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7.11.24 금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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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회 칼럼] 전라도 1000년
윤장현 광주시장(오른쪽), 이재영 전남지사 권한대행(가운데), 김송일 전북도 행정부지사가 지난 18일 전남 나주 한전KDN 빛가람홀에서 열린 '전라도 천년 D-1년 기념식 및 심포지엄'에서 '천년의 북소리, 새천년을 열다'라는 주제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전남도

―1018년 고려 때부터 이어 온 전라도 정도 1000년의 역사. 그들에게는 남이 갖지 못한 자랑스러운 자부심이 있습니다.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

통칭 ‘호남(湖南)’이라 함은 광주광역시, 전라북도, 전라남도의 3개 광역자치단체를 통틀어 일컫는 명칭입니다.

호남이라는 호칭의 유래는 한반도 최초의 인공저수지로 불리는 김제시 벽골제(碧骨堤)의 남쪽이라는 설, 금강의 옛 이름인 호강(湖江)의 남쪽이라는 설,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소정방이 “중국 후난성(湖南省)의 큰 호수 동정호(洞庭湖) 남쪽지방과 같이 기후가 온화하고 농업이 주업으로 유사한 곳이라 하여 호남지방이라 불렀다는 설 등 여러 설이 있으나 어느 것이 확실한지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전라도는 애초 고려 현종(顯宗) 9년인 1018년에 강남도(전주와 그 인근)와 해양도(나주와 그 인근)를 합해 만든 전라주도(全羅州道)에서 비롯되는데 전라도(全羅道)라는 어원은 고려시대 성종이 설치한 12목 중 전주목(全州牧)과 나주목(羅州牧)의 첫 글자를 딴 데서 유래합니다. 

전라도라는 지역호칭은 올해로 무려 999년을 이어 와 조선 팔도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인데 그 다음으로는 경상도(1314년), 충청도(1356), 강원도(1395), 평안도(1413), 경기도(1414), 황해도(1417), 함경도(1509) 순입니다.

전라도가 오늘처럼 남북도로 나뉜 것은 1896년 고종(高宗)때 전국을 13개 도로 개편하면서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로 분리한 뒤부터고 1986년 광주시가 직할시가 되면서 전라남도에서 독립해 1995년 광역시로 승격, 3개 시·도로 늘어났습니다. 제주도는 원래 전라남도 관할이었는데 광복 다음해인 1946년 도(道)로 독립하였습니다.

호남지역에는 두 군데의 넓은 평야가 있습니다. 하나는 한반도 최대의 평야인 전라북도 서부의 호남평야고 다른 하나는 전라남도 서부의 나주평야입니다. 호남평야에는 도시가 발달하여 전주, 익산, 군산시가 있고 호남 동부는 험준한 산지로 노령산맥이 광주 전남권과 전북권을 나누고 있습니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남으로 내려가면 전북의 드넓은 호남평야가 이어지다가 큰 산이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노령산맥이고 이 산 터널을 지나면 바로 전라남도가 나타납니다.   

지금 광주, 전남, 전북 등 호남 3개 광역자치단체는 2018년 ‘전라도 정도(定道) 1000년’을 앞두고 한창 들떠있다고 합니다. 고려 현종 9년, 서기 1018년 ‘전라도’란 이름이 만들어진 지 꼭 1000년이 되는 뜻깊은 해가 바로 내년이라서 전라도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한껏 펼쳐 보이려는 호남인들의 자부심이 부풀어 있는 것입니다.

광주, 전남, 전북 3개 시·도는 이미 호남권 정책협의회를 구성하고 7개 분야 30개 세부사업으로 전라도 1000년 기념사업을 확정해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먼저 전라도의 이미지 개선사업에 곁들여 문화 학술 환경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그동안 산업화 과정에서 낙후된 지역사업에 박차를 가한다는 등 전라도의 새로운 상을 제고한다는 것입니다.

