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단독정부에 반대했던 김구가 존경받는 이유
[칼럼]단독정부에 반대했던 김구가 존경받는 이유
  • 김형배 논설주간
  • 승인 2014.11.0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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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출신의 이인호 한국방송공사 이사장이 "김구는 대한민국의 공로자가 아니다"라고 발언해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앞서 그 공영방송사 아나운서를 지낸 한 여성 극우 정치인이 김구 선생에 대해 “시골내기여서 독립운동밖에 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너무 무식해서 (1948년 단독정부 수립을 위해 실시된) 총선거를 반대했던 것”이라고 말도 안되는 비방 왜곡을 해 물의를 빚었다.

내년이면 해방 70돌인데 벌써부터 대중의 정신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방송관계 인사들의 잇단 망언에 사람들은 개탄을 금치 못한다.

이들의 빗나간 민족사 인식을 보면서 마치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의 잘못된 역사 교과서를 읽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독립이 찾아온 한반도 민중에게 일제 강점기 시절 민족반역자들에 대한 조사와 처단은 가장 시급한 역사적 당면과제였다. 이는 일제에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혹독한 탄압과 착취를 당했던 민중의 한결같은 염원이었다. 일제 앞잡이들에 대한 단죄는 ‘정상 국가’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나치 부역자 1만여명을 처형하거나 장기형에 처하고 도주범에 대해 공소시효도 없이 지금까지 그 추적과  처벌의 끈을 늦추지 않는 것도 민족 반역자들의 처벌이 자유 프랑스에 소중한 기초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민족 정기를 바로 세워 완전한 통일독립국가로 새 출발하기 위해 식민 잔재 청산은 너무도 정당한 역사의 필연이자 당위였다.

일제를 상전으로 모셨던 친일 매국노들은 해방 후 집단 패닉에 빠졌다. 자신이 저지른 씻지 못할 반민족적 중대 죄과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간 이들에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바로 새로운 점령자 미국이다. 한반도 남쪽을 점령한 미국은 2차 대전을 막 끝내고 전 세계를 냉전체제로 재편하면서 동아시아에서 소련의 남하를 막는 것을 최우선적 전략목표로 삼았다. 패망한 일본을 부흥시켜 자신의 군사기지로 만들려는 미국에게 한반도는 일본 방위를 위한 전초기지로서 안성맞춤이었다.

그 결과는 전범 국가 일본 대신 억울하게 조선의 분단이 전격적으로 취해진 것이다. 통일독립국가 수립을 위한 항일 독립투사들의 풍찬노숙도, 선열들의 피어린 투쟁도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하고 만 것이다.

통탄할 일은 이승만 세력이 한반도 남쪽에서 과거 항일투쟁의 전위인 청년 학생과 독립투사들을 박해하던 친일 모리배와 일제 악질 고문경찰들을 다시 불러 모아 단독정부 수립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북도 북대로 김일성과 사회주의 세력 중심의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출범시켜 소련의 지원 속에 세를 키워갔다. 통일 독립국가 희망은 물 건너가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김구는 그 엄중한 정세에 자신의 안위에 개의치 않고 앞장서 나섰다. 그러나 통일정부 수립 협상을 위한 그의 두차례 북행길은 국내외 정세의 제약으로 그 성과는 미약했다. 분단 세력의 방해공작도 점차 극심해져 갔다.

당시 일부 신탁통치 반대세력과 미국을 새 주인으로 섬기는 친일 매판 세력이 단독 정부 수립를 주도할 때 그는 그 반대편에 서서 마지막 안간힘을 쏟았다. 단독정부를 반대하고 통일국가 수립을 위해 그가 걸었던 길은 험난한 가시밭길이었지만 후세에 두고두고 귀감이 될 만한 역사적 도정이었다. 분단세력에 의한 김구의 죽음은 남과 북의 집권 세력간, 민족과 외세의 대결을 전쟁으로까지 치닫게 해, 금수강산을 동족의 피로 물들이고 만 비극의 전주곡이 되었다.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들이 잇따라 김구에 대해 단정 수립 반대와 불참여를 이유로 대한민국 건국의 공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 논리의 치명적 인식 오류는 헌법 정신의 부정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 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중략..”

헌법은 엄연히 독립투쟁과 임시정부에서 그 법통을 두고 있다. 건국만큼 중요한 것으로 통일 독립정부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민족이나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진정한 지도자를 만난다. 마치니와 가리발디, 코부아르의 이탈리아 통일 3걸이 그렇고 미국의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등이 그들이다. 만약 이들도 한때의 일신상 안일을 위해 민족을 배신했더라면 지금껏 그같은 존경을 받지 못할 것이다.

김구는 민족 앞에 드리워진 큰 불행을 예감이라도 하듯 절망의 순간에 자신의 생명을 던질 줄 아는 진정한 지도자였다. 아무리 돼먹지 못한 자들이 그 대의를 보지 못하고 함부로 입을 놀린다 해도 통일정부 수립을 향한 김구 선생의 단심을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미-소에 의한 분단 직후 통일운동이 국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가시밭길이 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분단정부를 수립하는 일, 분단정부에 참여하는 일은 임시정부, 무장투쟁 등 독립운동의 전선에서 희생된 이들이 지향해온 통일된 독립국가의 길과는 거리가 먼 것인 만큼 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물론 임정의 이시영, 신익희, 이범석, 이청천 등과 같이 남쪽의 새 정부에 참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48년 그는 말했다. "내 나이 이미 73인데, 남은 것은 오늘 내일하는 여생이 있을 뿐이다. 새삼스레 재화나 명예, 정권을 탐낼 것인가"라고 말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그리고 분단이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면서, 이 같은 민족사의 불행을 막기 위해 자신의 여생을 던지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런 말도 남겼다. "우리는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정도이냐 사도이냐가 생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서거하기 직전 이런 말을 했다. "역사는 언제나 전진하며, 정의에서 우러나오는 정당한 주장은 반드시 실현될 것을 확신한다."

우리는 한때나마 이처럼 자랑스러운 지도자를 모셨던 것에 큰 자부심을 지녀야 한다. 그 상징적 대표 인물이 바로 김구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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