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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돌 "북으로 날아가서 다시 남으로 온 '홀로아리랑'···노래가 먼저 통일됐네요""북한 예술단 공연서 내 노래 연주돼 흐뭇...통일 작은 밑거름 되어 뿌듯"
작곡가 겸 가수 한돌이 지난해 6월 서울 용산구 서울문화사 별관에서 열린 '가곡의 탄생' 북 콘서트 겸 제6회 해설이 있는 가곡 음악회에 참석해 활짝 웃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제 노래 ‘홀로아리랑’이 북쪽으로 날아가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노래가 사람보다 먼저 통일을 이뤄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젠 하루빨리 '사람 통일'의 날이 와야죠.”

작곡가 겸 가수 한돌이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린 북한 예술단 공연에서 그가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인 ‘홀로아리랑’이 무대에 오른 소감을 밝혔다.

한돌은 9일 여성경제신문과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15년 만에 남한을 찾은 북한 예술단이 제 노래를 선곡해서 기쁘다"며 "남북화해에 작은 밑거름이 되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북한 예술단은 전날인 8일 오후 1시간 35분 동안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이선희의 'J에게', 왁스의 '여정',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혜은이의 '당신은 모르실거야',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등 한국노래 11곡을 선보였는데 단연 눈길을 끈 곡이 ‘홀로아리랑’이다. 북한 예술단은 11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한번 더 공연을 한다.

북한의 가수들이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라고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본 900여명의 관객은 모두 가슴 뭉클했다.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이 8일 오후 강원도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에서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성공 기원 특별공연을 하고 있다. 이날 공연에는 한돌의 '홀로아리랑' 등 한국노래 11곡이 연주됐다.

이정식 서울문화사 사장이 쓴 ‘가곡의 탄생’에는 이 노래를 얽힌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자세히 나와있다.

‘홀로아리랑’이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은 1989년 10월이다. 한돌이 발표한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라는 음반에 수록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돌을 비롯해 오랫동안 여러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다.

2005년 조용필의 역사적인 평양 공연이 있었다. 조용필은 좀처럼 남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 가수인데 이날 ‘홀로아리랑’을 불렀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북측이 이 노래를 꼭 넣어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한다. 한돌은 궁금했다. 이 노래가 도대체 어떻게 북한에 ‘침투’(북한에서는 히트를 이렇게 표현한다고 했다)했을까.

작곡가 겸 가수 한돌이 지난해 6월 서울 용산구 서울문화사 별관에서 열린 '가곡의 탄생' 북 콘서트 겸 제6회 해설이 있는 가곡 음악회에 참석해 활짝 웃고 있다./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북한에서 '홀로아리랑'이 얼마나 유명한 노래인지 한돌의 실제 경험담이 역시 '가곡의 탄생'에 잘 설명돼 있다.

<조용필이 평양에 다녀 온 후인 2009년 9월 한돌이 사할린에 간 적이 있었다. 지인 한 사람과 홈스크 항으로 바다 구경을 나갔다가 우연히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는 북한에서 온 두 사람과 한잔하게 되었다. 
취흥이 오르자 북에서 온 사람 중 하나가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뜻밖에도 '홀로아리랑'을 부르는 것이었다. 한돌과 함께 있던 지인이 노래를 따라 부르자 노래하던 사람이 하던 노래를 멈추고 물었다. 
"아니, 이 노래를 아시오?" 
"그 노래를 이분이 만드셨지요"하고 지인이 한돌을 가리키자, 그들은 그 말이 농인 줄 알고는, "아아, 그렇다면 홀로아리랑이 남조선 사회에도 깊이 침투했군요"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지인이 다시 말했다.
"아, 그게 아니라 이분이 그 노래를 만들었다니까요."
"아, 글쎄 농담 좀 그만 하시라요. 그 노래는 우리 조국의 노랩네다."
"그럼 그 노래 만든 사람이 누굽니까?" 하고 지인이 묻자,
"그거이 구전으로 내려오는 우리 조국의 민요입네다. 그 유명한 남조선 가수 조용필이도 평양에 와서 이 노래를 불렀드랬시오."
홀로아리랑은 어느새 북조선의 구전민요가 되어 있었다.
한돌은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나는 기분이 좋았다. 독도의 마음이 북녘 땅에 전해졌다고 생각해서이다. 독도의 소원대로 내 나라가 하나가 된다면 구전민요가 된들 어떠하리.">

한돌이 1989년 10월에 발표한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라는 음반에 '홀로아리랑'이 실려 있다.

결국 '홀로아리랑'을 만든 주인공이라는 타이틀이 한돌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내 나라가 하나가 되는데 도움이 된다면 구전민요가 되어도 좋단다. 그만큼 그는 열려있는 사람이다.

한돌은 "이번 강릉 공연이 끊어졌던 남북 문화교류의 다리를 10여년 만에 다시 연결한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며 "제 노래가 앞으로 더 많이 불려지는 것은 놀랍고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한돌은 함경도 피난민의 아들이다. 그의 부모는 북한에 어린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남겨둔 채 6·25때 거제도로 피난을 왔다가 영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한돌은 부모가 남쪽으로 피난 나와 낳은 아들이다. 평생 부모의 한을 보며 자랐다. 북한에 있는 가족을 보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뜻밖의 대답을 내놨다.

“당연히 하고 싶었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 ‘통일이 되어 북에 있는 네 두형과 누나를 만나거든 내가 버린 게 아니라는 것을 꼭 말해다오’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저 보다 훨씬 나이 많으신 분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차마 신청할 수 없더라고요. 왠지 ‘새치기’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어요. 제가 마지막 전후 세대인데 제 앞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겠어요. 결국 적십자사 앞까지 갔다가 발길을 돌렸어요.”

'개똥벌레' '유리벽' '터' '조율' '여울목' 같은 수많은 히트곡을 쓴 한돌의 마음 씀씀이는 이처럼 깊었다. 한돌은 '홀로아리랑'의 후속곡으로 만든 '독도의 사랑'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홀로아리랑’이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는 그날을 소망하며 만든 노래라면 ‘독도의 사랑’은 통일 이후를 상상하며 만든 곡입니다. 우리가 독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독도가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죠. 독도는 우리나라의 수호신입니다. '독도의 사랑’은 남북이 하나가 되어 지난날의 아픈 상처를 씻어버리고 꿈을 안고 큰 바다도 나아가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미래지향적인 노래죠. 빨리 통일이 되어 ‘홀로아리랑’은 그만 부르고 ‘독도의 사랑’을 더 많이 부르는게 소원입니다.”

민병무 기자  joshuami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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