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세종, 조선천년을 그리다(36)
[연재]세종, 조선천년을 그리다(36)
  • 신현덕 언론인/문학박사
  • 승인 2015.05.2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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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 내 기념품점에서 한글을 주제로한 상품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 강민지 기자 mjkang502@gmail.com

 공복의 자세를 저버려 벌 받다

세종이 김문에게 특별히 벌 준 것은 백성을 위한 옳은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할 공복의 자세를 요구한 것일 뿐이다. 백성들이 글을 몰라 어렵게 사는 것을 익히 아는 그가 임금의 뜻을 저버린데 대한 야속함도 들어 있었다. 벌을 주면서도 가르치고 깨우치게 하여 백성을 보살피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려던 임금이다.

세종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여러 대신으로 더불어 상량하고 의논한 것이 이미 10여 년”이라며 “나는 원래 백성과 이익을 다투고 싶은 마음은 없다.”(세종27년 9월5일)고 말했다. 이익을 백성에게 돌리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장서서 실천했다.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는데 왕실에서 술을 빚어 식량을 낭비해서는 안된다면서 모든 소비를 줄였다(25년 7월 18일). 백성을 위해서라도 독단으로 일하지 않았으며, 대신들과 상의해 가장 현명한 결정을 했다는 기록이다.

세종은 언문을 통해 백성들을 하늘처럼 받들고, 편안하게 이용케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은 이미 설명했다. 김문은 이를 알면서도 집현전 분위기가 훈민정음을 반대하는 쪽으로 돌아서자 자신의 본래 소신을 바꾼 것이다. 집단의 분위기에 휩쓸려 국가와 백성을 생각지 않는 태도에 세종이 화를 냈다. 세종은 말을 바꾼 김문의 임명장(고신)을 회수했다. 임명장을 회수한 것이니 직업을 잃은 것은 당연한 일. 그리고 백수로 넉 달이 흘렀다.

세종은 6월21일 김문에게 고신을 주고, 파직했던 정창손과 함께 집현전으로 불러들였다. 꼬장꼬장한 학자로 알려졌던 김문이 다시 집현전에서 학문연구에 몰두했다. 세종이 김문의 학문적 능력과 자세를 높이 사고 있어 가능했다. 김문은 언문으로 사서를 번역했다. 세종이 글자 훈민정음을 만들면서 백성들이 쉽게 유학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고, 세종의 역점사업이었다.

유럽보다 앞선 조선의 민본과 민주주의

유럽의 중세시대는 인간이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매던 때였다. 세종은 그 시절(15세기)에 어둠속에서 민본(民本)을 내세웠다. 유럽학자들은 아예 동양에는 중세가 없다고들 비하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그들의 우월성을 앞세우기 위한 억지일 뿐이다. 세종은 민권을 중시했고, 민주(民主)의 터를 닦으려 노력했다. 세계 어느 국가, 어느 민족보다 앞서 민본과 민주를 내세웠다.

최만리를 포함한 7명은 집현전 소속으로 세종의 총애를 받은 인물들이다. 그들이 세종에게 맞서는 상소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이 민본과 민주를 실천하는 국가였기에 가능했다.

백성을 최우선으로 위하던 세종은 7명의 말을 듣고는 참을 수 없었다. 세종 26년(1444) 2월 20일 실록에 원문이 실려 있다.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언문 제작의 부당함을 아뢰다.”라는 제목이다. 집현전에 근무하던 최고위 직이었던 최만리를 비롯한 7명은 “신 등이 엎디어 보옵건대, 언문(諺文)을 제작하신 것이 지극히 신묘하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혜를 운전하심이 천고에 뛰어나시오나, 신 등의 구구한 좁은 소견으로는 오히려 의심되는 것이 있사와 감히 간곡한 정성을 펴서 삼가 뒤에 열거하오니 엎디어 성재(聖栽)하시옵기를 바랍니다.”라고 시작한다.

훈민정음을 만든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의심나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임금이 훈민정음이라고 했는데도 언문이라고 지칭하여 상소를 올렸다. 이 대목부터가 심상찮다. 세종은 의도가 있어서 언문이라 했지만 신하들이 그렇게 불렀다는 것은 도전에 가깝다.

