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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회 칼럼] 첫 탄핵 대통령은 인과응보
   
▲ 10일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주재로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꽃이 열흘을 붉지 못하고 권세가 10년을 가지 못합니다. 모든 것은 박근혜씨 자신의 오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정의는 반드시 불의를 이깁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요, 자업자득(自業自得)입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도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마디로 탄핵은 예정된 수순이었고 올 것이 온 당연한 결과입니다.

오만한 권력의 종말은 이처럼 허망하고 비참합니다.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1577만3128표로 1469만2632표를 얻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을 때 나는 “우리 국민들이 대단하구나”하고 감탄을 했습니다.

500년 이상 남존여비의 유교가 국교(國敎)로 지속돼온 나라,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극단적인 여성천시(賤視) 풍조가 가득한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선진국인 미국에서 조차 뽑아보지 못한 여성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다니,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새삼 우리 국민들이 자랑스러웠던 것도 그때였습니다.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손을 흔들고 기뻐하던 박근혜 당선자가 대견해 보였습니다. 그것도 아버지에 이어 그 딸이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되다니, 장한 일이었습니다.

갑자기 마음속에서 기대가 솟아났습니다. “이제 어머니 같은 여성으로서의 부드러운 정치를 보겠구나”하고 기대가 됐고 그동안 남성 대통령들이 본인이나 가족들의 비리로 번번이 국민을 실망시켜 왔기에 적어도 박 대통령만은 여성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좋은 정치’를 하지 않을까하는 나름의 기대를 가졌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딘가 대통령으로서의 품위와 일거수일투족이 버거워 보였고 아니나 다를까, 잇단 인사실패에 이은 이런저런 일들이 되풀이 되면서 그 원인이 ‘불통(不通)’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장관이 대통령을 대면하기 어렵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그를 묻는 기자의 물음에 “전화가 대면하는 것 보다 더 편리하지 않나요?”하는 어이없는 답변을 하는 해프닝조차 있었습니다.

뒤이어 ‘정윤회 문건’이니 ‘삼인방’이니 ‘십상시’니 하는 요상한 소문들이 나돌더니 “비선에서 다 한다”는 쑥덕공론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도 곧잘 생산해 냈습니다. “혼이 비정상”이라느니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 줄 것”이라느니 하는 3차원적인 발언도 그때마다 매스컴을 장식하곤 했습니다.

새누리당내에선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고 편 가르기가 시작됐고 “배신자를 심판해야 한다”는 누군가를 지목한 험악한 발언도 대통령 입에서 나왔습니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박 대통령 개인의 사당(私黨)처럼 돌아갔습니다. 권력이 점차 박 대통령에게 집중된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신명이 났습니다. 종편에서는 날마다 입담 좋은 명사들이 나와 ‘용비어천가’로 대통령을 들뜨게 했고 “오늘은 무슨 색 옷을 입었느니, 브로치가 어쩌니…”하는 유치한 찬사를 늘어놓느라 아나운서들의 입에 침이 말랐습니다. ‘박 대통령 찬가’라는 노래까지 나와 인터넷을 달구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보라는 듯이 여러 사람 앞에서 “각하!”라는 낯 뜨거운 ‘과잉존칭’으로 환심을 사 총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취해서 살았습니다. 정치적 고향인 대구, 경북이 있으니 뒤는 든든하겠다,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50, 60대 노장들이 있으니 여론조사 지지도도 걱정 없고, 손 한번 잡아보자는 재래시장 아주머니들의 환호에 박 대통령은 술 취하듯 취했던 것입니다. “아, 국민들이 나를 이렇게 좋아 하는구나”하고 그것을 민심으로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은 행사장에서 준비된 박수를 받고 손 흔드는 것을 아주 좋아 했습니다. 그것은 옛날 아버지가 하던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싫어하는 듯싶었습니다. 청와대 정무수석이라면 밤낮으로 대통령 곁에서 여당, 야당, 정부의 동향을 파악해 수시로 보고하고 대책을 의논하는 심복중의 심복입니다.

