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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 '내 꿈속에서 여사님께서···" 육영수 현몽설 편지로 박근혜 홀렸다[박근혜·최 패밀리 40년 게이트(4)] '피보다 진한 물' 보여주며 최순실 파문 키워
   
▲ 77년 3월 새마음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경로병원 개원식에서 구국여성봉사단 명예총재인 박근혜씨가봉사단 총재 최태민씨와 함께 테이프를 끊고 있다./사진제공=우먼센스

여성경제신문은 자매지인 우먼센스가 지난 1990년 12월호, 1993년 11월호, 1994년 8월호에서 보도한 최태민(1994년 사망)·최순실 단독 인터뷰 및 주변 인물들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최 씨 부녀간 40년 인연을 5회에 걸쳐 되짚어본다. 최태민 씨는 국정을 뒤흔든 메가톤급 게이트의 장본인 최순실 씨의 부친으로 당시 기사 내용을 반추해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씨에 집착하는 실마리를 엿볼 수 있다. 

■ 최태민 ‘현몽설’로 박근혜에게 접근

“75년 초였을 겁니다.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신 뒤 위로하는 내용의 편지는 보냈죠. 그 내용을 지금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육여사 현몽’이라거나 정식으로 접견 신청하는 내용 따위는 쓰지 않았어요. 아마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기회 있으면 한번 만나주시길 바랍니다’라는 말로 편지의 끝을 맺었지요.”

‘우먼센스’ 1993년 11월호에 실린 최태민 씨와의 인터뷰 내용의 일부다. 최 씨는 당시 편지의 내용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최 씨는 박근혜 씨를 처음 만나게 된 계기로 알려진 현몽(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근혜를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는 소문)에 관한 편지를 보냈다는 소문에 대해서 부인했다.

위로의 편지를 보낸 적은 있지만 현몽 운운한 적은 없다고 밝히면서 “대학교육을 받은 박 이사장(박근혜 씨는 90년에 이미 육영재단 이사장을 그만 뒀지만 최 씨는 계속 박 이사장으로 불렀다)에게 ‘현몽’ 운운하는 것이 먹혀들겠어요?”라고 반문했다.

그밖에 최씨는 자신이 최면술을 한다던가, 안수기도로 병을 고친다는 소문 등에도 “근거 없다”고 못을 박았다.

   
▲ 1977년 3월 최태민 구국봉사단 총재의 안내로 걸스카웃 대원들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사진제공=우먼센스

그러나 이 주장은 엇갈린다. 실제 최 씨가 모친 육 여사를 잃고 퍼스트레이디가 된 큰 영애에게 편지를 써서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났다는 현몽을 들먹이며 접근했다는 증언도 많다.

박정희 정권에서 중앙정보부장을 맡았던 김형욱의 ‘회고록’에는 최태민의 꿈에 육 여사가 나타나 ‘근혜가 어리석어 슬퍼만 하고 있으니, 그대가 도와달라’고 했다는 내용의 ‘육여사 현몽설’ 편지와 ‘왜 슬퍼하고만 있는가, 어머니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나서지 않고…’ 식의 내용을 담고 있다.

1974년 육 여사 피격 당시 김형욱은 미국에 있었지만 국내에 중정부장 시절의 네트워크가 탄탄하고 청와대의 흐름과 내막을 읽는 촉수 또한 뛰어난 사람이란 점을 감안할 때 최태민의 ‘현몽설’이 단순히 상상만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과연 그 정도의 내용에 박근혜 씨가 최 씨를 그토록 믿고 따랐을까 하는 것은 의문이다. 물론 그 이후 몇 차례의 만남이 더 있었고, 그 과정에서 최 씨가 ‘뭔가 보여 주었다’는 설이 파다하다. 온실 속에서 자란 박근혜였기 때문에 최 씨의 그러한 모습에 금방 빨려 들어갔다는 설명이다.

또 여전히 석연치 않은 것은 왜 두 사람은 편지의 내용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전자의 ‘현몽설’은 그렇게 허황되다 하더라도 후자의 진취성에 대한 내용이라면 구태여 입을 꽉 다물 필요가 없다. 두 사람이 편지의 내용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는 것은 뭔가 일반에 공개하기에는 껄끄러운 내용이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최태민과 가까이 지내온 J목사는 “최태민이 편지에 육 여사와 근혜만이 알고 있는 둘만의 비밀을 썼으며 육 여사의 영과 교감을 나눴다”고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또 J목사와 함께 최태민을 만나곤 했던 L씨는 최태민 씨가 근혜를 정치적 지도자로 유도한 근거로 ‘앞으로는 아시아의 시대요, 남자보다는 여성의 시대가 된다’는 것을 주입시킨 듯하다고 했다. 마치 역학가들의 주장과 비슷하다. 그의 묘한 능력에 대한 뒷받침은(비록 해석은 다르지만) 사이비 종교 연구로 유명한 탁명환씨의 말에서도 확인된다.

“마술이든, 일종의 최면술이든, 그런 게 있긴 있습니다. 근혜 씨도 아마 거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같고….” 

   
▲ 우먼센스가 지난 1990년 12월호에 실은 최태민 인터뷰./사진제공=우먼센스

■ 박근영·지만 “최태민이 언니 이용하고 있다”

이후 최태민이 박근혜를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은 가족들에게서도 나왔다.

