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의 어두운 단면
한국 정치의 어두운 단면
  • 송장길 / 수필가, 전 언론인
  • 승인 2014.09.05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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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홍원 국무총리가 지난 1일 국회의 박영선 새정치국민연합 원내대표실을 방문했다. 박영선 대표는 자리에 없어 만나지 못 했다. 시급한 법안의 처리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는데 허탕을 친 것이다. 언듯 보면 가벼운 일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작은 일 안에 한국정치의 미숙과 소아병적인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듯하다.

             내각의 우두머리이고 장관급 비서실장을 둔 나라의 최고 관리가 제1야당의 리더를 찾아가 헛걸음을 쳤다면 의전상으로도 망신이고, 정치적으로도 낭패다. 준비 부족이든, 기피대상이 됐든 상대를 접촉도 못해서야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야당의 원내대표도 총리가 기대한 자기 자리를 비운 일은 양해하더라도 급히 돌아올 수 없다면 통화라던지 다른 방법으로 대응했어야 한다. 만일 정황상 의심이 되는 대로 면담을 피해버렸다면 이는 그 성실성에 치명적인 약점을 들어낸 것이다. 사적이라도 신뢰에 금이 가겠지만, 공적으로는 민주주의의 기본에도 못 미치는 저급한 행위이다.

여야가 힘겨루기를 하고, 신경전을 벌이는 정치공학적인 측면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종의 정치 생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국이 경색되어 국가적인 난국이 야기되고, 나라가 온통 정치권의 타협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는 우선 소아적인 타산을 초월해서 진지한 자세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하나하나를 짚어가면서 전향적인 대안을 끌어내기를 국민은 기대한다.

세월호진상위의 수사권 부여 문제만 해도 법체계와 월권, 선례 등으로 여권이 도저히 물러설 수 없으면 수사권 부여와 상응한 철저한 조사를 명확하게 약속하는 방안을 합의하면 된다. 법조항에 명문화하지 않더라도 국민이 모두 확인하는 가운데 3자 합의를 내놓고, 더하여 그 약속시행의 감시까지도 장치를 마련하면 수사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 방안들이 세력싸움의 틀에 갇혀 표출되지도 않고, 진전되지도 않는다. 산적한 법안 심의와 국정감사, 예산일정에 쫓기면서 여야 대표들은 현장 위로에 나선다. 선량들은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실정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 실상파악은 입법활동을 위해서,

국정의 감시와 방향제시를 위해서 주로 필요하다. 서민을 위로하는 일은 의회기능의 부차적인 일일 것이다. 표를 의식하는 우리의 선량들은 현장에 얼굴을 내미는 행사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에는 지금 당리당략에 길들여진 정치인(Politician)이 아니고, 나라와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갈 경세가정신(Statesmanship)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정신 만을 품고 모든 것을 물리치면서 철저히 국민과 국가를 위해 판단하고 헌신할 인물들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 원로에서부터 정치 초년생에 이르기까지 직업적인 정치보다 심장이 뛰는 지사가 되는 길, 거기에 나라의 명운을 개척할 철학이 있고, 비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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