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한곳을 바라봐야 통일의 그날은 온다
[칼럼]한곳을 바라봐야 통일의 그날은 온다
  • 김형배 논설주간
  • 승인 2014.11.1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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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와 베씨의 독일 통일이 남긴 교훈

한국은 전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이다. 우리나라처럼 분단된 국가였던 예멘이 재통일됐고(합의에 의한 통일 이후 내란이 일어났으나 다시 무력으로 통일됨) 독일이 합쳐졌으니 이제 분단 비극의 땅은 부끄럽게도 한국 단 한 곳뿐이다. 내년이면 벌써 분단 70돌을 맞아야 하는 우리는 독일 통일의 과정을 유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거기서 민족 통합의 방향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지난 11월9일로 꼭 25돌이다. 물론 독일 통일은 그 후 300여일이 지난 1990년 10월3일 동독 5개주가 독일민주주의연방(서독)에 합병하는 방식으로 완결됐다.

베를린에서는 그날 새벽 장벽이 있던 자리 15km에 촘촘히 설치된 불 밝힌 흰 풍선 8,000개가 하늘을 향해 날았다고 외신은 전한다. 베를린 시정부는 “28년간 베를린을 갈랐던 장벽의 붕괴는 다른 세계질서가 시작되는 시점이며 이는 돌이킬 수 없다”고 선언했다.

매년 그들의 통일을 기념하는 날이 올 때마다 우리 마음은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다른 한 구석은 허전하기 짝이 없다. 두 전범 국가 일본과 독일은 애초 분단도 되지 않거나 얼마후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뤘기 때문일까? 우리만 뜻하지 않은 분단에 피비린내 났던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겪어야 하고 분단상황도 더욱 고착화한 현실을 살아야 하는 비탄의 감정 때문일 터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언제쯤이면 우리도 저들처럼 통일을 이룰 수 있을지,  어느 때나 피를 흘리지 않고도 동강난 허리를 이을 수 있을지 하는 뼈아픈 비원에 빠져 든다.

그러나 통일은 기다린다고 저절로 오지 않는다. 준비 없이 찾아 오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의 통일을 향한 꾸준한 노력과 그 성취과정을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들은 2차 대전 패전 이후 한동안 ‘할슈타인 독트린’을 안보와 외교의 최대 원칙으로 삼아 스스로 고립되어 지냈었다. “동독 정부를 승인하는 나라와는 외교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당시 서독의 외교정책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1957년 서베를린 시장에 당선된 빌리 브란트는 생각이 달랐다. 1964년 사민당(SPD) 당수에 선출된 직후부터 이른바 ‘접근을 통한 변화’로 불린 동방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설계자는 기자 출신의 에곤 바르였다. 브란트에게 “동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끊임없이 설득했던 그는 기민-사민당 연립정권에서 외무장관이 된 그가 긴장완화를 위해 동구 공산국가들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토록 했던 장본인이다. 이들의 운명적 만남은 ‘도원결의’를 연상케 한다.

통일의 주역 에곤 바르의 치밀한 전략과 빌리 브란트의 포용적 리더십이 오늘의 통일 독일을 일궈냈다. 그 30년의 치밀한 노력과 흔들림 없는 전략적 인내심은 마침내 민족의 화해와 재통합의 결정적 디딤돌이 됐다. 동방정책은 통일 안보정책뿐 아니라, 교육과 통상, 외교, 안보 정책과 청소년 통일 정치교육에서도 초당적으로 흔들림이 없도록 차근차근 추진됐다.

통일과정에서도 상대의 어려운 경제적 형편을 감안한 배려 정책이 힘을 발휘해 통합을 더 굳건하게 만들어냈다.

물론 지금도 동쪽 출신과 서독 출신간의 미세한 갈등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러나 통합 초기에 보였던 자본주의 경험과 오랜 분단 동안 굳어진 이질적 신념체계가 이제는 별 문제가 되지 못한다. 통일의 놀라운 시너지 효과가 이를 극복한 것이다. 요아임 빌헬름 가우크 대통령과 앙헬 메르켈 총리가 모두 동독 출신인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 앞에도 통일에 이르는 희망의 선택지는 항상 놓여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목청껏 부르기만 한다고 해서 통일이 절로 얻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 치밀한 전략적 사고와 일관된 민족적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남북간 긴장 완화와 민족간 화해와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은 독일의 경험이 말해주는 바이다. 독일처럼 민족 통일을 향한 디딤돌을 하나씩 하나씩 놓아야 한다. 그 실마리는 남북 화해 협력, 경제 협력과 화해의 노력 같은 인내심 있는 노력으로 남북간 신뢰를 다지는 것이다. 결실은 그 토대 위에서 정치 군사적 긴장 완화를 정착시킴으로써 이룩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은 남북 모두 한곳을 바라보고 그곳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상호 신뢰를 키워가면서 서로 이익이 방향으로 교류 협력을 넓혀 나가야 하는 것이다.

단일 국가의 경험이 짧은 독일과 달리 우리는 2,000년 역사 이래 같은 언어, 문화를 지닌 한핏줄이다. 그래서 민족간 적대감을 버리고 화해도 훨씬 쉽게 이룰 수도 있는 장점을 지닌 민족이다.

Ossie와 Wessie. ‘게으르고 돈을 축내는 동독 출신 사람’과 ‘돈은 많지만 거드름 피우는 서독사람’을 각각 일컫는 독일어이다. 서로를 얕잡아 보던 독일인들이 마침내 통일을 이뤄내고 유럽 최대의 강국으로 키워낸 오늘의 현실은 반목과 대결만으로 분단 60여년을 허송해온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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