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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회 칼럼] 청와대 풍수가 어떻길래
   
▲ ‘천하제일복지’라는 청와대. 그러나 불행한 일이 자꾸 거듭되자 “명당자리가 맞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천하제일복지'라는 청와대. 왜, 재앙은 계속 이어지는지. 땅이 사람을 만드는 것인가, 사람이 명당을 만드는 것인가. 오늘 그것을 생각해 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사건으로 탄핵을 당해 대통령직을 잃고 피의자가 되어 재판을 받는 처지가 되자 그때마다 화제가 돼 오던 청와대 집터에 대한 풍수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948년 정부수립 이후 19대에 이르는 동안 거의 모든 대통령들이 크고 작은 불행을 당해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면서 도대체 청와대에 무슨 징크스가 있는 것이냐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때문입니다.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취임한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1·2·3대 세 차례에 걸쳐 12년 동안 권좌를 누렸지만 1960년 ‘4월 혁명’으로 퇴진해 망명지 하와이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는데 그것이 ‘대통령 비극사’의 서막이었습니다. 

제2공화국 대통령이었던 4대 윤보선 대통령은 1960년 8월12일에 취임해 9개월 만에 5·16쿠데타로 실권을 빼앗기고 62년 3월22일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5·6·7·8·9대에 이르는 다섯 차례 군사, 유신(維新) 독재로 장장 18년에 걸쳐 장기 집권을 했으나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괴한의 흉탄에 쓰러지고 자신마저 심복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으로부터 피살되는 처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10대 최규하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고로 권한대행에 이어 79년 12월 6일 군부의 각본에 따라 간접선거로 대통령 자리에 올라 8개월 동안 재임하다가 사퇴압박을 받고 이듬해 8월 16일 물러났습니다.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탈취해 1980년 5월 광주항쟁에서 수많은 시민을 희생시키고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이 된 전두환 대통령은 1988년 2월 24일까지 11대, 12대에 걸쳐 8년 동안 재임했습니다. 하지만 퇴임 뒤 백담사로 유배되고 1995년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사형,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사면되었으나 뇌물수수죄로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았습니다.

1988년 취임한 13대 노태우 대통령은 5년 임기를 마치긴 했지만 95년 12·12군사반란과 수천억 원의 뇌물수수혐의로 징역 17년에 2628억원 추징이 선고돼 옥고를 치르다가 사면돼 현재 노환으로 병상에 누워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전두환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경호를 제외한 일체의 전직대통령 예우가 박탈된 상태입니다.

14대 김영삼 대통령은 1990년 민정, 민주, 공화 등 3당 합당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돼 1993년 30년 만의 문민정부를 출범시켰습니다. 취임 초 금융실명제 실시와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해체 시키고 “단돈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부패척결선언을 했으나 아들과 측근들이 뇌물수수로 구속돼 빛이 바랬고 말년 IMF외환위기를 초래했다하여 저평가 되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오랜 민주화 투쟁으로 숱한 사경(死境)을 넘으며 1998년 취임한 15대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으로 역사적인 평양방문을 성사시켜 6·15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 내는 등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들들이 뇌물을 받고 구속되는 수난을 당해야했습니다.

혜성과 같이 등장하여 2003년 취임한 16대 노무현 대통령은 권위주의, 지역주의타파 등 서민대통령 행보로 지지를 받았으나 선거중립의무위반으로 탄핵소추 되었다가 기각판결을 받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2007년 북한을 방문해 10·4선언을 이끌어 내는 등 업적을 남겼으나 가족들의 뇌물수수로 검찰의 수사를 받는 도중 2009년 5월 23일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 자택 근처 벼랑에서 투신자살을 함으로써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2008년 취임한 17대 이명박 대통령은 무리하게 4대강 사업을 추진하고 5년 임기를 무사히 마쳤으나 형님인 이상득 의원이 ‘만사형통(萬事兄通)’이란 유행어를 만들어 낼 만큼 시비가 그치지 않았고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까지 돼 동생인 이 대통령이 임기 내내 구설에 휘말렸습니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으로 당선돼 2013년 취임한 18대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잇따른 인사실패와 ‘불통논란’에 휩싸이면서 비선실세 최순실사건 공모자로 탄핵을 당하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현재 재판을 받는 고난에 처해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비명횡사에 더해 자신마저 구속되는 불행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권부(權府)의 상징인 청와대는 풍수지리상 뒤로는 서울의 주산(主山)인 북악산이 있고 왼쪽에 좌청룡(左靑龍)격인 낙산(駱山), 오른 쪽에 우백호(右白虎)격인 인왕산(仁旺山)이, 앞쪽으로는 청계천과 남산, 그리고 멀리 한강이 굽이쳐 흐르니 소위 풍수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明堂)중의 명당입니다.