한 관계자는 “이 프로젝트는 전라도 1000년을 맞아 3개 시도가 함께 손잡고 역사를 재조명, 재정립하고 지역 정체성 회복과 자긍심 고취 등에 나서는 것이다”라며 “화합과 상생을 통해 전라도가 새롭게 도약하고 미래를 열어가는 기틀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전라도라고 하면 지역감정의 메카로 인식될 만큼 국민들의 뇌리에 부정적으로 각인돼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한  잘못된 인식은 고려시대 이후 역사적으로 잠재해왔지만 유독 지역감정의 본고장으로 낙인찍힌 것은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제3공화국에 들어 와 두드러졌습니다.

영호남의 지역대결이 노골화된 것은 1971년 4월 27일 치러진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와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와의 7대 대통령 선거였습니다. 이때 경상도 유세에서 연사들은 이구동성 입을 모아 “지금 전라도는 김대중을 대통령에 당선시키려고 똘똘 뭉쳐있다”며 “우리 경상도도 뭉쳐야 할 것 아니냐”고 운집한 청중들을 향해 지역감정에 불을 지릅니다. 

당시 대구를 비롯한 경상도 지역에는 “전라도 사람들이여, 단결하라!”는 삐라가 뿌려지고 김대중 후보 벽보 밑에 누군가 “호남 후보에 몰표를 주자”는 격문을 써 붙여 경상도 도민들을 자극했습니다. 뒤에 알려진 일이지만 ‘전라도 단결’ 삐라와 격문은 김대중 후보의 기세가 심상치 않자 경상도표를 결집시키려고 한 공화당의 자작극, 곧 중앙정보부의 작품이었습니다. 흑색선전이었던 것입니다.

선거 결과는 박정희 후보가 총 634만2828표(53.2%)를 얻어 539만5900표(45,2%)를 얻은 김대중 후보를 94만6928표차로 누르고 가까스로 당선되었습니다. 김대중 후보는 서울에서 압승하고 경기도에서도 이겼지만 부산, 경남·북에서만 150만표차로 패함으로써 분루(噴淚)를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산 경남·북의 인구는 광주, 전라남·북도의 두 배가 넘습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선거에 의하지 않은 윤보선·최규하 두 사람을 빼놓고 대통령을 역임한 이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등 경상도 출신이 8명이나 되지만 전라도 출신은 오직 한사람 김대중 밖에 없습니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 1998년까지 50년 동안 전라도 출신으로 역대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전라도 출신이라는 그것이 ‘업보’가 되어 유능한 인재들이 각종 공직에서 차별을 받았던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지역감정하면 무조건 전라도를 떠 올립니다. 선거 때면 지역이 결집하는 건 경상도나 전라도나 다르지 않지만 전라도만을 지역감정의 메카처럼 생각 하는 게 일반적 인식입니다.  

몇 해 전 입적(入寂)한 ‘무소유’의 법정(法頂) 스님은 생전에 쓴 글에서 “전라도 사람들의 지역감정은 경상도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다. 경상도 사람들의 지역감정은 패자(霸者)로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지역감정이지만 전라도 사람들의 지역감정은 피해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음미해 볼만한 이론입니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말했습니다. 글인 즉 슨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라는 뜻이니 당시 파죽지세로 몰려 온 왜적들을 목숨을 바쳐 싸운 백성들이 대부분 호남사람들이었던데 대한 치하였던 것입니다. 전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1894년 2월 전북 고부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사건,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등 그때마다 불의에 저항해 온 전라도 사람들의 자부심은 바로 그와 같은 역사적 사건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전라도에는 타 지역과 다른 그들만의 정신이 있습니다. 바로 ‘호남정신’인 것이지요.

경상도와 전라도는 대한민국의 양대 축입니다. 경상도가 없는 대한민국이 있을 수 없고 전라도가 없는 대한민국도 있을 수 없습니다. 아니, 충청도 강원도가 없는 대한민국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도대체 손바닥 만 한 땅덩어리에서 크면 얼마나 크며 작으면 얼마나 작겠습니까. 크고 작은 것을 따지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입니다.

2018년 전라도 정도1000년은 전라도만의 축제가 아닙니다. 전국 각 시도, 모든 국민들이 함께 축하하고 박수치는  축제가 된다면 그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그것을 생각합니다.

 

 

 

 

 

 

 

 

 

 

 

김영회(언론인)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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