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 후보 검증의 잣대
문창극 총리 후보 검증의 잣대
  • 송장길 / 수필가, 전 언론인
  • 승인 2014.06.18 23: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의 소속 교회에서 행한 강의는 정도正道를 벗어난 것이었다. 아무리 개인적인 신앙심이 돈독하고, 장소가 종교집회라 하더라도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과 학문적인 접근을 거스르는 강연을 공개적으로 한 일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종교인이긴 하지만 교리를 설교하는 성직자의 입장이 아니었다.
현대의 고등교육을 받은 지성인이고, 정치학을 전공한 사회과학도이자,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계에 몸담고 중견으로까지 역할을 한 처지이다. 모든 존재와 현상을 신의 역사로 보는 종교적인 신앙을 이해하더라도, 민족과 역사의 비극을 특정해 조물주의 섭리로 해석해버리는 것은 일종의 교조임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입장이었다. 논리는 보편타당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의 틀 속에 역사를 가두고, 다중에게 그 도그마를 역설한 것이다. 오늘날의 현대적인 복합사회에서 지식인들이 저마다의 신앙이나 신념으로 역사와 사회를 재단하고, 주창한다면 진리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갈등할 것이다. 
부분적인 인용이라거나, 전체 맥락의 의미가 다르다고 변명해도 불순물이 조금 들어간 물이 전체적으로는 깨끗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조선의 지배계층을 오늘의 잣대로 매도한다든지, 일본의 식민지화, 한국전쟁을 신의 뜻으로 보는 견해,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사과 불필요 주장 등은 문맥의 일부라고 하더라도 국민 다수가 납득할 수 없고, 명백히 민족과 국가의 민감한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일이다.

의식은 행위를 생산하고, 통제한다. 국민들이 문 후보의 역사관을 우려하는 이유일 것이다. 국민들의 정서에도 상당히 상처를 주었다. 그러나, 강연 내용이 문 후보 검증의 중요한 사안으로 떠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총리 검증의 핵심사안은 아닐 것이다. 신앙생활 속에 잠재한 바, 종교와 사회성을 미분화한 거칢에서 나온 비악의적인 발언이었지 역사의 해석에 근본적인 의미부여를 의도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종교적인 절대신앙에 국가와 민족의 깨우침을 유도하기 위한 연결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또 교회 안에서 신도들을 상대로 한 말인데다가, 해명과 사과까지 한 마당에 더이상의 심한 추궁은 오히려 그 저의를 의심 받을 수 있다. 그의 생각이 담긴 칼럼을 살펴보더라도 종교적인 색채보다는 국가와 사회의 해야 할 일들에 더 집중해 고민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총리직을 수행하는 데에 신앙에 기반한 신념이 장애가 되리라는 증좌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문 후보로부터 종교적인 색채로 국정수행에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분명한 확약을 받는 일은 필요할 것이다.

문창극 후보 검증의 잣대는 중요한 국사를, 특히 세월호 사태 이후 국민의 요구가 집중돼 있는 국가적인 개혁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느냐 하는 데에 촛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그런 의욕이 얼마나 강렬한지, 그럴 능력을 갖고 있는지, 혹 어떤 실패할 소지는 없는지를 면밀히 따져볼 일이다. 
우려되는 점은 문 후보가 큰 조직을 관리, 통솔해본 경험이 없고, 이해가
충돌하는 미묘한 정책의 입안과 실행의 난삽성 가까이에서 경륜을 쌓아보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새로 관료사회의 매카니즘을 파악해야 되고, 정책의 창출과 실행에 미숙함으로 자신감이 떨어진다면 그가 맡을 국무총리직의 역할이 국민이 기대하는 만큼 만족스럽지 못할 수 있다. 
국민은 국무총리가 명예와 권한에 상응하는 명실상부한 재상의 책무를 다 해줄 것을 바라고, 요구한다. 최고권력자의 눈치만 살피는 대타代打가 아니고, 위로는 대통령의 비젼을 펼치는 데 중요한 보좌는 물론, 나아가 새로운 어젠다의 수립에 능동적으로 깊숙이 참여하는 역할분담을 수행해야 한다. 아래로는 방대한 정부 조직을 능률적으로 장악해 정부와 국가가 직면한 난제들을 깔끔하게 처결하고, 나아가 국가의 미래를 전향적으로 열어나가도록 효과적으로 지휘, 감독해야 할 것이다. 총리 후보의 검증은 그런 관점에서 중점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만일 문 후보의 자질이 기준에 미달임이 밝혀지면 그야말로 미련없이 다른 선택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세종대왕은 자신이 세자 책봉이 됨을 반대해 평민으로 추락했던 황희를 그의 능력만을 높이 평가해 반대의견을 무릅쓰고 재상에 기용, 18년 동안 많은 업적을 남기게 했다. 비스마르크와 메테르니히도 개인적인 흠집이 있었으나 능수능란한 총리로서 국가의 통일을 주도하고, 유럽의 역사를 주물렀다. 저언라이는 모택동의 견제에도 중국의 건국에 크게 기여한 명총리가 됐으며, 원자바오도 조자량의 측근이었으면서도 살아남아 손꼽히는 총리로 회자된다. 굴곡이 있어도 능력이 있으면 명재상이 될 수 있었다. 
문 후보가 인맥에 의해 마지못해 지명되었는지, 능력을 높이 사 발탁됐는지를 밝혀내고, 시험대 위의 그를 그만한 지도잣감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가려내야 한다. 그 일은 한 사람의 고위직을 탄생시키는 작은 일이 아니라 국민이 부여한 소명이자, 국가의 미래를 위한 값비싼 과업이다. 정치적인 계산에서 자유롭고, 국가의 장래만을 그려보는 순수한 자세로 임할 때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일이다.
송장길(2014.6.15, 미국 LA)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