청와대의 본래 명칭은 이승만 대통령 때 까지는 경무대(景武臺)였습니다. 1910년 한일합방을 성사시킨 일제는 경복궁 앞마당에 총독부를 짓고 후원의 건물을 모두 헐어 그곳에 관저를 지어 일본인 총독들이 거주했는데 해방 뒤에는 미군 사령관인 하지 중장의 관저로 사용돼 오다 정부수립 이후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그대로 이어 받았습니다.

그런데 1960년 4·19데모 때 청와대 입구 효자동에서 경찰의 발포로 대학생들이 길바닥에 마구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자유당정권이 붕괴되면서 경무대는 악명 높은 곳이 돼 버렸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뒤 경무대의 새 주인이 된 윤보선(尹潽善) 대통령은 ‘푸른 기와집’이란 뜻의 ‘청와대(靑瓦臺)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현재의 청와대는 1988년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이 이듬해 대공사를 시작해 2년 만에 본관 관저 등 새 건물을 완공했습니다. 이때 경내 숲속에서 ‘天下第一福地’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커다란 표지석이 발견 되었는데 ‘천하제일복지’라면 풍수지리상 천하의 명당임을 의미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청와대의 풍수가 좋지 않다는 풍문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여기서 살았던 주인들의 면면을 돌아보면 좋지 않은 일이 계속 꼬리를 이어 과연 명당자리가 맞는 것인지, 의문이라는 소문이었던 것입니다. 정부 수립 이후에는 물론 일제시대 에도 이곳에 거주했던 일본 총독들이 모두 뒤가 안 좋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부터였습니다.

풍수전문가들 중에는 청와대가 길지(吉地)라는 이들이 있고 그렇지 않다는 이들로 나눠집니다. 길지라는 이들은 배산임수에 좌청룡, 우백호라는 전형적인 지형을 잘 갖춘 것을 들어 조선이래의 명당이라고 보는 근거입니다.

하지만 길지가 아니라고 보는 이들은 의견이 다릅니다.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줄기가 골이 많이 져서 골육상잔의 운명을 피하기 어렵고 산에 박혀 있는 바윗돌들이 살기(殺氣)가 강해 흉하고 서북쪽 자하문 고갯길의 요처(凹處)에서 불어오는 골바람(북서풍)은 남향인 청와대 건물 처지에서 볼 때 황천살(黃泉殺)에 해당하므로 매우 불안한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또 “주산인 북악산은 높지도 않은데(해발 342m) 딱 버티고 있는 꼴이 거만하기 이를 데 없고 타협이라고는 모르는 고집불통 같다”면서 “청와대 주인들이 그 자리에 가면 북악산을 닮는다”는 이야기마저 하고 있습니다.

또한 청와대의 규모가 너무 큰 것도 잘못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7만7000평에 이르는 청와대 터는 미국의 백악관(2만2000평) 보다 3.5배나 더 되는데 대체 이게 말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비서들과 수시로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백악관과 달리 우리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할 정도이니 불통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청와대에 가보면 사람은 안보이고 건물만 보인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풍수가 진정 중시하는 것은 땅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지도자가 좋은 생각으로 좋은 정치를 펴 국민을 평안하게 해 준다면 땅은 그대로 명당이 된다는 것입니다. 땅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명당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역사에 보면 같은 궁궐에서 태어나도 어떤 왕은 성군(聖君)이 되고 어떤 왕은 패륜아가 되는데 그것은 만사가 사람에 달려있다는 방증인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바짝 앞으로 다가 오고 있습니다. 후보들의 이전투구가 점입가경입니다. 이번에는 어떤 사람이 청와대의 주인이 될지, 청와대의 음습한 기를 누르고 국민을 평안하게 해줄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집니다. 

김영회(언론인)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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