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세종, 조선천년을 그리다(23)
[연재]세종, 조선천년을 그리다(23)
  • 신현덕 언론인/문학박사
  • 승인 2015.04.09 1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서울 동대문구 세종대왕기념관내 소장품인 몽산화상법어약록(보물 769호) / 사진 제공: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리를 그림으로 그리다

세종은 글자 훈민정음을 만들면서 문자 형태로 발음 기관을 그렸다. 특이하다. 요즘 들어 훈민정음이 가림토문자, 고전 등 여러 가지를 참조했다는 설들이 많다. 아직 공식으로 인정된 것은 없다. 학계에서 정확하게 검토되고 검증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공식 기록인 훈민정음 제자해에서는 ‘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정음28자 각상기형이제지) 즉 훈민정음 28자는 각각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했다. 한자 상(象)은 어떤 것을 ‘그리다’는 뜻을 가졌다. 한자(漢字)처럼 무엇인가를 본떠서 만들었다는 말도 된다. 그중 ‘초성은 17자이다(初聲凡十七字).’ 여기서 초성이라는 것은 처음에 올 수 있는 음소 17개를 말한다. 해석하자면 우리가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ㄲ, ㄸ, ㅃ, ㅆ(각자병서) 등과 전에 쓰이던 두개 이상의 자음군 ㅳ, ㅴ, ㅽ(합용병서) 등 그리고 ㅸㅱㆄ(순경음)은 초성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초성자리에 올 수 있는 순수한 음소만을 초성이라고 했다.

훈민정음 정인지 서문에는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을 모방했다고 밝혔다. 형체가 있는 것을 그 모양대로 그렸다는 것인데 여기서 훈민정음의 우수성이 또 다시 드러난다. 중국 한자는 있는 모양을 그대로 그려서 문자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글자의 수가 7만여 자에 가깝다. 그래도 모자라서 최근에는 뜻과 상관없이 발음만을 적는 글자가 참 많아졌다. 젊은이들이 즐겨하는 닭고기 음식 켄터기 후라이드는 肯德基(긍덕기)라고 쓴다. 중국식 발음을 정확하게 적기란 어렵지만 대충 ‘컨더지’ 정도로 보면 된다. 글자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렇게 음만 빌려서 외국인의 지명이나 인명 상품명들을 적는다. 중국학자들도 외국과의 거래가 늘고, 교류가 작아지면서 한자로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심지어는 외국지명을 어떻게 쓰는지, 인명을 어떻게 쓰는지를 안내하는 소책자까지 등장했다. 상형문자와는 관계가 없는 표현이 많이 늘었다는 뜻이다.

우리말은 그러나 상형은 했으나, 사물을 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형상화하는 그림을 그렸다. 쉽게 말하자면 중국 한자는 사물의 뜻을 그림으로 형상화했지만 훈민정음은 소리를 형상화했다. 청각적인 소리를 시각화한 것이다. 중국 한자는 뜻이, 훈민정음은 소리가 눈에 보인다는 뜻이다.

牙音 ㄱ 象舌根閉喉之形 즉 어금닛소리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뜨고, 舌音ㄴ 象舌附上齶之形 즉 혓소리 ㄴ은 혀가 웃잇몸에 닿는 모양을 본뜨고 등등이다. ㄱ을 소리나는 위치와 그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떴다(象)는 것이다. ㅁ은 입술모양, ㅅ은 이의 모양,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그린 것은 같은 이치다. 이래서 소리자체를 그릴 수는 없으나, 소리가 나는 곳과 방법을 그려서 청각을 시각화했다고 한다.

한편 같은 아음인 ㅋ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훈민정음은 “ㅋ比 ㄱ聲出稍厲 故可劃 즉 ㅋ은 ㄱ에 비해 소리가 조금 세게 난다. 그래서 획을 더하였다.”고 했다. 소리가 세니까 당연히 글자의 획도 많다는 비례의 원리다. 이에 따르면 ㄲ은 획이 더 많으므로 더 된소리다. 훈민정음은 이렇게 음가가 눈에 보이도록 글자를 만들었다. ㄱ⟨ㅋ⟨ㄲ이고, ㄷ⟨ㅌ⟨ㄸ, ㅁ⟨ㅂ⟨ㅍ, ㅅ⟨ㅈ⟨ㅊ도 같다.

어떻게 이런 방안을 착안했을까.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이 일을 해낸 세종의 예지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최근 어느 대법관 후보자의 전력에 관련하여 국회에서 말들이 참 많다. 경찰 물고문으로 세상을 떠난 고(故) 박종철 군의 사건을 놓고 시간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논쟁이다. 당시 발표를 보면 참 놀랄만하다.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숨졌다.”고 했다. ‘탁’과 ‘억’의 종성인 ㄱ발음이 모두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아음이다. 혀가 목구멍을 막으면 숨을 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마도 당시 이 내용 발표자 그룹에 훈민정음을 연구한 사람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언어학이나 국어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무고한 학생이 숨이 막혀 세상을 떠난 것은 사실이다.

