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세종, 조선천년을 그리다(19)
[연재]세종, 조선천년을 그리다(19)
  • 신현덕 언론인/문학박사
  • 승인 2015.03.26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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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백성을 믿었다
서울 동대문구 세종대왕기념관 경내에 세종대왕기념탑이 자리하고 있다. / 강민지 기자 mjkang502@gmail.com

세종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률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백성들에게 반포하게 했다. 판관이나 형리처럼 자세하게는 아니더라도 일반인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을 집약하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기 12년 전의 일이다.

이조 판서 허조는 그러나 “신은 폐단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간악한 백성이 진실로 율문을 알게 되오면, 죄의 크고 작은 것을 헤아려서 두려워하고 꺼리는 바가 없이 법을 제 마음대로 농간하는 무리가 이로부터 일어날 것입니다.”고 걱정을 한다. 그런데 그 것이 정말 백성을 위한 것이었을까.

세종은 허조가 자리를 비우자 말한다. “허조의 생각에는, 백성들이 율문을 알게 되면 쟁송(爭訟)이 그치지 않을 것이요, 윗사람을 능멸하는 폐단이 점점 있게 될 것이라 하나, 그러나 모름지기 세민(細民)으로 하여금 금법(禁法)을 알게 하여 두려워서 피하게 함이 옳겠다.”

백성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하겠다는 의도였다. 여기서 세종과 대신들의 생각이 서로 달랐음을 알게 된다. 세종은 백성들이 선하며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로 생각했다. 그들은 왕권을 받들며 국가에 충성한다는 긍정적인 생각도 가졌다. 그리고 그들이 죄를 많이 자주 짓는다고들 말하지만, 그들은 올바른 생각이라고 행동했는데 단지 그것이 실정법에 저촉될 뿐이었다. 절대로 악한 마음으로 한 일은 아니었다. 법을 널리 알려 선한 행동이 법에 저촉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선설이라 해도 될 성 싶다.

대신들은 세종과 달랐다. 백성들이 법을 알면 법조문을 악용하여 죄가 되지 않을 만큼만 나쁜 짓을 할 것이라는 우려다. 백성들을 성악설로 접근한 것이다.

이처럼 세종은 백성들을 다독이고 그들의 편에서 생각했으며 언제든지 그들을 위한 선정을 베풀고자 했다. 백성을 계몽하는 데는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우리말을 이해는 하지만 우리말을 표현한 글자들이 어려워서 접근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세종 백성을 계몽하고자 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국민 계몽을 사상가들이 이끌었다. 그들은 국민들을 깨우쳐 시민혁명으로 이끄는 위대한 힘을 발휘했다. 우리는 서구 역사를 배우면서 시민혁명이 엄청난 일이라고들 치켜세웠다. 그런데 이들이 한 일을 알면 비겁했다는 생각도 든다. 프랑스의 대표적 사상가 계몽사상가 중 한 사람인 몽테스키외는 1748년 그의 유명한 저서 '법의 정신'에서 몽골의 영웅 징기즈칸을 빗대어 자기 나라 왕을 욕했다. 실제의 징기즈칸은 그런 일이 없는데도 징기즈칸이 잔인한 것처럼 묘사했다. 징기즈칸이 단두대로 목을 치고 백성을 불에 태워 죽이는 왕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백성을 비굴한 노예라고 했다. 그보다 7년 뒤 볼테르는 희곡 '중국의 고아'에서 징기즈칸의 통치를 두고는 '잔인한 통치가 인류의 눈물 한숨 저주를 얻었다'고 비난했다. 이탈리아의 조반니 카스터도 그의 오페라에서 쿠빌라이를 형편없는 왕이라고 나무랐다.

계몽사상가들이 이렇게 몽골 왕을 저주하고 비난한 이유를 알겠다. 그들이 대놓고 자기 왕을 욕하면 그들도 단두대로 사라질 것이 뻔했다. 그래서 자기 나라 일이 아닌 것처럼 400에서 500년 전의 몽골 역사를 끄집어냈다. 계몽사상가들은 에둘러 말할 자료로 유럽에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 언제나 공포를 자아냈던 몽골족을 끌어 들였다. '우리 왕이 비인간적이고 잔인하다. 노예 같은 삶을 끝내라'고 국민들을 부추기는 데 아무 관련 없는 징기즈칸을 희생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이 쓴 책에서 징기즈칸이라는 이름을 '우리 왕'이라고만 바꾸면 바로 프랑스, 이탈리아 이야기였다. 이 글로 감명을 받은 유럽 시민들이 일어섰고 결국 왕정을 무너뜨리고는 공화정으로 갔다.

