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행복과 고통을 나눌줄 아는 나라
[칼럼]행복과 고통을 나눌줄 아는 나라
  • 김형배 논설주간
  • 승인 2014.12.2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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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분단, 그리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고 한국인은 절망에 빠졌다. 당시 민족 앞에는 그나마 남은 길이 종족 보전 외에는 보이지 않았을 터였다. 세계 최빈국의 절대 빈곤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이다. 그 때 온 국민을 하나로 묶은 것은 잘 살아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꾸려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뿐이었다. 모두들 열심히 노력한 끝에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세계는 격찬했다. 인류 역사상 드문 민족적 성취였다. 그 논리는 일단 경제성장부터 해야 나눌 것도 있으리
라는 순진한 생각에 바탕을 두었다.

국가가 강력한 지도력을 갖고 나라경제를 재편해 시장을 재벌 중심으로 꾸린 것이었다.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거대한 선단식 대기업군, 즉 재벌체제가 효율적인 것처럼 포장되었고 이에 따라 재벌 육성에 국력은 집중되었다. 오로지 국부 축적과 경제 성장을 위해 노동자들의 권익은 심대한 제한을 받고 민주주의와 인권마저 무시되었으나 많은 이들은 행복한 미래를 떠올리고 ‘성장 후 적절한 분배’ 약속을 믿으며 기꺼이 참았다. 간혹 재벌 중심 경제 운용의 구조적 부작용에 대해 회의감도 일었으나 정부는 그 결실이 곧 나타날 듯이 실적을 대대적으로 선전해 이들의 불만을 누그려 뜨렸다.

그러나 세기 말 재벌 중심의 특권 경제는 그 구조적 취약성으로 인해 나라경제 전체에 파멸적 위기를 안기고 말았다. 재벌들의 돈놀이를 위한 무분별한 외환 인출로 나라 곳간이 동이 나버린 것이다. 급기야 세계통화기금(IMF)의 긴급 구제금융을 받게 되면서 국가가 결딴 나고 말았다.

멀쩡한 가장들이 어느날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어 거리로 내몰리고 그 자리는 듣도 보도 못한 ‘비정규
직’들로 채워졌다. 수많은 알짜 기업들은 외국 투기자본의 먹이감으로 팔려나갔고 나라 경제는 ‘사람보다 돈과 효율이 우선인’ 신자유주의 체제로 재편되었다. 내수가 무너진 가운데 가계 부채는 산더미처럼 늘어가 가정은 파탄에 이르고 직장에는 기업을 살린다는 명분 아래 상시적인 감원과 구조조정 조처가 지금껏 행해지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우리 희망과 정반대로 만들어지는 듯하다. ‘선성장 후분배’의 미래에는 행복해질 것으로 알았던 사람들은 지금 우리 사회의 빗나간 작동 원리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품고 있다. 성장 제일주의의 피로감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오히려 빈익빈 부익부와 사회 양극화는 굳어져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IMF 사태는 무분별한 규제 완화를 저지른 경제관료와 외환인출로 나라 곳간을 턴 재벌들 탓이었으나 그 책임 추궁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고 대신 국민들이 국가의 모든 빚을 짊어져야 했다.

IMF 사태 이후 재벌은 대마불사의 신화를 이어가며 살아남았고, 권력은 시민의 손을 떠나 시장으로 넘어간지 오래다. 세상이 재벌의 손아귀에 들어간 지금 사람
들은 국가에 대한 배신감으로 괴로워한다. 재벌이 성장하는 동안 치렀던 시민권과 노동권 제한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은 채 더 악화일로 이다. 돈이 최고이고 사람보다 우선인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돈만으로는 결코 행복해지지 않는다. 돈이 우선인 사회에서 사람은 더 불행해질 수도 있다. 그뿐인가? 돈이 더 소중한 사회에서는 구성원 안전조차 위협받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그 비극적 현실은 이미 곳곳에서 악마적 실체를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발생했던 대형 안전사고 여러 건이 그 극명한 사례이다. 2월 경주 마리나리조트 지붕 붕괴사고로 대학에 갓 입학한 젊은 목숨 10여명이 유명을 달리한 데 이어 4월엔 세월호가 침몰해 피워보지도 못한 수백의 어린 생명을 비롯한 승객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가을 들어서는 경기도 판교의 한 공연장 주변 지하도 환풍구가 무너져 내려 관람객 열여섯의 생명도 빼앗겼다. 특히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삶의 터인 국가의 존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참사로 정신적 외상을 앓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국민들을 구조를 하지 않은 국가가 과연 존재해야 할 이유와 정당성이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국가는 멀쩡히 살아 있던 승객 수백명 중 단 한사람이라도 구조하는 대신 이들의 죽음을 방치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단순하게 끝날 것 같던 ‘선박침몰 사고’는 이처럼 ‘대량치사 사건’으로 바뀌면서 풀리지 않는 숱한 참사 원인에 얽힌 의혹과 국가 기능부재의 현실을 낳았고 그 앞에서 온 국민은 오열했다. 세월호 참사는 발생부터 대응과 입법과정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언론의 무책임성을 그대로 드러내 희생자 유족과 국민들을 더욱 아프게 했다. 유족의 진상 규명 요구를, 거액 보상금 요구로 몰고 가는 일부 언론의 왜곡보도에 일부 국민들이 동조한 사실은 돈이 최고인 사회의 한 단면이다. 이에 편승한 일부 극우세력의 모욕과 조롱 또한 황금만능주의 풍조에 기생한다. 운이 나빠서 죽음을 당하고서 왜 대통령의 책임을 묻느냐며 나무
라거나, 사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것에 정치와 이념의 올가미를 씌우는 것도 큰 틀에서는 같다.
 

우리 사회의 안전과 행복 지수는 국제사회가 이미 깊이 우려하는 위험한 수준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해마다 한국 사회의 각종 지표들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해 그 개선이 시급함을 촉구해왔다.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구분할 것 없이 높은 해고 용이성, 청소년과 노인 자살률 1위, 위암 발생률 1위, 존속 살해 1위, 교통사고 사망률 상위권, 빈부격차 상위권, 저출산율 1위, 이혼율 1위 등이 한국인이 놓인 현실의 민낯이다. 한국인에게 고통의 끝은 어디인가? 나라는 소득이 지난 반세기 동안 600배로 늘었다고 하는데, 국민들은 왜 아직도 빈곤한가? 이 물음에 우리 공동체는 이제 답을 해야 한다. 올해는 해방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고 고통은 나눌수록 작아진다’고 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해 행복으로 가는 길을 하루빨리 함께 닦아야 한다. 그 해법은 소통이다. 돈만 아는 사회가 이나라 계층과 신분을 넘어서 가족과 가족, 집단과 집단, 국가와 사회간의 소통으로 공감을 이루는 사회를 지금당장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래야 민족에게 밝고 활기찬 희망의 불씨를 지필 수 있다. 해방 70주년인 새해에는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인권이 존중받아 각자 행복을 느낄 수 있고 그 행복을 나눌 줄 아는 사회를 만드는 첫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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