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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회 칼럼] 평창올림픽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선수단 공동기수인 남측 원윤종, 북측 황충금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동시 입장하고 있다.

―“한반도기 공동입장에 소름끼치게 감동받았다” 전 세계에 보여 준 명장면, 스포츠가 정치를 초월하는 현장을 보고 있습니다―

2018년 2월 9일 저녁, 남과 북은 또 한 번 전 세계에 감동적인 명장면을 연출했습니다. 휘황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한반도기를 앞세운 남·북선수단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낼 때 스탠드를 가득 메운 관중들은 함성과 박수로 이들을 맞이했고 전국의 국민들, 나아가 전 세계 20억 명의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봤습니다. 지구촌 겨울스포츠축제인 제23회 평창동계올림픽은 그렇게 막이 올랐습니다.

이번 대회의 슬로건은 ‘하나 된 열정(Passion Connected)’입니다. “사람(Peaple)과 사람을 잇는 올림픽, 가능성(Possibility)을 여는 올림픽, 평화(Peace)를 잇는 올림픽, 새로운 힘(Power)을 창조하는 올림픽, 공간(Place)과 공간을 잇는 올림픽이 되게 하자”는 것이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의 정신입니다.

사실 평창동계올림픽은 두 번의 실패 끝에 얻어 낸 값진 대회입니다.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에서 유수한 세계 도시들을 누르고 세 번 만에 극적으로 선정되어 7년을 땀 흘려 준비한 뜻깊은 이벤트입니다.

2월 9일부터 25일까지 17일 동안 평창과 강릉, 정선 등 3개 지역에서 동시에 열리는 대회는 역대최대 95개국 2920명의 선수들이 15개 종목 102개 세부종목에 출전해 300여개의 금·은·동메달을 놓고 각축을 벌입니다. 한국은 15개 전 종목에 144명의 선수가 출전해 주최국의 명예를 위해 선전을 펼치는데 입상 목표는 금8, 은4, 동8개로 전체 4위입니다.  

올림픽의 역사는 멀리 기원 전 8세기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로 올라가지만 오늘 날과 같은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것은 1896년 프랑스의 교육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서입니다.

하지만 동계올림픽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은 1924년 몽블랑이 위치한 프랑스의 작은 도시 샤모니입니다. 당시 1회 대회에는 16개국에서 250명의 선수가 출전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동계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것은 1948년 스위스의 생 모리츠대회입니다. 한국은 이 대회에 임원 2명, 선수 3명이 참가했는데 이것이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첫 동계올림픽 출전사인 셈입니다. 말이 올림픽대표단이지 억지로 모양만 갖춘 초미니 선수단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메달을 따기 시작한 것은 1992년 16회 알베르빌 동계올림픽부터입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임원25명, 선수 25명, 총 50명이 참가해 금2 은1 동1, 도합 4개를 획득해 종합순위 10위를 차지했습니다. 대단한 결과였습니다.

그 뒤 1994년 17회 릴레함메르(노르웨이)대회 6위, 1998년 18회 나가노(일본)대회 9위, 2002년 19회 솔트레이크(미국)대회 14위, 2006년 20회 토리노(이탈리아)대회 7위, 2010년 밴쿠퍼(캐나다)대회에서 금6, 은6, 동2개로 종합 5위라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둡니다. 혜성같이 나타나 금메달의 영광을 안은 김연아 선수의 쾌거가 바로 이 대회였습니다.

한국은 1948년 5회 스위스 생모리츠대회부터 2014년 22회 러시아 소치대회까지 총 17회 출전해 총53개의 금·은·동메달을 획득해 부동의 동계올림픽 강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그리고 이번 제23회 대회를 주최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의 일입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하계올림픽(1988), 월드컵(2002), 세계육상선수권대회(2011), 동계올림픽 등 4개 메이저대회를 개최해 스포츠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여섯 번째 나라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4개 대회를 모두 치룬 나라는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등 다섯 나라뿐이고 미국과 중국도 아직 이 그룹에 들지 못한 상태입니다.

사실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면 우리나라의 겨울스포츠는 말이 스포츠이지, 동네 아이들 썰매 타는 수준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1950년대만 해도 스케이트를 탈 실내링크는커녕 야외빙상장이 한곳도 없어 날이 추워지기를 기다려 한강에 얼음이 얼면 비로소 대회를 열 정도였습니다.

스키라고 해 봤자 대관령에 거주하는 고등학생들이 대나무를 쪼개 만든 스키를 메고 산 정상까지 걸어 올라가 기슭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수준이었고 그들 중에 소질이 있는 학생이 올림픽에 나갈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는 동·하계 구분 없이 메달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고 “올림픽은 참가에 의의가 있다”는 표어를 위안으로  삼았습니다.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의 백미(白眉)는 남북한선수단이 한반도기를 함께 들고 입장을 한 것입니다. 전세계의 이목이 평창으로 쏠린 것은 당연했습니다. 또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팀이 단일팀을 이뤄 출전한 것 역시 상징성이 컸습니다. 비록 성적이 좋지는 못했지만.

그런데 이번 평창올림픽은 북한의 예술단, 응원단, 태권도 시범단의 방남(訪南)으로 대회열기를 더 했지만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특사의 전격 등장으로 대회의 초점이 흐려진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분단국의 비애를 다시 한 번 절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다 평창올림픽이 아니라 ‘평양올림픽’이라는 야당 일부의 억지비판과 보수단체의 격렬한 시위 또한 낯을 뜨겁게 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참 웃깁니다. 미국의 마이크 펜스부통령, 그리고 일본 아베총리의 행적 말입니다. 잔치 집에 축하객으로 와서  심통을 부리는 이해 못할 행동은 대국의 정치지도자라기엔 옹졸함의 극치였습니다. 재를 뿌려 훼방을 놓고 싶은 의도가 눈에 보였습니다.

스포츠는 비정치적인 것이라 해도 정치의 영향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정치가 스포츠를 지배하려하지만 스포츠는 정치를 초월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번 올림픽에서 여실히 보고 있습니다.  

북한의 참가에 크게 기여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개회식에서 남북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하는 모습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감동했다”며 “전 세계가 그랬을 것이다”라고 소감을 피력했습니다. 백번 옳은 말씀입니다.

김영회(언론인)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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