억장 무너지는 상소문

상소문은 “우리 조선은 조종 때부터 내려오면서 지성스럽게 대국(大國)을 섬기어 한결같이 중화(中華)의 제도를 준행(遵行)하였는데, 이제 글을 같이하고 법도를 같이하는 때를 당하여 언문을 창작하신 것은 보고 듣기에 놀라움이 있습니다.”라고 시작했다. 중국의 모든 제도를 받아들여 그대로 시행했는데, 중국과 다른 글을 만들다니 놀라울 뿐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그들은 훈민정음을 반포하며 세종이 내세운 ‘중국의 글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반박한다. “설혹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뜬 것이고 새로 된 글자가 아니라.’ 하지만, 글자의 형상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을지라도 음을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은 모두 옛 것에 반대되니 실로 의거할 데가 없사옵니다.”라며 세종이 처음으로 밝힌 합자의 원칙인 “초중종성을 합해야 글자가 된다.”는 것이 중국을 속이는 일이라고 넌지시 지적한다. 즉 훈민정음의 가장 큰 원리인 표음의 기능을 무시한 것이다.

그리고는 직접 세종을 겨냥했다. “만일 중국에라도 흘러 들어가서 혹시라도 비난하여 말하는 자가 있사오면, 어찌 대국을 섬기고 중화를 사모하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사오리까.”라고.

중국이 알게 될까 두렵다는 뜻이었으나, 역으로 임금을 겁박하는 수준이다. 섣달 그믐날 발표해 그날(상소한 날)까지는 중국에 대해 비밀이 지켜져 왔으나 중국이 계속 모를 리가 없을 것이란 이야기다. 그리고 중국의 정보기관에 알려주는 자가 있을 것이란 통고이기도 하다. 사대를 한다면서 ‘사대에 어긋나는 일을 왕이 해서 되겠느냐?’는 일종의 경고였다.

두 번째는 중국 국토가 엄청 넓지만 문자를 따로 만든 지방은 없다고 했다. “옛부터 구주(九州)의 안에 풍토는 비록 다르오나 지방의 말에 따라 따로 문자를 만든 것이 없사옵고”라고 다그친다. 지역과 종족과 언어가 각각 달라도 글자는 하나라는 말이다. 이를 어찌 들으면 조선도 중국(九州)의 하나라고 하는 것 같다. 우리도 중국의 지방이라는 것일까? 중국이 내세우는 종번관계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글자를 가진 것은 “오직 몽고(蒙古)·서하(西夏)·여진(女眞)·일본(日本)과 서번(西蕃)의 종류”라 했다. 안타깝게도 “이는 모두 이적(夷狄)의 일이므로 족히 말할 것이 없사옵니다. 옛글에 말하기를, ‘화하(華夏)를 써서 이적(夷狄)을 변화시킨다.’하였고, 화하가 이적으로 변한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습니다.”고 말한다. 중국(華夏)의 문물로 변방(夷狄)을 변화 시켰지만 변방의 일로 중국을 변화시킨 적은 없다는 이론이다. 선진기술과 이론으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당연히 중국 기술과 능력이 앞서 있지만 그를 뒤집을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창의를 부정한 것이다. 개혁도 거부했다. ‘우물안 개구리’로 살겠다는 것이다. 특히 글자를 가진다는 것은 스스로 중국과 적이 된다는 뜻이다.

최근 들어 중국에서 내세우는 ‘중화민족주의’와 같은 느낌이다. 시진핑 주석은 취임이후 중국 56개 소수 민족을 통칭하여 중화민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중화민족이란 없다. 한족과 소수민족뿐이다. 중국도 단일민족이라는 뜻을 인위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중국은 지금까지도 주민의 신분증- 우리나라 주민등록증 같은-에 어느 종족 출신인지를 써 넣고 있다.

최만리 등은 “역대로 중국에서 모두 우리 나라는 기자(箕子)의 남긴 풍속이 있다 하고, 문물과 예악을 중화에 견주어 말하기도 한다.”고 상소했다. 세종이 단군 사당을 따로 세워 국비로 제사를 지내게 한 내용도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기자가 남긴 풍속이 최고라는 뜻이다. 세종이 단군 역사도 독립적으로 바로 세우고, 문자도 만든 것인데 수긍치 못하겠다는 것이다. 조선의 독립을 인정치 않는 말을 왕에게 버젓이, 아무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 오히려 중국과 견줄 수 있을 만큼 완전 중국화가 되었다고 해도 손색이 없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훈민정음이라 이름을 지은 세종의 뜻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언사요 행위였다.

그들은 “이제 따로 언문을 만드는 것은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이적과 같아지려는 것으로서, 이른바 소합향(蘇合香)을 버리고 당랑환(螗螂丸)을 취함이오니, 어찌 문명의 큰 흠절이 아니오리까.”라며 세종에게 더 나빠졌다고 들이댄다. 개악을 하지 말라고 상소의 명분을 내세웠다. 중국이 아니면 안된다는, 중국 문물에 깊숙이 빠져있다는 것을 앞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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