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7.12.13 수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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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는 밥솥·회사원은 프린터 쾅쾅!···스트레스 산산조각 낸다"오늘은 3만원어치 부술게요" 야구배트로 그릇 등 깨뜨리며 분노 해소하는 이색카페 인기
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서울레이지룸에서 한 직장인이 야구방망이로 프린터를 부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서울레이지룸에서 한 직장인이 야구방망이로 프린터를 부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4일 오후 1시.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둡고 음침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매장 안은 밝고 깔끔했다. 하얀색 벽으로 꾸며진 내부 사이로 차분한 클래식이 흘러나왔고 여느 이색카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찬찬히 주변을 살펴보니 컴퓨터 모니터를 인테리어 삼아 차곡차곡 쌓아 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것을 부숴도 되는 건가’ 하는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가지런히 정돈된 안전모와 장화 등도 일반 카페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이색 장면으로 꼽혔다.

고요한 것도 잠시. "쨍그랑" 접시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방음벽을 뚫고 “으아아악~” 요란한 괴성이 두 귀를 때렸다. 야구방망이와 망치를 휘둘러 계속해서 무엇인가 부수고 깨뜨리는 소리가 반복됐다. 악 지르는 소리까지 더해져 긴장감이 팽팽했다. 의연하게 대기하던 손님들도 순서에 맞춰 방에만 들어가면 똑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이곳이 과연 ‘그곳’이 맞구나 싶었다.

스트레스를 합법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 국내에도 생겨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앞에 문을 연 '서울레이지룸(Seoul Rage Room)'에서는 마음껏 소리를 지르는 것은 물론 원하는 물건을 선택적으로 파괴하며 마음에 쌓인 스트레스를 ‘산산조각’ 낼 수 있다.

◆ 2만~18만원까지 가격 다양...3단계 '빡침'은 접시 20개·가전제품 1개로 구성

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서울레이지룸에서 한 직장인이 야구방망이로 접시를 부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서울레이지룸은 이른바 성인들의 ‘스트레스 해소방’이다.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면 지정된 장소에서 맘껏 소리를 지르거나 그릇 등을 깨부수며 내재된 스트레스와 분노를 발산할 수 있다. 올해 4월 영업을 시작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 수능이 끝난 뒤에는 수험생도 부쩍 자주 찾는다. 

이곳 서비스는 ‘짜증(Vandalism)’ ‘왕짜증(Destruction)’ ‘빡침(demolition)’ ‘개빡침(Annihilation)’ ‘18(Madness)’ 등의 다섯 단계로 이루어져있다. 이용료는 최소 2만원부터 최대 18만원까지 다양하다. 각 단계마다 부술 수 있는 물건의 개수와 시간 등이 차등 지급된다. 가장 인기가 많은 3단계 '빡침'은 20개의 그릇·컵·접시와 함께 가전제품 1개로 구성돼 있다.

높은 단계를 선택할수록 시간과 그릇 수가 늘고 가전제품 등 부술 수 있는 물품의 종류도 풍성해진다. 별도의 추가 요금을 지불하면 각 단계에 해당하는 옵션 외에도 가전제품 하나를 더 선택할 수 있다. 소액의 청소비를 지급할 경우 손님이 원하는 ‘소품’을 가지고 입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 안전모·장화 등 필수장비 반드시 착용...10~15분 스트레스 굿바이

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서울레이지룸에서 한 직장인이 그릇를 던지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서울레이지룸에서 한 직장인이 물컵을 던지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원은혜(32·여) 서울레이지룸 공동대표는 “직장생활을 할 때부터 성인들이 스트레스와 분노를 풀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직접 문을 열게 됐다”라며 “국내에서는 다소 낯선 장소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물건을 부수기 전 서약서 서명은 필수다. 물건을 부수다 보면 파편에 다치거나 물건을 부수기 위해 휘두른 방망이에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서약서에는 프로그램과 관련해 발생 가능한 모든 사고 및 위험에 대한 완전한 책임을 본인 스스로 부담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단 미성년자, 임산부, 노약자 등은 안전 위험에 노출될 것을 우려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안전장비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안전모와 마스크, 장갑, 청력보호 귀마개, 그리고 장화 등의 착용이 원칙이다. 그러나 귀마개의 경우 그릇을 깨부수는 소리를 들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고객의 의사에 따라 지급하고 있다.

이 모든 절차가 끝나면 분리된 하나의 공간을 안내 받는다. 준비된 빠른 비트의 전투적인 BGM이 흐르고 조용히 문이 닫힌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쇠망치, 야구배트 등의 도구를 통해 제공된 물건을 깨부수며 마음껏 고성을 지를 수 있다. 10~15분가량의 주어진 시간 동안에는 이를 말리거나 제지하는 사람은 없다.

