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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회 칼럼] 새는 두 날개로 난다
   
▲ 새는 좌우의 두 날개로 하늘을 납니다. 아무리 유능한 새라 할지라도 한쪽 날개만으로는 날지 못합니다.

-좌우는 상대적 개념이지, 타도의 대상은 아닙니다. 보수·진보가 서로를 포용할 때 국가와 사회도 발전하고 국민도 평안해집니다-

요 근래에 와서 신문이나 텔레비전에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용어가 부쩍 자주 눈에 띕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이 꼬리를 잇곤 하니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정당, 단체들이 제각각 목소리를 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전을 보면 진보(進步)는 ①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 ②역사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이라고 나와 있고 보수(保守)는 ①보존하여 지킴 ②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수와 진보는 인간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두 정신세계, 즉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보통 진보적인 사람을 좌파(左派)라 부르고 보수적인 사람을 우파(右派)라고 합니다. 사실 좌파니, 우파니 하는 말은 순수한 우리말이 아니고 228년 전 일어난 프랑스대혁명에서 유래한 정치용어로 1945년 광복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입니다.  

좌와 우라는 진보, 보수의 개념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 뒤 열린 국민공회(국회)에서 비롯됩니다. 당시 국민공회는 혁명을 성공시킨 시민세력과 기존 권력인 왕당파가 함께 참석했는데 가운데 의장석을 중심으로 왼쪽에 공화정을 지지하는 시민세력 자코뱅파가 앉았고 오른쪽에 왕정복고를 꾀하는 귀족, 성직자 등의 지롱드파가 앉았는데 왼쪽의 급진적인 자코뱅파를 좌파, 오른쪽의 점진적 변화를 주장하는 지롱드파를 우파라고 부른 것이 좌, 우의 기원입니다. 

그럼 좌, 우파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법과 제도 등 현존 체제를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 그리고 변화의 속도에 대한 시각의 차이'에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현존 체제를 혁파하면서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을 좌파로, 현존 체제를 고수하면서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을 우파로 구분하는 것이 기준입니다. 이러한 구분에 따라 좌파는 다시 진보개혁파로, 우파는 보수파로 부릅니다.

우리나라는 1945년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이념적으로 자본주의가 된 남한은 보수우파, 공산주의가 된 북한은 진보좌파로 고착화됐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6·25라는 민족상잔의 전쟁을 겪고 나서 진보, 좌파는 좌익=공산당=북한=빨갱이라는 동의어가 돼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 사이에는 진보니, 좌파니 하는 용어에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처참한 전쟁의 비극을 겪은 아픈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아 좌파는 북한이라는 부정적 관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과거 독재정권마다 정적(政敵)을 제거하거나 반대세력을 탄압할 때는 어김없이 ‘전가의 보도(傳家寶刀)’로 써 온 것이 ‘진보·좌파=용공’ 딱지였습니다. 그동안 독재에 저항하는 진보적 민주세력은 꼼짝없이 친북 좌파로 올가미를 쓸 수밖에 없었고 진보의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종북(從北)으로 매도되는 분위기가 사회를 지배해 왔습니다. 

자유당 시절인 1956년 3대 대통령 선거에서 나섰던  진보당 당수 조봉암(曺奉岩)은 공산주의자로 몰려 사형을 당합니다. 이승만의 ‘북진통일’과 달리 ‘평화통일’을 주장했다는 것이 죄목이었습니다. 정적에 대한 정치보복, 사법살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52년이 지난 2011년 대법원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하고 복권시켰으며 국가는 유족에게 24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1961년 언론인 조용수(趙鏞壽)는 진보적 일간지 민족일보를 창간해 북한을 찬양 고무했다는 죄로 5·16군사정권에 의해 사형을 당합니다. 31세의 억울한 죽음이었습니다. 법원은 2008년 이 또한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했고 국가는 유족에게 29억원을 배상하게 했습니다. 47년만의 명예회복이었습니다. 

1974년 유신치하에서 도예종 등 8명의 지식인이 유신반대운동을 하다가 중앙정보부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돼 사형선고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이 되었습니다. 소위 ‘인민혁명당사건’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07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고 637억 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처럼 우리 현대사는 때로는 정적이라서, 때로는 비판자라서 좌파사상범이란 올가미를 쓰고 희생당한 예가 부지기수입니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 상대적 개념입니다. 보수는 선이고 진보는 악이 아닙니다. 진보는 좋고 보수는 나쁜 것도 아닙니다. 호오(好惡)를 따지거나 선악(善惡)을 구분할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진보는 악의 근원처럼 금기시(禁忌視)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권력을 쥔 보수 쪽에서는 기회만 되면 진보는 마치 공산당처럼, 북한 내통자로 덧씌워지는 것이 관행처럼 돼 왔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버려야 할 것은 바로 좌우의 이분법과 극단론입니다. 극우도 문제려니와 극좌도 문제입니다. 극단적 보수나 극단적 진보나 해악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극우는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좌빨’(좌익빨갱이)이라고 진보세력을 공격하고 극좌는 ‘우꼴’(우익꼴통)이라고 보수세력을 공격합니다. 

그러니 나라가 평안한 날이 없이 백년하청(百年河淸)으로 소란하고 허구한 날 갈등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이성적인 사람들이 사회를 끌고 가기보다 편견에 찬 목소리 큰 사람들이 사회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사회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국민들은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이념, 지역, 빈부, 노사, 계층, 세대 등 온갖 분야에서 갈등과 대립으로 몸살을 앓는 것도 실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서 기인(起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진보세력이 보수 세력을 긍정하고 보수 세력이 진보세력을 용납할 수가 있겠습니까. 

민주주의의 본 고장인 유럽에서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가 사이좋게 정권을 주고받으며 나라를 끌고 갑니다.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경쟁을 통해 공생(共生)하는 ‘윈윈 정치’로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 주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점이 우리와 다릅니다.

건전한 보수와 건전한 진보는 상호 보완적인 것이며 필수 불가결한 사회발전의 동력이 됩니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가 조화를 이룰 때 국가 사회는 안정을 찾고 국민들은 평안히 살 수 있습니다.

새는 좌우의 두 날개로 하늘을 납니다. 아무리 유능한 새라 할지라도 한쪽 날개만으로는 날지 못합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오른 팔이 힘이 세다고 해도 한 팔로는 무엇이건 제대로 못합니다. 

왼팔, 오른 팔이 함께 조화롭게 움직일 때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새에 두 날개가 있고 사람에게 두 팔이 있는 것은 서로의 역할에 따라 힘을 합치라는 조물주의 오묘한 뜻인 것입니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는 서로 공생의 대상이지, 타도의 대상은 아닙니다. 

사실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은 결코 좌와 우의 문제도 아니며 진보와 보수의 문제도 아닙니다.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은 무능한 사람이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유아독존(唯我獨尊)으로 소꿉장난 하듯 국정을 농단(壟斷)한데 근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우수(雨水)가 지나고 시절은 봄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좌든, 우든 이제 그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대청소’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대자연은 어김없이 순환을 거듭합니다.

김영회(언론인)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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