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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회 칼럼] 국민의 눈물을···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11일 오후 신임 수석비서관들과 함께 점심식사 후 청와대 본관을 나와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산책하고 있다.

-퇴근길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문 대통령.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하겠다면서 빈손으로 와 빈손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2017년 5월 23일 국민의 눈이 서울 서초동의 서울지방법원 417호 대법정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로 쏠렸습니다.

서울지법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은 옷가슴에 수인(囚人)번호 ‘503’을 달고 구속된 지 53일 만에 피고인으로 법정에 나와 재판을 받고 있었고 봉하마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를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에서 모여든 수만 명의 추모객들이 추도식을 거행하고 있었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2012년 대선 때의 모습이 오버랩됐습니다. 박근혜는 대통령에 당선됐고 문재인은 패자가 됐던 그때 그 모습 말입니다. 단언컨대 누군들 4년 반 만에 뒤바뀐 이 상황을 예견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여, 인간만사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라 하였던가, 인생은 무상하고 권력은 허망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고 불과 20여일. 짧은 기간 상상할 수 없던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취임식 당일부터 시작된 문 대통령의 파격적인 행보는 국민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사저에서 이웃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손을 잡고 사진을 찍고, 여야 정당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미리 기다려 맞이하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보좌관들과 커피 잔을 든 채 경내를 산책하고, 직원들과 한 식탁에서 점심을 드는 모습에 모두 놀랐습니다.

불공평의 대명사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고, 말썽도 많던 누리과정예산 전액국가부담지시, 고교의무교육실시를 선언합니다. 진보, 보수학자를 동시에 발탁하고 흙수저 출신, 비주류 여성, 전임 정부 인물, 반대 진영 인물 등등 남녀를 가리지 않고 두루 발탁을 해 직접 발표를 합니다. 권위주의와 회전문 인사에 익숙한 국민들은 “저런 사람도 있었나?”하고 낯선 인물의 등장을 신기해합니다.

5·18 광주에서는 해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 함께 부르고 희생자 유족을 포옹하는 감동적인 장면도 연출합니다. 개혁 대상 0순위인 검찰 인사에 예상외의 깜짝 인물이 발탁되고 미국으로, 중국으로, 일본으로, 바티칸으로, 러시아로, 독일로, 아세안으로 발 빠르게 특사단을 보내 새 정부의 출범을 알립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흥청대던 특수활동비의 ‘검은 실체’가 공개돼 뭇매를 맞습니다.

국민들은 정권교체를 통해 이제사 적폐 청산, 비정상의 정상화를 눈으로 확인하고 비로소 정치다운 정치, 민주주의의 진면목을 실감합니다. 전에 보지 못하던 문대통령의 파격행보에 야당에서조차 “전율을 느낀다”며 “무섭게 잘 한다”는 극찬마저 나옵니다.

“요즘은 뉴스 보는 재미로 산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여론조사 인기도가 80%대로 껑충 올라가고 ‘잘잘잘하다’라는 신조어도 들립니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 더 잘 한다”라는 뜻이라지요.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고사가 떠오르는 어제, 오늘입니다.

일단 출발은 좋았습니다. ‘문재인호’는 이제 막 돛을 올리고 큰 바다를 향해 앞으로 나아갑니다. 헌정사 70년에 국민들이 이렇게 고개를 끄덕이는 건 처음 봅니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나친 칭찬은 사람 눈을 멀게 합니다. 며칠 사이에 이미 그런 조짐은 보이고 있습니다. 온갖 칭찬도 모자라 대통령의 구두까지 미화의 대상이 되고 대통령 내외 맨발바닥까지 텔레비전 화면을 장식합니다. 염량세태(炎涼世態)의 전형, 용비어천가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그런데 순풍만이 기다리는 건 아닙니다. 오늘 맑은 날씨가 내일 악천후로 변하듯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사청문회 1호인 국무총리 후보를 둘러싼 신상 털기가 시작되면서 잘 나가는듯하던 분위기에 제동이 걸리고 상황이 반전됩니다.

선거 패배로 늪에 빠진 자유한국당이 일찍 온 호기(好機)를 놓칠세라, 강공으로 나서고 바른정당, 국민의당이 함께 가세합니다. 일부 보수언론 또한 허니문 기간도 없이 하이에나로 돌변합니다. 내각도 구성하기 전에 시련을 만난 문재인대통령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오른 것입니다. 과연 이 난국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정치는 진정성만으로는 안 됩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정치 철학자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제왕은 사자 같은 용맹함과 여우 같은 간교함을 갖춰야 한다”고 설파했습니다. 이 한마디는 국가를 운영하는 권력자들에게 정치학의 금과옥조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00여 년 전 공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노(魯)나라의 권력자인 계강자(季康子)가 “정치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정치란 곧 올바름(政者正也)이요”라고 대답합니다.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법도와 도덕에 맞게 정도(正道)를 따라야 한다”며 “정(政)은 곧 정(正)이니 올바른 치세야말로 정치의 첫 번째 덕목”이라고 말합니다.

문 대통령이 ‘용맹함과 간교함’을 함께 갖춘 지도자인지, ‘올바름’만을 추구하는 지도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글쎄, 어느 쪽일까.

원래 당선자들은 허니문이라는 프리미엄이 있습니다. 취임 뒤 3~6개월 정도는 야당이고, 언론이고 웬만한 것은 눈감아 주는 게 관례입니다. 손발을 맞춰 팀워크를 조율하는 기간을 주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치 2013년 박근혜정부 출범 때 호되게 당한 것에 대한 보복인지 시작과 함께 강펀치를 날리는 형국입니다.

지금 전 세계는 촛불시위로 이룩한 한국의 정권교체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 우리 국민들이 보여준 대규모 비폭력 평화시위는 어느 나라에서도 쉽게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모범사례였기 때문입니다. 이웃 나라 일본 국민들 중에는 “일본은 한국인들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학자들은 정치는 ‘종합예술’이라고 말합니다. 정치야 말로 국민을 웃게도 하고 눈물도 주는 마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서글픈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퇴근길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나가는 대통령이 되겠다”고도 선언했습니다. 참으로 듣기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말처럼 지켜질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일단 국민들의 애환(哀歡)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대를 갖게는 합니다.

과연 문대통령은 초지일관 약속을 이행하고 5년 뒤 박수를 받으며 퇴임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오늘 그것이 궁금합니다.

김영회(언론인)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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