서울 용산구 갈월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박종철 군을 처음으로 검안한 오인상 당시 중앙대 용산부속병원 내과의를 만나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그는 “스스로 판단할 수 없거나 해결하기 어려운 일일수록 원칙대로 처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박 군 사건 때도 특별한 감정, 보탬이나 왜곡함이 없이 의사로서의 일상적인 자세로 일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도 이제 이순(耳順)의 나이가 되었겠다.

이 말을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의 엄청난 압력과 방해 그리고 국내 중국 추종자들의 오해를 풀고, 이해시키면서 책자 훈민정음을 만들어낸 세종의 뜻이 참 숭고하다. 어려울수록 백성을 위한다는 일념으로 일을 처리했다. 모든 것이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자모의 이름 짓기

각설하고, 훈민정음의 자모는 이름이 없었다. 훈민정음에서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특히 자음은 자체 소리가 없음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도 없었다. 자음에 소리를 부여하는 의미를 시도한 것이 훈몽자회(訓蒙字會)였다. 이 책은 어린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교재였다. 1527년 그러니까 세종이 글자인 훈민정음을 창제(1443년)하고 나서 100년이 안된 시점에 간행되었다. 이 책에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자모의 이름이 실려있다. 자모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자모의 음가를 소개하는 쪽에 더 가까운 의미가 있다.

ㄱ은 其役(기역) ㄴ은 尼隱(니은) ㄷ은 池末(지말) 등으로 되어있다. 이를 공식화 해보면 모든 자모의 이름은 ‘자모+l’가 첫 음이고 두 번째는 ‘ㅇ+ㅡ+자모’로 되어 있다. ㄹ을 가지고 공식에 대입해보자. ㄹ+l 즉 ‘리’ 가 처음이요 두 번째는 ㅇ+ㅡ+ㄹ 즉 ‘을’이 된다. 둘을 합치면 ‘리을(梨乙)’이 자모 ㄹ을 구분하는 이름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이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셋 있다. ‘기역 디귿 시옷’이다. 이들을 원칙에 맞도록 통일한다면 ‘기윽, 디읃, 시읏’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이에 합당한 한자가 없어서 부득이 ‘기역 디귿 시옷’으로 썼을 것이라 했다. 그렇게도 보인다. 위에서 ㄷ은 池末(지말)로 썼는데 우리가 지금 디귿으로 사용하는 것은 池末(못 지, 끝 말)자에서 유추하여 디귿으로 했다.

언어는 살아 있는 생명체다. 늘 부단하게 살아서 변화한다. 훈몽자회에서도 벌써 자모 ㆆ이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기록이 있다. 훈민정음 자모를 27개로 한정해 설명했다. 꼭 없어졌다기보다는 사용례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언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더 보자. 세종이 지은 훈민정음에 실린 자모 설명이다. “ㄱ은 아음이니 군자의 첫발성과 같은데”로 시작한다. 여기에 보면 가로 나란히 쓰면 즉 ㄲ 이렇게 규(虯)의 첫 발성 같다고 했다. 이 규 발음에서 현재는 ㄲ을 찾을 수 없다. ㄷ도 같다.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담(覃)의 첫 발성인데 최근에는 아니다. 여기서 느끼는 것은 당시에는 각자병서로 된소리였던 발음이 최근에는 순해졌고, 당시에 순했던 발음이 지금은 강하게 발음되는 경우가 늘었다.

세종 28년(1446) 9월29일 실록에 실린 자모 분류를 보자. 아음(牙音)은 ㄱㅋㆁ 설음(舌音)은 ㄷㅌㄴ 순음(脣音)은 ㅂㅍㅁ 치음(齒音)은 ㅈㅊㅅ 후음(喉音)은 ㆆㅎㅇ 반설음(半舌音)은 ㄹ 반치음(半齒音)은 ㅿ으로 나누었다.

국어사전의 자모의 순서는 ㄱ이 가장 먼저다. 다음이 ㄴ. 글자의 순서가 정해진 이유를 알면 재미있다. 모든 소리는 목구멍을 통해서 나오는 바람이 주변의 기관들과 작용하여 소리가 난다. 목구멍을 막는 등 소위 폐쇄음이라 불리는 것들이 앞에 온다. 아설순음이 치후음보다 앞에 온다. 소리가 나는 목구멍에서 가장 가까이 나는 소리가 앞자리다. 이러다 보니 당연하게 ㄱ이 먼저 온다. 모음은 삼재의 처음인 하늘 즉 아래아(ㆍ)가 앞자리. 그래서 국어사전에는 ‘가’가 가장 앞자리에 섰다. 이 원칙이 우리와 북한이 다르다. 특히 각자병서의 순서가 다르다. 우리는 ㄲ이 ㄱ다음에 나오는데 북한은 각자병서를 따로 모아 사전을 만들었다.

같은 민족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동일한 사전을 사용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다. 통일 전 서독에서 공부할 때 교수들이 동독에서 발행된 사전을 사라고 권유하던 것을 생각해 본다. 동독의 출판계도 돕고 값이 싸다고 했다. 우린 통일을 위해 할 일이 참 많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