◆ "부장 얼굴 떠올리며 깨부수고 던지고...재방문 의사 100%다"

4일 서울레이지룸을 방문한 한 직장인이 망치를 들고 접시를 깨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4일 서울레이지룸을 방문한 한 직장인이 야구방망이로 타이어를 내리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대기실에서 만난 직장인 최지민(29·여)씨는 “회사에서 부당함과 강요가 도를 넘기 시작했다. 사표를 내려다가 월차를 쓰고 이곳을 찾았다”며 “부장 얼굴 떠올리며 야구 방망이로 접시를 깨부쉈다. 재방문 의사 100%다”라고 말했다.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30대·여)씨도 “서비스업을 하다 보니 모든 게 스트레스다. 주말도 없이 일을 하다 보니 분노가 극에 달했다. 내 자신이 망가지는 자괴감을 느껴 찾게 됐다”며 “보이는 대로 깨부수고 나니 심리치료를 받은 듯 너무너무 후련해졌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이곳은 하루 평균 10~15팀이 방문하는데 대부분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찾는다. 오픈한 후 6개월간 4000~5000명이 이곳을 다녀갔을 만큼 스트레스 해소의 메카로 통하고 있다.

원 대표는 “하루는 청소하러 방에 들어갔더니 고무 마네킹 머리가 찢어져 몸통과 분리돼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한국인 마음에 쌓인 스트레스가 이렇게 많구나 생각했다”고 웃어보였다.

그는 이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주부들은 보통 밥솥 등과 같은 가전제품을 부수는 것을 선호하고 회사원들은 주로 프린터 등을 찾는다”며 “이색데이트 커플코스로 유명했지만 요즘에는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오거나 아버지가 딸을 데리고 오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 폭력조장 비판 목소리 있지만 '재미있는 공간' 입소문 우세

서울레이지룸의 서비스는 ‘짜증(Vandalism)’ ‘왕짜증(Destruction)’ ‘빡침(demolition)’ ‘개빡침(Annihilation)’ ‘18(Madness)’ 등의 다섯 단계로 이루어져있다. 가장 인기가 많은 3단계 '빡침' 세트는 20개의 접시와 함께 가전제품 1개로 구성되어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4일 서울 홍대에 위치한 서울레이지룸에서는 돈을 지불한 만큼 접시를 깨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누구나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할 만큼 극도의 분노 상황과 마주할 때가 있다. 하지만 차오르는 분노를 즉각적으로 표출하고 해소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부분은 학교 혹은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떠안은 채 살아간다.

특히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드물다. 그동안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처방전은 숙면과 먹방 정도에 불과했다. ‘참는게 미덕’ 이라는 한국 특유의 문화 탓에 속으로 삭이며 넘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30대 ‘화병’ 환자는 최근 6년 사이 5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층의 화병 원인은 취업·결혼·직장생활 등으로 분석됐다.

이런 가운데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주는 핫플레이스 서울레이지룸이 각광 받으며 긍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호적인 평가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일각에서는 폭력을 조장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깨부수는 폭력적인 행동으로 인해 얻게 되는 카타르시스가 스트레스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주진 못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직장인 김미정(31·여)씨는 “아무리 주의사항을 듣고 이용한다고 해도 물건을 부수고 흥분을 하다보면 스스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될 것 같다”고 염려했다.

또 다른 직장인 김지윤(28)씨도 “한 번 물건을 깨부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나면, 수면이나 휴식 등과 같은 안정적인 해소방법으로는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서울레이지룸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안전장비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안전모와 마스크, 장갑, 청력보호 귀마개, 그리고 장화 등의 착용이 원칙이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4일 서울레이지룸을 찾은 외국인 커플이 서비스를 이용하기 전 이용 서약서를 읽어보고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이에 원 대표는 “폭력을 조장한다는 오해를 덜기 위해 이곳 분위기 자체를 밝게 꾸몄다. 고객들이 서비스를 이용하기 전 안전과 관련된 주의사항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오락실에서 망치를 이용해 두더지를 때리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두더지 게임의 성인 버전 정도로 생각해 달라. 사고에 대비해 각방에 설치된 CCTV를 항상 주시하며 모니터링 하고 있다”며 “위험하다는 인식 보다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재미있는 공간'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2017년을 마무리하는 12월, 다가오는 2018년 새해를 위해 올 한 해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모조리 날려보자.

임유정 기자  wiselim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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