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서태지의 소격동 엘레지
[칼럼]서태지의 소격동 엘레지
  • 송장길 / 수필가, 칼럼니스트
  • 승인 2014.10.31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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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가 소년시대의 추억에 휩싸였다. 1998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후 잠행과 출현을 거듭하다가 요즈음 들고나온 음원 “소격동”에서는 팬들을 자신의 그 추억 속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소등 사이렌과 북촌의 좁은 뒷골목, 풋풋한 만남, 군 보안사 주변의 으스스한 분위기로 형상화한 에레지가 대중의 서정을 촉촉히 적신다. 전자음역에 담기는 멜론콜리 멜로디와 가사가 기괴하게 섞여 감성을 이끈다.                                                                 

연륜 때문일까? 1992년 스무살의 미소년일 때 혜성처럼 나타나 발랄한 록에 현란한 댄스를 버무려 한국의 대중음악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던 귀재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그때 대중음악계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다. 젊은 그가 직접 작사, 작곡, 편곡, 베이스, 보컬 등을 도맡아 내놓았던 제1집 타이틀 곡 “난 알아요”는 17주 동안 가요차트 1위를 내달렸고, 그해 가요대상을 모두 휩쓸었다. 어떤 이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환이라 했고, 어떤 이는 우리 대중음악의 혁명이라고도 했다. 그 대단한 열풍은 과거와 미래를 가른 분수령이 됐고, 오늘날 댄스음악이 주종인 청년음악과 한류의 종자를 뿌렸다.                  

본명이 정현철인 서태지는 서울 종로구 소격동, 청와대와 총리공관으로 가는 갈림길 근처에서 자랐다. 지금은 주차장이 된 자리에서 아버지 정상규 씨가 운영하던 전파사를 기웃거리며 어린시절 소리와 음향기기에 일찍 감각의 눈을 뜬 듯 싶다. 그의 날카로운 감수성과 신선한 집념, 완벽주의는 당시 이태원 등지에서 외롭던 랩과 댄스를 끌어내 가요판을 석권한다. 댄스 음악과, 힙합, 발라드, 일렉트로니카, 스래시 메탈, 갱스터 뮤직 등 폭넓은 스펙의 장르를 종횡무진 두루 섭렵하면서다. ‘서태지와 아이들’ 팀이 해체될 때까지 불과 4년 동안에 휘몰아친 가요계의 바람은 이른바 “문화 대통령”이 몰고온 일종의 쓰나미 현상이었다.                                                                                  

서태지가 음악적인 기질을 키우는 동안 주위에서 그의 어린 마음을 짓누른 무거운 분위기는 높은 담으로 가려져 있던 군 보안사와 육군병원에서 일어서 번진 권위주의의 위압감이었다. 그자리는 원래 조선조의 규장각과 사간원, 종친부 등의 터였었는데, 일제 때 경성대 의학부로 바뀌었다가 전란 통에 군 병원과 보안사가 들어서 있었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죽음을 치룬 곳이기도 하고, 그 뒤 음흉한 정치음모를 꾸며 두명의 사령관이 대통령이 되기도 한 그 역사의 현장은 주민들에게는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주둔군과 경비병들에게 항상 감시를 당하는 느낌을 받았고, 인근지역을 지나면서는 죄없이 움츠러들기 마련이었다. 서태지의 유,소년기 뇌리에 휘돌던 미세먼지군일 것이다                   

서태지의 재능이 어디로 향할는지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워낙 변화무쌍하고, 스펙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비판자들은 그의 시대는 지났다든지, 모방의 천재라고 폄하하지만, 그는 아직도 단단한 팬 그룹을 폭넓게 거닐고 있고, 제9집의 시원인 아이유와의 “소격동” 음원 콜라보래이션을 들고 가요차트 1위로 다시 떠올랐다.                                  

소격동의 권위주의 시설은 떠나고, 그자리에 현대미술관이 들어서서 세계적인 전위미술전이 전시되기 시작했다. 서태지도 이제 오랜 방황의 행보를 접고, 떳떳한 정진의 길을 꾸준히 걸어갈 때가 된 듯하다. 그가 집착했던 랩의 장르, 난해한 얼터너티브, 하드코어, 이모코어의 내공을 너머 그 만의 음악세계, 그 만의 열정과 기개를 한국의 대중문화의 빛나는 꽃으로 피워나가기를 음악 팬들은 고대하고 있다.

▲ 송장길 수필가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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