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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회 칼럼]트럼프의 행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세계 제일의 지도자, 미국 대통령이 다녀갔습니다.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잘 지나갔습니다. 그가 오기 전 많은 사람들이 조바심을  했습니다. 워낙 예측 불허로 마구 거친 말을 내 뱉는 인물이라서 또 무슨 험한 말을 쏟아낼까, 우려를 했던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당국자들만이 아니라 국민들도 똑같이 염려했던 일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가 별 탈 없이 웃는 낯으로 한국을 떠나 다음 방문국인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서야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도널드 존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야기입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의 한국방문은 그 수를 세기도 쉽지 않을 만큼 계속돼 왔고 최고의 예우로 영접하는 국빈방문도 이번이 일곱 번 째로 1992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 방한 이후 25년만이니 그 의미가 큰 것도 사실입니다. 미국은 6·25 때 북한의 남침에서 우리나라를 구해 준 변함없는 혈맹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대통령의 첫 번째 국빈방문은 1960년 6월 19일 드와이트·D·아이젠하워였습니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직후라서 국내 정세가 한창 어수선할 때였지만 김포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연도와 서울시내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환영인파로 뒤덮였습니다.

서울 시청에는 아이젠하워의 대형 초상화가 내 걸렸고 곳곳에 환영아치가 세워졌으며 기념우표에 기념담배까지 발매하는 등 그야말로 축제분위기 였습니다.

당시 서울시의 인구가 248만 명이었는데 절반에 가까운 100만 명이 쏟아져 나왔으니 시내는 온통 문자 그대로 인산인해였습니다. 시민들 중에는 “미국 대통령 얼굴 좀 보자”고 호기심으로 나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첫 번째 외국 대통령의 방문인데다 텔레비전도 없을 때였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시민들은 국보 1호인 남대문 석축은 물론 심지어 기와 지붕위에까지 올라가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대통령이 탄 차량이 서울역 앞을 지나 태평로로 향할 즈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던 군중들이 차량을 에워싸 버려 한 순간 혼란이 벌어졌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긴박한 상황에 경찰과 경호원들이 당황했지만 다행히 예정된 코스를 바꿔 간신히 샛길로 빠져 정동의 미국대사관 관저로 피해 겨우 위기를 넘겼습니다. 큰일 날 뻔 했습니다.(조선일보 1960년 6월 20일)

그런 거국적 환영은 6년 뒤에 또 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인 1966년 10월 31일 린든·B·존슨 대통령의 국빈방문이었습니다. 존슨이 도착하던 날 박 대통령 내외는 3부요인을 비롯한 정부의 1급 이상 전 공직자들을 대동하고 직접 김포공항에 나가 국빈을 맞았습니다. 파격적인 예우였습니다. 이날 거리에 나온 시민은 무려 200만 명이나 됐는데 거리에 뿌려진 색종이 꽃가루만 5만 부대, 시민들이 흔들었던 태국기와 성조기 숫자만 40만개였습니다.

방한 둘째 날 존슨 대통령 일행이 주한 미군부대를 방문할 때는 특별열차를 편성하는 바람에 경부선 등 31개 열차의 출발역을 서울역에서 영등포역, 금곡역으로 바꿨고 열차 안에서는 여대생 15명이 ‘아리랑 드레스’를 입고 접대를 했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일정을 마치고 떠나면서 “감동적인 환영이었다”고 크게 만족해했다고 합니다.(매일경제 1966년 10월 31일)

과거 미국 대통령들에 대한 대규모 환영행사는 경제 원조를 간청하는 전략적 심리작전이기도 했지만 인권을 유린하는 군사독재자라는 미국 조야의 비판을 회유하기 위해 벌인 쇼 성격이 짙었습니다. 그러나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예산절감 등을 들어 국빈 초청 자제와 의전절차 간소화를 지시함으로써 빌 클린턴 대통령 방한을 계기로 점차 호화행사는 지양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미국 대통령들이 반세기 전 거국적 환영을 받았던데 비하면 이번 트럼프의 방한은 달라도 한참 달랐습니다. 우선 과거처럼 시민이나 학생들 동원도 없었을 뿐 더러 방한 첫 날부터 서울 도심에서 반미시위와 환영시위가 동시에 열릴 만큼 사회가 자유로워 졌던 것입니다. 트럼프가 먼저 방문한 일본의 경우 “국빈 위협은 안 된다”며 철통같이 반미시위를 막은 것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도착 다음 날 트럼프의 국회 연설은 전혀 예상 밖이었습니다. 사실 전문가들은 ‘군사옵션’이니 ‘화염’이니 섬뜩한 표현을 망설임 없이 마구 쏟아 내는 그동안 언행으로 보아 또 무슨 말로 북한을 자극할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예측은 빗나갔습니다. 35분 동안의 연설에 24분을 북한 관련 발언을 했지만 체제와 인권문제를 비판하면서도 “미국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시험하려고도 하지 말라”는 그 이상의 과격한 발언은 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는 한국을 “1960년에 비해 350배의 경제발전으로 기적을 일군 나라다”라고 입에 침이 마를 만큼 극찬하면서 우려했던 FTA재협상문제는 꺼내지도 않았고 여자 골프선수들을 칭찬하는 아주 유연한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를 수행하고 온 미국기자는 “많이 대통령다워졌다”고 평했다고 합니다.

트럼프의 이번 일본, 한국, 중국 3개국 방문은 그 옛날 진시황의 제후국 방문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아베 일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딸에게까지 과잉의전으로 환심을 사려해 눈총을 받았는가 하면 중국은 자금성을 통째로 비워 특별히 예우하는 ‘황제급 환대’로 트럼프를 기쁘게 했습니다.

얼마나 눈에 거슬렸으면 워싱턴 포스트는 아베 총리를 가리켜 “트럼프의 충실한 조수”라고 꼬집고 “일본은 전략적 노예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 같다”고 낯 뜨거운 보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한국은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과잉의전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실리를 챙겼습니다. 중국에서는 280조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경제협력약속을 받아냈고 한국에서도 83조원의 무기구매 확약을, 일본에서도 무역 역조 개선 약속을 얻어 냈으니 이번 아시아 순방은 크게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방문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잘한 것은 무엇이고 잘 못한 것은 무엇인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지, 돌아 봐야 합니다.

국제관계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합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 친구가 되는 게 국제 사회의 현실입니다. 그러기에 열린 눈으로 앞을 내다보고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는 것이 잘 하는 외교술입니다. 그러지 않고 눈앞의 이해에 일희일비하는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급변하는 미래세계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한국은 이번 트럼프의 방한을 통해 전통적인 한·미동맹을 재확인했고 트럼프의 입을 통해 “코리아 패싱(한국 따돌리기)은 없을 것”이라는 점도 확인한 것이 성과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떻든 잘 지나가 다행입니다.

지금 전국의 산천은 만산홍엽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신비로운 자연의 순환이 놀랍기만 합니다. 곧 낙엽이 지겠지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파란 가을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김영회(언론인)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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