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임종국 25주기에 돌아본 한국의 친일파 연구
[칼럼]임종국 25주기에 돌아본 한국의 친일파 연구
  • 김형배 논설주간
  • 승인 2014.11.2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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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12일은 임종국 선생이 타계한 지 25주기일이었다. 평생의 연구 과업으로 펴낸 <친일문학론>의 저자이기도 하다.

원래 그는 문인이었다. 1959년 서른의 나이에 문학예술지에 ‘비(碑)’라는 시로 등단했고 이후 <사상계>와 <서울신문> 등에 글을 잇따라 발표했다. 그러나 문학계 선배들의 작품 연구를 하던 그는 해방 전 문인들의 친일 족적을 알아내고는 곧바로 친일문학 연구로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바쳤다.

그는 고려대 정치학과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간 평범한 서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재 문인 이상에 관한 연구에 빠져 들면서 현존하는 문인들 중 상당수가 일제 강점기 동안 친일행위를 했던 행적을 밝혀내고 친일문학 연구에 매진했다.

임종국은 한동안 스승 조지훈 등과 <서울신문>에 <흘러간 성좌>를 연재한 적이 있다. 이 연재물은 단재 신채호, 이상재, 한용운 등 비타협적 삶을 살았던 이들을 통해 일제에 저항했던 독립투사와 항일 문인의 삶의 발자취를 알아보는 내용이었다. 그 과정에서 친일파 문학을 접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는 친일문인들의 행위를 집대성해야 할 사명감에 불탄다. 당시에 알려지지 않았던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 등 일제 강점기 대표적 문인들의 친일 행적을 당시 신문과 잡지 기록을 통해 모조리 밝혀내고 만 것이다.

박정희, 정일권, 백선엽 등 군의 원로, 노덕술과 최란수 등 경찰 간부들, 모윤숙과 이광수를 비롯한 기라성 같던 문인들, 김성수와 방응모 등 원로 언론인들의 적극적 친일 행각들이 그의 손을 거쳐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를 거론하는 것은 친일파가 득세하던 당시 상황에서는 자신의 파문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특기할 것은 자료 수입 과정에서 자신의 아버지인 문인 임문호의 친일 행적까지 밝혀냈다는 점이다. 부친을 통해서는 친일파 인사들의 구체적 행적에 관한 증언도 얻었다. 물론 이는 모두 자신의 저서에 적시되었다.

백기완 선생은 “한국에서 진보의 시작은 임종국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저서 <친일문학론>이 얼마나 문학사와 지성사 차원에서 의미 깊은 것인가를 상징하는 대목이다. <친일문학론>이 1966년 책으로 나왔을 때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그가 출간한 책 <친일문학론>에 관한 광고가 <동아일보>(그 해 9월10일자)에 실렸으나 출판계와 지성계 반응은 썰렁했을 뿐이다. 민족사학자로 자리매김한 그의 연구결과에 반응하는 것이 워낙 예민한 문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임종국의 결혼 주례를 맡아 주었던 조지훈 역시 제자인 임종국의 앞길을 몹시 걱정한 나머지 감히 책의 출간을 축하하지 못했다고 한다.

“등장 인물 1,000명, 문인 예술가 150명의 작품을 분석한 문제의 책”이라는 것이 책 광고카피였다. <조선일보> 역시 “친일문학론은 지금까지 ‘감정적 반응 또는 막연한 은폐의 대상쯤으로 보아 넘겼던 그 암흑기를 구체적인 자료로 정리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예상 대로 책은 안 나갔고 국내에서 13년에 걸쳐 500권이 팔려 나간 것이 고작이었다. 나머지 1,000권은 일본에서 구매해갔다.

책이 출간되고 20여년이 지난 89년 그가 타계했다. 그러나 그 뒤 우리나라에는 비로소 ‘반민족문제연구소’(후에 ‘민족문제연구소’로 개명)가 출범했다. 친일파 문제가 본격적인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 들어 <친일인명사전>도 출판됐다. 이는 친일파 문제가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민족의 핵심적 모순임을 방증한다.

임종국의 일생은 스승 조지훈의 예감대로 경제적으로 무척 가시밭길이었다. 길거리 약장수 행상에 화장품 외판원, 참빗 장사, 열차 찐빵 행상 등 안 해본 것이 없었을 정도였으나 그랬어도 생활은 곤궁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임종철씨는 그의 친동생이다. 2005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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