최태민 씨가 근혜 양과 관련된 일에 다시 등장하게 되는 때는 1990년 일어난 소위 ‘육영재단 사태’때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되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박근혜 씨는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칩거의 시간을 보내며 육영재단과 기념사업회의 일에만 몰두하게 된다.

당시 최태민 씨와 근혜 양를 둘러싼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당사자인 두 사람은 침묵을 지켰다.

동생들인 박근영 씨와 박지만 씨눈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자필 탄원서를 제출했다. 탄원서에는 “저희 언니(박근혜)는 최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밖에 없다. 속고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하다. 이번 기회에 저희 언니가 구출되지 못하면 언니와 저희들은 영원히 최태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장난에 희생되고 말 것이다”고 강조했다.

근영 씨를 밀어준(즉 근혜씨를 육영재단에서 물러나게 한) 숭모회 측에서도 그런 주장을 했다. “최태민 씨가 근혜 씨를 최면술로 홀려 좌지우지하고 있다.”

최면이냐, 영적 능력이냐의 논란은 차치하고, 어쨌든 그에게 보통사람이 갖고 있지 않은 능력이 있는 것만은 사실인 셈이다. 그 능력 역시, 소문으로 떠돌다 보니 무수한 곁가지를 쳤다. 더구나 최태민 씨의 과거 행적이 그 소문을 입증하다시피 도왔고, 언론을 극도로 기피한다든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잠적한다든가 하면서 덩달아 소문의 부피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종교를 편력하고 그때마다 이름을 7번이나 바뀐 행적이 그것이고, 몸에 흰 피가 도느니 신이 들려 난치병 환자의 수없이 구제했다느니 하는 소문이 그것이다. 

당시 최태민 씨는 대부분의 언론 보도를 부인했다.

최 씨는 당시 육영재단 이사장이었던 박근혜 씨의 자문역할에 그쳤다고 항변했다. 그리고 매일 출근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월급을 받는다거나, 막강한 결재권한이 있다거나 하는 말들도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가 박근혜 씨에게 자문해 주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특히 최 씨는 박근혜 씨를 둘러싼 수많은 루머에 대해 속시원하게 밝히진 않았다. 자신과 관련된 소문에 대한 몇 가지 해명만 늘어놓았다. 박근혜 씨나 근영 씨, 숭모회 등과 관련해서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

당시 ‘우먼센스’ 는 최태민 씨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그의 말은 짧았다. 군더더기 설명을 하지 않는 것은 그의 성격 같았다. 거의 ‘예’와 ‘아니오’만을 말하려는 그의 말투는 독선적이거나 독단적이라는 비난을 들을 소지가 있었다.

최 씨는 평소 박근혜 씨를 ‘대화가 되는 인물’로 평가했다. 최 씨는 “박이사장과는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피차 경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자신이 존경한다는 심경도 밝혔다.

박근혜 씨는 매번 의혹을 부인하고 최태민을 옹호해 왔다. 박근혜는 최씨에 대해 “가장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도와준 고마운 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실체를 드러내자 박 대통령은 그의 딸 최순실씨에 대해서도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이라고 지칭한다.

   
▲ 우먼센스가 지난 1994년 8월호에 실은 최순실 인터뷰./사진제공=우먼센스

최순실 씨는 최태민 씨가 1994년 5월 숨을 거둔 이후 그해 8월 '우먼센스'를 통해 6장 분량의 ‘심경 고백서(최태민과 박근혜 사이에 나돌던 소문에 대해)’를 내놓는다.

최씨는 아버지(최태민)의 죽음을 둘러싸고 또 다시 ‘유쾌하지 못한 과거’들이 들춰지는 것을 매우 경계했다. 박근혜 씨와는 육영재단 분규 이후 연락을 하지 않으며 아버지(최태민) 사망과 장례식까지도 알리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루어 짐작컨대 당시 박근혜 씨의 활동(이후부터는 박 대통령의 유업을 기리기 위한 활동이 된다)에 노골적으로 관여하는 등의 행동은 보이지는 않았지만 앞서 육영재단 사태 때 ‘최목사와 순실씨’의 문제가 오르내린 것으로 미뤄 ‘노출되지 않는’ 관계가 계속 유지되었지 않았나 추정하고 있다.

당시 많은 기자들이 박·최의 관계를 밝히려고 취재에 열을 올리기도 했지만 누구 하나 속 시원한 취재를 하지는 못했다. 주변인들의 증언에는 다분히 감정적인 내용들이 많아 신빙성에 문제가 있었고, 정작 당사자들은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쌓인 갖가지 의혹들은 최근 단순히 박 대통령의 권위 추락으로만 그치지 않고 국민 모두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있다. 최순실은 ‘한국의 라스푸틴’ 자신의 아버지인 최태민을 훨씬 넘어섰다. 최순실의 실질적 ‘국정 기획과 결재 상황’이 모든 걸 설명한다. 미르와 K스포츠재단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최순실 게이트’의 막장극(劇) 앞에 총체적 혼돈에 빠져있다. 사상 최악의 국정 농단 사태가 온 나라를 초토화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퍼스트레이디 시절 육 여사의 현몽을 앞세운 최태민을 평생의 ‘멘토’로 따랐다. 최태민을 승계한 최순실과도 ‘피보다 진한’ 40년의 인연을 이어왔다. 그 결과가 최순실 게이트다. 

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국민들에게 의혹과 답답증을 풀어줘야 한다. 박 대통령에게 남은 과제는 참회의 심정으로 국민들이 받은 상처를 씻어주어야 할 것이다.

정창규 기자  kyoo78@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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