럼 강인한 미국 여성의 보살핌이 나의 집을 지킨 것이다.

보수도 없이 꼬박꼬박 학교 앞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노파들의 모습, 재산을 자손에게 상속하지 않고 사회에 기부하는 문화, 남의 불행을 나의 일처럼 보살펴 주는 이웃들, 몸이 불편한 사람을 보면 자석처럼 달려들어 도와주는 순수한 마음, 전쟁과 가난에 시달리는 난민에 대한 구호의 손길 등 다사롭고 건전한 사회적인 분위기는 얼마나 가상한가. 그런 아름다운 풍조가 있어서 개인주의 사회라든가, 부자들의 천국이라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란 공동체가  끊임없이  따뜻하고 건실하게 재충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악의 넝쿨은 성역없이 어디에나 뻗어 나간다. 금융관계 업무를 취급하던 나의 업소에 3년 이상 드나들던 자메이카 출신 흑인 단골은 어느날 수천 달러어치의 몹쓸 수표를 들고와 믿는 도끼로 내 발등을 찍었다. 또 매장 안에서 고의로 난동을 부리고는 위해를 받았다고 소송을 걸어 화해금을 뜯어낸 상습 모리배, 쌓인 외상값을 떼어먹고 줄행랑친 라틴계 악질 상인 등 사업의 경험이 없어 순진했던 나는 수없는 악의 손끝에서 피해를 보았다.  또 무장한 흑인 강도들에게 강탈(Hold up)을 당하기도 했으며, 한국인 유명 목사의 아들로부터 컴퓨터부품 공장을 매입할 때 손익을 교묘하게 부풀리는 수법으로  큰 손실을 떠안기도 했다. 이런 일들은 미국사회의 하위 구조에서 만만치 않게 일어나는 범죄며, 특히 기술과 경험없이 ‘미국의 꿈(American Dream)’만 품고 덤비는 한국 이민자들의 영세업소에서는 수월찮게 겪는 불행이다.

불행은 희망과 의지 앞에서는 맥을 못 쓴다. 나의 그 숱한 불행한 사건들도 달려오는 미래의 기에 밀려 망각 속으로 묻혀버리곤 했다. 4·29  LA 폭동과 같은 한인동포사회의 엄청난 트라우마도 아메리칸 드림의 거센 기운에 눌려 빠르게 아물었다. 월남전의 후유증인 히피족의 퇴폐성 물결도,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겨냥한 파괴적인 분출도 한때는 기세가 등등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수면 아래로 잠수해 버렸다. 미국 사회의 여러가지 용종이나 상처는 그렇게 거대한 사회조직의 면역력과 치유능력에 의해 스스로 힘을 잃고 잠재워진다.

무엇이 그렇게 많은 문제들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고  유지·발전시켜 주는 것일까? 나는 개인이고, 사회고 간에 질박하고, 전향적인 의식과 체질이 건강하고 튼튼해서 오염되고 부정적인 부분을 압도해야 스스로를 지키고 성장시켜 준다고 믿는다.

미국은 지금도 꾸준히 치유 중이고,  재충전 중이며,  재건축 중이다.

송장길(언론인·수필가)  womaneconom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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