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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장길 칼럼] 깊은 곳에서의 대화
  • 송장길(언론인·수필가)
  • 승인 2017.09.0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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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캘리포니아 버클리 뒷산에 오르면 앤자 호수가 사방 십리에 시퍼런 물을 가득 이고 산 위에 앉아 그윽하고, 좀 더 동쪽으로는 그 보다 15배, 5배나 큰 저수지들이 둘이나 짓푸르다. 인근의 차봇 호수도 보트로 한시간씩이나 유람할 수 있는 산 위의 넓고 깊은 웅덩이로 언제 보아도 정겹다. 이들 호수들은 서울보다 조금 더 넓고, 594m나 깊어 오묘한 물빛을 발산하는, 더 위쪽 오레곤 주의 크레이터 산정호수보다는 훨씬 작지만, 주변과 물 속에 온갖 동물과 식물이 바글거리기는 매한가지다.

이 지역은 샌프란시스코 만의 엉덩이로서 밴쿠버에서 미국으로 넘어와 시애틀과 포트랜드,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샌디에이고로 연결된 태평양 연안의 중간쯤이다. 그 위 아래 바닷가는 몬트레이와 산타바바라, 산타크루스와 같은 절경의 도시들과 함께 보석 같은 작은 도시들로 이어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윤택한 해안선을 이루고 있다. ‘나 여기 있소, 나 여기 있소’라듯  연이어 얼굴을 내미는 소도시들과 비치들도 청결하고 경치가 수려해서 멀리 보면 가위 선경이라 할 지경이다. 인류가 발전시킨 과학과 문명을 가장 잘 향유하는 해안띠(shoreline)로 만인이 선망하는 터전이리라. 새 시대에 세계의 IT와 4차 산업의 핵으로 부상한 실리콘밸리와 산호세도 그러한 지역성을 딛고 번성하고 있다.  

반면 앤자 호수에서 고속도로 580번으로 20분 남짓 동쪽으로 달려서 핵 연구소가 있는 리버모어에 이르면 환경은 사뭇 다르다. 황량한 사막지대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개발지역 외에는 평지에도 바싹 말라죽은 잡초들이 질펀하고, 가도가도 누런 민둥산과 돌산들이 계속 이어진다. 5번과 99번 고속도로로 남행하면 이따끔 살수장치로 물을 주는 포도밭과 과일밭이 푸르지만 대부분 메마른 박토의 연속이다. 더 동쪽 시에라 네바다 산맥 너머 고속도로 395번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도 죽음의 계곡 데스벨리가 흉측하게 드러누워 있고 모하비 사막과 애리조나, 텍사스까지 들락날락 사막의 황야와 고산들은 줄줄이 메말라 죽어있다. 

높은 산들이 생멸을 가른다. 서쪽 태평양 해역 부근에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구름과 안개가 몰려와 생명이 서식할 축축한 환경이 조성됨으로써 식물들이 무성하고 동물들도 풍요롭게 살고 있지만, 구름이 산을 넘어가지 못하는 동쪽은 사시장철 내려쬐는 땡볕 아래 물기를 바닥까지 빼앗겨 척박하기 이를 데가 없다.  

해안을 벗어나 산맥 너머 동남 쪽으로 차를 몰고 달리면 광활한 황무지에 홀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죽음의 냄새와 냉엄함이 시선 닿는 데마다 널부러져 있다. 해면(海面)보다 낮고, 3000~4000미터의 산으로 둘러싸여  지상에서 가장 뜨겁기로 셋 안에 든다는 120 핵타르의 드넓은 분지, 데스밸리에 이르면 태양광은 온종일 작렬하고, 섭씨 60도까지도 오르는 고온에서 수분이라고는 기척도 없다.

캘리포니아 일대를 남과 북, 동과 서로 주유할 때면 자연스레 깊은 사색에 빠지곤 한다. 어찌 이런 울창한 생명의 숲과 죽음의 바다 깊숙히 넘나들며 하찮은 일상이나 평상심에만 머물 수 있겠는가. 옥토와 박토를 오가며 그 땅들의 피부를 몸으로 스칠 때면 눈에 띄는 동·.식물들과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삶과 죽음, 그들의 운명, 세상의 원리, 우주의 진실 등의 상념이 꼬리를 물고 이는 것이다. 사색은  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 서로 교감하고, 서로 대화하고, 서로 섞인다. 때로는 환희가 번득이고, 때로는 심장을 옥죄는 아픔을 삼킨다. 깊은 곳에는 심오하고 근원적인 원리가 잠재해 있기 마련이지 않은가.

