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7.12.13 수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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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변했으면···" 망치소리까지 따듯하게 담은 '문래동의 4년' 찰칵송기연 사진작가 "기술과 예술이 공존하는 곳...최대한 더디고 느리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최근 문래살이 4년의 기록을 담은 사진집 ‘문래, 도시를 빚다’을 출간한 송기연 사진작가는 미래의 문래동 모습 역시 지금처럼 훼손되지 않기를 소원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최근 문래살이 4년의 기록을 담은 사진집 ‘문래, 도시를 빚다’를 출간한 송기연 작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배경이 필요 없고 스튜디오도 필요 없는 사람들의 삶이 묻어있는 공간과 거기에 조화롭게 있는 그들의 표정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요즘 문래동 굉장히 핫하죠. 그래서 더디고 느리게 천천히 변했으면 좋겠어요.”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를 나와 200m 쯤 걷다 보면 망치와 못 모양의 조형물이 서있고 그림 벽화 등이 어우러진 좁은 골목이 나온다. 여기가 바로 철공소와 예술가의 '묘한 동거'가 현재진행중인 문래동창작예술촌이다. 용접공이 토해 내는 불꽃과 근로자의 쇠 깎는 소리를 배경으로 300여명의 예술인이 100여개의 작업실에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이곳 문래살이 4년의 기록을 담은 사진집 ‘문래, 도시를 빚다’를 출간한 송기연 사진작가는 “몇 년 사이 문래동은 도시재생사업이다 뭐다해서 아주 분주히 변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철공소 등이 있어 오히려 방어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여전히 시간이 늦게 움직이는 지역인 셈이다.

사진집 출간을 기념해 사진전 ‘라이트 문래(Light Mullae)’가 열리고 있는 문래동창작예술촌 인근 대안예술공간 ‘이포’에서 그를 만났다. 사진전은 30일까지 열린다.

송 작가는 기존의 문래동 관련 기사를 보면 대부분 문래동의 진짜 모습을 담지 못해 아쉽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그래피티 벽화나 예쁜 카페, 입소문 난 맛집 등으로 밖에는 소개가 되지 않는다는 것.

그는 문래동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반세기 동안 도시 개발의 광풍에 휩쓸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지켜진 것에 놀랐고 그것이 미래에도 훼손되지 않기를 소원했다. 반가운 소식도 있다. 최근 젊은 용접공이 몰려오고 젊은 예술가도 둥지를 틀어 허름한 간판마저 작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현재 문래동 골목엔 다양한 연령대 사람이 한데 섞여 살고 있다. 먼저 광복 이후 영단주택(營團住宅·일제강점기 때 한반도 병참기지화를 위해 건설한 군수산업체에 근무하는 노동자의 주택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급된 주택)으로 집을 구해 들어온 ‘1세대’인 소상인과 방직공장 노동자, 60~70년대 들어와 거주지를 작은 공장으로 개조한 ‘2세대’ 기계금속 노동자, 2000년대부터는 빈 공장에 작업실을 구해 예술세계를 펼친 ‘3세대’ 예술인이 모여들었다. 요즘에는 카페, 음식점 등 상업적인 이유로 문래동을 선택한 이들이 모여들고 있다.

갤러리 '이포' 한쪽 벽면에는 송기연 작가가 찍은 문래동의 현재와 과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빼곡하다. 이 사진 속 사람들은 도시의 성장이라는 광풍 속에서 성장통을 겪고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자신만의 모습으로 견뎌내고 인내하는 듯 보였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그가 이곳에 정착한 것은 4년전. 직장생활 18년의 무료함을 떨치기 위해 인도여행을 다녀온 직후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이곳에 작업실을 꾸렸다. 문래동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지금의 남편은 이 프로젝트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지지자가 돼 주었다. 

이색적인 공간이라는 소문 때문인지 많은 미디어들이 다녀가는 바람에 오히려 더디게 천천히 작업에 몰두했다. 피사체를 대하는 앵글 자체가 차가운 이미지이기 때문에 불편함을 최대한 덜어내려고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처음부터 사람이라는 공간과 그들의 자연스러운 표정에 중점을 뒀어요. 이곳에 작업실을 얻어 살면서 마실을 나가면서도 풍경을 많이 담아야 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러다가 서로 마주치면서 인사도 나누고 소주도 한잔 기울이면서 이 도시의 내밀한 변화를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실제 그의 사진집을 보면 문래동의 골목길, 철강공장, 일제식 영단주택을 돌며 이곳에 사는 주민과 노동자의 표정을 근접 촬영한 것이 많았다. 또 갤러리 안에 걸린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쇠퇴했지만 과거 번성기를 누렸을 문래동의 사라진 것들을 추억하게 했다.

사진 속 문래동 6가에 마지막 남은 이발소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장소. 하루하루 찾아오는 손님이 줄고 있어 근심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 짓는 퇴근 무렵 철공소 늙은 노동자는 기타를 매고 젊은 날의 꿈을 좇아 줄을 연신 튕긴다.

또 주변 곳곳에 생겨나는 편의점 때문에 손님이 줄어 아침 저녁으로 종이박스를 모아 고물상에 파는 태양슈퍼마켓 할머니는 사진 셔터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스듬히 누워 반갑게 손님을 반겨준다.

최근 문래살이 4년의 기록을 담은 사진집 ‘문래, 도시를 빚다’을 출간한 송기연 사진작가는 미래의 문래동 모습 역시 지금처럼 훼손되지 않기를 소원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일상을 담고 싶었어요. 힘들게 작업을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조심스럽게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고 그렇게 친해지면서 이색적인 스토리를 찾고 싶었어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배경이 필요 없고 스튜디오가 필요 없는 그들의 삶이 묻어있는 공간과 거기에 조화롭게 있는 사람의 표정이다.

“노동자의 삶의 애환이 깃든 표정 이런 건 좀 어렵잖아요. 최대한 자연스럽고 삶을 마주하는 그들의 유쾌한 표정이나 진지함이 그대로 묻어났으면 했어요. 그들이 모습이 남루할지언정 행복하고 여유 있는 모습을 봐주길 바라요.”

최근 문래동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부분에 대해 묻자 그는 자신도 여기에 사는 평범한 주민이자 그 이전에는 이방인이었다면서 문래동 창작촌은 기술과 예술이 공존하는 곳으로 임대료를 내고 공간에 머물면서 예술을 팔고 기술을 파는 것은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최근 문래동 철강 골목의 밤은 점점 시끄러워지고 있어요. 주말 밤이 되면 몇 곳은 홍대나 이태원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지 않죠. 그런 변화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 누구도 쉽사리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죠. 결국 낡은 건물은 사라질테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듯 사람 또한 끊임없이 바뀌고 업종도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변할테니까요. 어떤 변화도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어요. 그저 천천히 더디게 변했으면 해요.”

갤러리 한쪽 벽면에는 문래동의 현재와 과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시의 성장이라는 광풍 속에서 성장통을 겪고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자신만의 모습으로 견뎌내고 인내하는 듯 보였다.

정창규 기자  kyoo78@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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