그런데 스펙 좋고 어여쁜 정무수석을 곁에 두고서 11개월이나 독대한번 한 적이 없다는 증언에는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 당일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한 비서실장의 답변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수행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하이라이트였습니다. 비서실장이 청와대 안에 있는 대통령의 소재를 모른다니, 모두가 어이없어 한건 당연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즐거웠을 것입니다. 날마다 새 옷 갈아입고 행사에 참석해 손 흔드는 재미가 아주 좋았을 것입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박근혜 패션’이라고 쳐 보면 대통령에 취임하고 4년 동안 입었던 수백 벌의 아름다운 옷이 한눈에 모두 보기 좋게 나옵니다. 한 매체통계(단비뉴스)에 의하면 박 대통령은 취임 1년 동안 공식적으로 착용한 새 옷이 122벌이라고 합니다. 임기 4년이 지났으니 지금은 총 몇 백 벌이 될지는 상상이 어렵지 않습니다.

2013년 11월 4일 박 대통령의 ‘패션여행’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나러 간 런던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차에서 내리다 진흙탕에서 고꾸라져 주변을 민망하게 한 일도 있었습니다. 여왕을 만난다는 흥분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호텔방 목욕탕의 샤워분수기를 부랴부랴 새로 교체하고 화장대 뒤에 흰 스크린을 설치하는 등 기행을 벌였다는 건 뒤늦게 알려진 일입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선당시 ‘국민 대통합’ ‘경제민주화’ ‘복지 확대’ ‘행복한 일자리 창출' ‘국민 행복시대’ 등 672개 공약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면 임기 4년을 넘긴 지금 과연 얼마나 공약을 실천 했을까, 궁금합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외교를 잘했다고 합니다. 과연 무슨 외교를 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진핑 주석을 7번이나 만나 ‘특별한 관계’라고 자랑하던 그 중국은 지금 어떻습니까. 사드 도입을 둘러싸고 막무가내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어떻습니까. 소녀상을 둘러싸고 대사를 소환해 가더니 한 달이 넘어도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어떻습니까. 개성공단은 폐쇄됐고 대화의 끈마저 끊고 막말만 주고받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합니다. 주고받는 게 외교이고 싸우지 않는 게 잘하는 외교입니다.

박 대통령은 식언(食言)을 너무 많이 하고 거짓말도 많이 했습니다. 120명의 특별검찰이 자신을 조사하는데 “손톱만큼도 잘못한 게 없다"고 잡아뗍니다. “검찰조사를 받겠다, 특검조사도 받겠다, 청와대 조사도 협조하겠다"더니 한 가지도 약속대로 한 것이 없습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이라는 요녀(妖女)로 하여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 여자의 아바타가 되어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동안 탄핵이 되느냐, 기각이 되느냐 벌인 뜨거운 논쟁은 국민을 둘로 갈라놓았습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에는 13개 피의사실이 적시돼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애시 당초 불필요했던 사안이었습니다. 이번 박 대통령 탄핵은 우리 사회가 불의 보다 정의가 앞서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루 빨리 정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나라는 5200만 국민의 나라이지, 박근혜 개인의 나라는 아닙니다. 박 대통령을 지지해 그동안 탄핵을 반대했던 국민들도 감정을 가라앉히고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법치국가 국민의 도리, 그리고 성숙한 문화국민으로서의 자세입니다.

평범한 국민으로 돌아 온 박근혜씨에게는 개인적으로 위로를 전합니다. 이제야 말로 남을 원망하고 탓하지 말고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겸허한 자세로 돌아가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람은 어려움에 처할 때 더욱 성숙해 집니다.

박근혜씨는 이제 헌정사상 최초의 탄핵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것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박근혜씨 혼자만의 불행이 아닙니다. 국가의 불행, 전 국민의 불행이기도 합니다.

탄핵과 함께 이제 박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받을 수 없습니다. 탄핵이란 파면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5년으로 정해진 사저의 경비와 경호를 제외한 일체의 특전이 박탈됩니다. 우선 현직의 100분의 95%(2017년 현재 1200만원)에 달하는 연금혜택을 받을 수 없고 비서관 3명과 운전기사의 제공도 받을 수 없습니다.

또한 사무실 제공, 통신 교통비의 지원, 본인과 가족의 무상치료도 혜택 받지 못합니다. 또한 사후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특전도 제외됩니다. 박 대통령은 자연인 신분이 됐기 때문에 현직이라서 면제됐던 검찰수사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2017년 3월 10일은 박근혜씨로서는 일생일대 치욕의 날이 되었습니다. 이제 박근혜씨는 남을 원망하지 말고 “모든 것은 내 잘못이었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내 탓이지, 남의 잘못 때문이 아닙니다.

옛글에 있습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꽃이 열흘을 붉지 못하고 권세가 십년을 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권력은 허망합니다.

김영회(언론인)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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