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7.10.20 금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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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원짜리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성관계 장려 아닌 ‘책임감’ 심어주기인스팅터스 박진아 공동대표 "무조건 덮지말고 안전한 방법 알려주는게 더 현실적이다"
   
▲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경리단길에 위치한 한 성인용품 가게 앞 1층에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가 설치돼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경리단길에 위치한 한 성인용품 가게 앞 1층에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가 설치돼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19세 이상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지난 2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경리단길에 위치한 한 성인용품 가게 앞에 청소년을 위한 특별한 기계가 등장했다.

성인들에게는 판매하지 않는다는 이 수상한 물건의 정체는 ‘콘돔’ 자판기다.

자판기에는 “누구나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가 있습니다” “콘돔은 성인용품이 아닙니다” “청소년의 안전한 사랑을 위하여 만 19세 성인은 사용을 지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등 의미 있는 문구가 촘촘히 적혀있다.

처음엔 "이게 뭐지" 갸우뚱하며 호기심에 글을 읽은 성인들은 "아하"하며 금세 깨달음을 얻고 고개를 끄덕인다.

음지에 있던 콘돔 자판기가 당당히 양지로 나왔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는 사회적 기업 '인스팅터스'가 만들었다.

청소년 보호법에 의하면 콘돔구매에 연령제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콘돔을 살 수 없는 현실을 바꿔보려는 새로운 시도다.

청소년의 성(性)을 외면하고 방치해서 성 질환과 원치 않는 임신 등의 비극을 겪게 하느니, 차라리 무엇이 더 안전한지 알려주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자판기에 100원짜리 동전 한 개를 넣고 측면의 레버를 오른쪽으로 360도 돌리면 민트색 콘돔 2개가 나온다. ‘100원’이라는 이 상징적인 가격은 청소년에게 ‘작은 책임감’을 주자는 의미에서 책정됐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콘돔의 가격은 개당 500~3000원 사이로 2개에 100원은 말도 안되게 저렴한 금액이다. 이 콘돔은 본래 10개에 1만4000원에 판매되고 있는 ‘이브’라는 이름의 콘돔으로 청소년들에게만 이 같은 특별한 가격에 제공되고 있다.

이브는 식물성 원료만 사용한 것은 물론, 동물 실험도 진행하지 않아야 얻을 수 있다는 비건(Vegan) 인증을 받았다. 콘돔의 수익금 전액은 서울시립청소년건강센터 ‘나는 봄’에 기부된다.

♦ "막을수 없다면 정확히 알려줘야 한다" 기꺼이 가게앞 자리 내줘

   
▲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경리단길에 위치한 한 성인용품 가게 앞 1층에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가 설치돼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자판기가 설치된 이태원에 위치한 성인용품점을 운영하는 정해수 대표는 지난 31일 “아직 설치한지 한 달 정도 밖에 되지 않아 판매 실적이 엄청나게 좋은 것은 아니지만, SNS 등을 통해 정보를 얻은 청소년들이 하루 평균 2명 정도 다녀가고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 설치는 무료다. 하지만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편견 때문에 보급이 쉽지 않다. 신논현, 이태원 등 서울 2곳을 포함해 광주 충장로, 충남 홍성까지 전국에 4대밖에 설치 돼 있지 않다.

정 대표는 평소 청소년 콘돔 자판기의 필요성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인스팅터스의 좋은 취지에 공감해 선뜻 가게의 앞자리를 내주게 됐다.

정 대표는 "이것은 실화인데 우리 집 아파트에 사는 여고생이 이번에 애를 낳았다. 이런 일이 주변에 굉장히 많다. 이런 일이 또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며 “나 또한 청소년기의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부모의 입장이다"고 말했다.

이어 결정적으로 자판기 설치를 허용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는 늘 ‘~해선 안된다’ 식의 네거티브(부정적인) 교육만 지향하고 있다. '~어떻게 하라'는 포지티브(긍정적인) 교육은 실행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나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교육하고 싶지 않다. 막을 수 없다면 알려줘야 한다”고 털어놨다.

♦ '비닐봉지 콘돔’ ‘랩 콘돔’ 등 청소년들의 피임에 대한 무지 심각 

실제로 청소년들의 피임에 대한 무지는 허를 찌르는 수준이다.

네이버와 같은 주요 포털 사이트에 ‘비닐봉지 콘돔’ 혹은 ‘랩 콘돔’ 이라는 키워드만 검색해 봐도 청소년들이 이미 몇 년 전부터 문의해 온 관련 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비닐봉지로 피임하면 임신 안 됩니까?” “비닐봉지 깨끗이 씻고 사용하면 괜찮나요?” “비닐봉지 대신 랩으로 해도 성병에 걸리나요?” 등 비슷한 문의가 넘쳐 난다.

지난해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성관계 경험이 있는 청소년의 첫 경험 시작 연령은 13.1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 여가부에 따르면 성관계를 경험해 본 청소년 중 약 절반이 피임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설문에 응답한 9.1%는 성 질환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21.4%는 임신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심지어 지난해 임신을 경험한 여학생의 81%는 임신중절수술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청소년들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구매하기 쉽지 않아서가 주된 이유다. 주요 검색 사이트에 ‘콘돔’ 이라는 키워드 검색만 시도해 봐도 ‘19금’ 인증을 요구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해 볼 수 있다.

♦ 피임도구 사용 필요성 명확함에도 사회적 시각은 여전히 팽팽

하지만 이처럼 청소년 성교육과 피임도구 사용에 대한 필요성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시각은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직장인 김모(31)씨는 "오래전에 TV에서 청소년들이 집 옥상이나 부모님이 안 계시는 집 안에서 성관계를 갖고 임신을 하면 계단에 굴러 자연유산을 하게 한다는 내용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면서 "아이들이 바르게 사랑하도록 하는 것 또한 어른들의 몫인 것 같다. 물리적 접근성을 높이거나 보급을 더 확장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부 문주희(32‧여‧일산 동구)씨도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안전하게 임신을 선택하거나 피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좋은 취지로 설치된 만큼 어른들이 남용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반면, 대학생 김호현(26‧가명)씨는 “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학생들에게 콘돔부터 보급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취지는 좋지만 순서가 바뀐 것 같다”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직장인 강희연(27‧여‧가명)씨도 “아이들이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의 설치를 성행위 허락으로 생각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사회적 기업 '인시팅터스' 박진아 공동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활짝 웃고있다. /사진제공=인스팅터스

♦ "단 한명이라도 ‘원치 않는 임신’ 막는다면 큰 의미 있다"

그러나 인시팅터스 박진아(24·여) 공동대표의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에 대한 확신은 분명하다.

“요즘은 (인터넷, 스마트폰, 각종 케이블 매체 등의 발달로) 포르노그라피에 초등학생 때부터 노출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아이들이 ‘섹스’라는 행위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10대 초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포르노그라피에는 콘돔이나 피임에 대한 내용이 전혀 포함돼 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섹스라는 존재를 아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덮어두는 것 보다 무엇이 더 안전한지 알려주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피임에 대한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모든 인간이라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인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에게는 섹슈얼리티나 성 자체가 없는 것처럼 치부해 버린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또 박 대표는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에 대한 일부의 부정적인 의견에 대해 “성교육이 선행되었을 때 더 큰 장점이 있을 순 있겠으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여가부나 교육부 등 공공영역에서 이뤄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을 통해 단 한명의 청소년이라도 ‘원치 않는 임신’에 노출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콘돔은 건강을 위해 반드시 인지하고 있어야 할 관계의 일부다”라고 강조하며 “앞으로 더 다양한 지역에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를 보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임유정 기자  wiselim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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