그런데 세종은 자신이 가진 절대군주의 힘을 내려놓을 각오로 백성들을 계몽했으니 서구보다 우리가 계몽사상에선 300년 이상 앞서 실천한 것이다. 국민이 계몽되어서가 아니라 왕이 스스로 국민을 계몽시키는데 앞서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세종은 억지로 강하게 밀어 붙이지는 않았다. 저절로 굴러가도록 놔두었다. 반발을 무디게 하려는 속셈이 강했다. 자기가 가진 권한을 몽땅 내려놓지 않았다는 뜻이다. 조선 개국초의 양반 즉 사대부의 권력과 권한은 조선이 망하고 나서도 계속 이어졌다. 이주한은 ‘노론 300년’에서 노론 세력이 300년간이나 지속되어 현재에 이른다고 했다.

눈에 보이는 소리문자

도쿄 외국어대학교 교수였던 일본인 노마 히데키는 저서 '한글의 탄생'에서 “15세기 조선에서 정음 에크리튀르(쓰기) 혁명”이 출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혁명의 상대가 역사이고 세계였다고 강조한다. 그는 여기서 그쳤다. 세종은 더 나갔다. 쓰기 혁명에서 한발 더 나가 백성을 위해 어쩌면 친위쿠데타라고 부를 수도 있는 혁명을 했다.

정확한 속내를 정인지가 말한다. 정인지는 서문인지 후서인지(세종의 서문이 앞에 있어 구분하는 뜻에서 뒤에 있는 정인지 서문을 일명 후서라고 부르기도 한다)에 보면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자연의 법칙 대로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이 있다. 그런 까닭에 옛 사람들은 그 소리에 기초를 두고 문자를 만들었다.'(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字)고 했다. 소리가 글자보다 먼저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 뜻은 중국은 한자한문으로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는 문자선진국(문화대국)임을 추켜세운 것이다. 중국은 소리 다음에 사물의 생긴 것을 보고 문자를 만들었지만(象形文字) 우리는 중국의 소리와 맞먹는 역사를 가진 문자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한자한문이 훈민정음으로 표현하는 소리면에서는 이론적으로는 역사가 짧다고 규정한 것이다. 소리가 문자 보다 먼저인데 우리가 만든 훈민정음은 문자가 아니고 바른 소리이다. 소리가 눈에 보이는 글자이다. 정인지가 간접적으로 훈민정음이 중국을 뛰어 넘었음을 선포했다. 세종의 음성학 실력을 믿고 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와 보면 실제로 세종의 판단이 옳았다. 중국은 표음문자인 훈민정음을 이제와 모방하려고 노력중이다.

세종은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음과 글이 동일한 이유를 여러 차례 이야기 한다. 우선 자음 중의 첫 글자인 ㄱ을 설명하는 부분을 보자. 해례본에서 "ㄱ牙音如君字初發聲(ㄱ아음여군자초발성)"이라고 했다. 언해본에서는 이를 "ㄱ 엄쏘리니 君ㄷ字 처 펴아 나 소리 니"라고 설명했다. ㄱ을 문자가 아닌 "(엄)소리"라고 처음부터 규정했다. ㄱ이라는 표기를 처음으로 접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쉽게 이해할까를 생각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눈에 보이는 소리’로 설명을 한 것이다. 여기서 반박할 수도 있다. "엄쏘리"는 어금니 부근에서 나는 소리이지 그 자체가 소리가 아니라고.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다 음양을 가지고 있고, 사람의 소리도 모두 음양의 이치를 가지고 있다. 단지 사람이 살피지 못했다. 새로운 훈민정음은 소리에 있었던 이치를 밝혔을 뿐이지 (중국 한자처럼) 만든 것이 아니다. 있었던 소리를 분류해 놓은 것이 훈민정음이다. 문자가 아니라 소리를 그대로 시각화한 것일 뿐이란 설명이다.

세종의 음성학 실력은 최만리와의 논쟁에서 일격을 가할 만큼 특출했다. 최만리 등 8명이 중국을 화나게 할 수 없다는 상소를 하자 세종은 이야기하자며 7명을 불러 음성(학)을 이야기한다. 최만리 등이 정음이라면서도 중국 음과 다르다 하자 이두도 중국 음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세종은 이에 앞서 최만리 등이 이두는 문자의 일종이라고 눈감아 줄 만 하다고 한 부분을 상기시킨 것이다. 세종은 결정적으로 그가 찾아낸 28개 음소를 들이댔다.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 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字母)가 몇이나 있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 잡을 것이냐."며 토론의 종지부를 찍는다. 우리나라에서 운서가 잘못 운용되고 있는데 이를 바로 잡아야한다는 명분을 내 놓은 것이다. 틀린 것을 바로 잡는 것이 지식인의 의무인데 너희는 무얼 했느냐는 질책이다. 세종은 절대군주의 힘이 아니라 음성학의 대가로서 신하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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