태곳적 생명들의 모습이 살아 숨쉬는 듯한 곳, 뮈어우드 국립공원(Muir Wood National Monument). 갈 때마다 방황하는 길손을 무던히 품어준다. 거대한 삼나무들은 늘 촉촉한 자태로 덤덤히 맞아주지만, 정작 길손의 맥박은 요동치고 영혼은 붕붕 떠서 미상불 유리령(遊離靈)이 되곤 한다. 뮈어우드 공원은 테오도르 루즈벨트 대통령의 노력으로 캘리포니아 중부 빅서에서부터 오레곤 주까지 넓게 퍼져있는 미국삼나무 (redwood-Sequoia sempervirens와 giant sequoia-Sequoia dendron giganteum)의 군락지 중 가장 원형이 잘 보존돼 있는 곳이다. 1억5000만년 전 대륙의 융기 이래 이 일대에 계속 무성한 레드우드는 수령이 평균 800년이고, 80m까지도 높으며, 80여종의 동·식물들을 몸에 데리고 쭉쭉 뻗어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이 없을 것이다. 이 거대한 생명들의 숲에서 길손은 심장 깊은 데서 솟는 화두를 던진다. 

“레드우드, 수천 년도 질서있게 사는 너희들이 보는 인간사회는 대체 무엇이더냐?” “이기심이 탐욕을 빚고, 탐욕은 날카로워지고, 대결은 집단으로 번져 꼭 지옥이지” “인간들이 그렇게 발전시킨 두뇌를 굴려 땅과 바다, 하늘까지 지배하지 않는가? “그 건 순(純)자연이 아니야. 인간들의 세상이지. 스스로 고통스러워 하지 않나?”  “긍정적인 면도 있으니 비관적으로만 보지 말게나. 무슨 다른 길이라도 없을까?” “윤리도, 도덕도, 철학도, 종교도 일탈의 틈을 못 막으니 어쩌겠나. 정교한 규범으로라도 통제할 수밖에. 인간사회의 운명이지. 양질의 규범을 누가 만드냐고? 너무 완벽함을 꿈꾸지 마시게. 그런 건 세상에 없으니”  

대화는 끝없이 이어지지만 깜짝 놀랄 터득은 울울한 숲에 숨어 잡히질 않는다.

사막에서도 뜨거운 모래밭을 빼고는 황야의 곳곳에 근근한 생명들이 살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먼지만 이는 황야에 선인장류로 보이는 까칠한 풀은 앙증스러운 꽃까지 피웠다. 데스밸리에도 천여 종의 생물이 놀라운 생명력을 보인다. 이런 척박한 데까지 살겠다고 뻗은 각종 생명들, 가냘픈 식물들과 쪼그라든 동물들, 일거리를 찾아 혹독함을 견디는 외로운 인간들의 생존을 위한 분투가 길손의 가슴을 울린다.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사막 가운데로 쑤욱 들어간 후미진 곳에 이르러 완벽, 또는 그 근사치에 대해 묻는다.  

“삶과 죽음의 너머에 존재라는 절대성에 닿으면 거기에 완벽이 있다네. 불변이지"  “존재? 그 게 이 과객에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허공에 대고 다시 묻는다. “의미를 찾는 차원도 너머 말일쎄, 이를테면 죽음 뒤에도 존재는 남지. 인간도...” 대화하면서 때로 밤하늘의 별을 헤아린다. 길손의 걸음, 달리는 차량을 줄곧 따르며  빤짝인다. 대화는 결과가 아니고 결론으로 가는 과정, 그러다 불쑥 서부의 새 금맥이라도 만나리란 희망을 안고 주행한다. 아르키메데스의 외침, 유레카(알아냈다)를 고대하며. 

송장길(언론인·수필가)  womaneconom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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